후유증은 감수해야 한다. 다양한 나라를 여행해봤지만 남아프리카공화국만큼 그 여운이 길었던 곳은 많지 않았다. 남아공 사람들 특유의 자유로움과 여유, 어디를 가도 눈앞에 펼쳐지는 믿기 힘든 대자연의 경관이 잊히지 않는다. 인천국제공항을 출발해 첫 목적지였던 남아공 더반 국제공항까지 약 24시간. 꼬박 하루를 가야 도착할 수 있는 먼 나라지만 뒤따르는 보상은 더없이 달콤했다. 우리에게는 2010년 열린 월드컵 정도로만 알려져 있는 남아공. 그곳에는 발길 닿는 데마다 숨은 매력이 무궁무진했다.
◇서퍼들의 천국=
더반을 찾은 관광객들은 대부분 골든 마일 해변에 줄지어 있는 호텔에서 머문다. 세계 3대 서핑 명소로 서퍼들에게는 천국이라고 불리는 해변이다. 왜 그럴까. 서핑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파도가 첫번째 이유다. 바람이 전혀 없는 날에도 해변 바로 앞까지 높은 파도가 치기 때문에 하루 종일 서퍼들의 발걸음이 끊이지 않는다. 보고 있으면 신기하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인데 해변 바로 앞에는 3m가 넘는 파도가 넘실댄다.
아름다운 풍경도 한 몫 보탠다. ‘골든’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햇볕을 받은 모래사장은 마치 금가루를 수놓은 듯하다. 더반에 머문 5일 동안 해변을 멍하니 바라보며 흘린 시간이 얼마인지 계산이 되지 않을 정도다. 이른 오전 일출 시간에 맞춰 서핑을 즐기는 서퍼들과 금빛으로 변해가는 해변의 모습이 어우러지면 눈을 떼기가 힘들다.
서핑 말고도 해변을 즐길 방법은 많다. 우리 돈 3,000원 정도면 자전거를 한 시간 빌려 탈 수 있다. 해변 바로 옆에 조성된 길을 따라 페달을 밟다 보면 눈앞에 펼쳐지는 풍광에 웃음이 새어 나온다. 먹을거리와 볼거리도 풍성하다. 6㎞ 길이의 해변에는 각종 음식을 파는 레스토랑이 자연스럽게 들어서 있다. 경관을 해치지 않는 정도로 마련된 야외 테이블에서 햄버거와 맥주 한 잔을 함께 하면 세상 부러울 게 없다. 골든 마일 해변 끝에 위치한 ‘우샤카 마린월드’는 더반에서 빼놓을 수 없는 구경거리다. 아프리카 최대 규모의 해양 테마공원으로 열대어부터 돌고래·바다표범은 물론 수십 종류의 상어까지 다양한 해양생물을 만나볼 수 있다.
골든 마일에서 차를 타고 북서쪽으로 40분 정도를 가면 나오는 페줄루 사파리 공원 역시 명물이다. ‘페’는 남아공 전통어로 최고를, ‘줄루’는 남아공 최대의 민속 부족을 뜻한다. 길이 3~4m는 족히 넘는 악어들이 우글우글한 악어 농장과 줄루족의 전통 공연, 사파리 투어까지 체험이 가능하다. 운이 좋으면 줄루족 공연을 보러 온 남아공 현지 초등학생들과도 만날 수 있다. 공원을 방문했던 날 마침 초등학교에서 단체로 체험학습을 왔다. 남아공 아이들은 카메라만 가져다 대면 각종 자세를 취하며 사진을 찍어달라고 요청하기 바쁘다. 그저 찍히는 것 자체가 즐거울 뿐이다. 아이들과 함께 공연을 감상하는 것의 좋은 점은 또 있다. 본인들끼리 신이 나서 박수를 치며 한바탕 춤을 추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 속에 어울려 있으면 남아공 사람들의 여유와 밝음, 행복이 밀려들어 온다.
‘액자 속 그림’같은 케이프타운테이블마운틴·대서양 노을… 셔터만 누르면 화보가 된다
◇셔터만 누르면 화보가 되는 곳=더반을 뒤로 하고 향한 곳은 아프리카 대륙 남서쪽 끝에 위치한 케이프타운. 남아공의 입법수도이자 전 세계 관광객들이 몰려드는 도시다. 어딜 봐도 화보와 같은 풍경이 펼쳐지는 덕분에 도시 전체가 커다란 액자 속 그림과 같다. 지난 2014년 뉴욕타임스(NYT)가 발표한 ‘세계의 가볼 만한 곳 52개 여행지’ 중 1위로 선정된 배경이다.
백미(白眉)를 꼽으라면 망설임 없이 ‘테이블마운틴’을 선택하겠다. 해발 1,086m의 고원으로 그 모습은 이름 그대로다. 도시 위에 놓인 큰 책상과 같다. 꼭대기에 동서로 3.2㎞의 평평한 지형이 펼쳐져 있어서 그렇게 보인다. 축구장의 15배 크기라 200㎞ 밖에서도 알아볼 수 있다. 과거에는 아프리카 대륙을 항해하는 선원들의 길잡이 역할을 했다.
케이프타운의 여러 볼거리 중에서도 이곳이 으뜸인 이유는 정상 위 풍경 때문이다. 정상까지는 케이블카를 타고 5분이면 갈 수 있다. 그전부터 기대감은 가득했다. 케이블카 탑승 장소까지 차로 이동하면서 내려다보는 케이프타운 도심의 모습이 장관이라서다.
360도로 회전하며 올라가는 대형 케이블카 역시 기대를 높이는 이유 중 하나다. 기대가 크면 보통은 실망도 큰 법. 테이블마운틴은 이런 ‘보통’의 생각을 모두 뒤엎는다. 정상에 도착하자 절로 입이 벌어졌다. 어디가 끝인지 가늠조차 되지 않는 아프리카 대륙과 케이프타운 도심이 한눈에 펼쳐지고 대서양의 푸른 바다는 햇빛을 받아 노랗게 물들어 있다. 아무 곳에서나 셔터를 누르면 곧바로 화보가 될 정도다. 바람이 심하게 불면 케이블카 운행은 중단된다. 일 년 중 정상에 올라 절경을 볼 수 있는 기간은 절반 정도. 누구나 볼 수 없는 경치는 그래서 더 소중하고 아름답다.
최대 상업지구인 워터프런트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쇼핑센터와 레스토랑이 밀집해 있고 바로 옆에 있는 항구에서 크루즈선을 타고 바다로 나가 일몰도 감상할 수 있다. 일명 선셋 크루즈라고 불리는 체험이다. 가격은 우리나라 돈으로 3만원 안팎. 아깝다거나 비싸다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바다 한가운데로 나가 온 세상이 붉게 물들어가는 장면을 보는 것은 쉽게 하기 힘든 경험이다.
시내에서 차로 약 1시간 정도 달리면 케이프타운을 즐길 수 있는 선택지가 더 넓어진다. 볼더스 해변에서 아프리카 펭귄을 보거나 국내에는 희망봉으로 알려져 있는 희망곶(Cape of Good Hope)을 방문해 트레킹을 하는 것도 좋은 경험이다. 술을 좋아하는 편이라면 주변 와이너리(와인 양조장)에서 와인 시음을 해보라고 추천하겠다.
“안 와본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온 사람은 없습니다.” 여행 첫날 남아공 관광청 직원이 강조했던 말이다. 궂은 날씨 탓에 전혀 이해되지 않았던 그 말을 여행 마지막 날에는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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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아프리카공화국=정순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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