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프랑스의 대문호 앙드레 모루아가 집필한 ‘미국사’(김영사 간)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앙드레 모루아는 신대륙 발견부터 초강대국 반열에 오르기까지, 500년 미국 역사의 장대한 드라마를 유려한 문체와 심오한 통찰력으로 풀어냈다. 신용석 조선일보 전 논설위원이 번역을 맡아 원작의 미문과 의미를 충실히 살려냈다는 평이다. <편집자 주>
-조직적인 도살
링컨이 암살될 때만 해도 로키산맥에서 미네소타, 아이오와, 미주리, 아칸소에 이르는 드넓은 지역은 아직도 ‘변방’의 성격을 띠고 있었다. 이곳에 산재한 여러 도시, 즉 솔트레이크시티와 덴버 그리고 로키산맥 너머에 있는 새크라멘토, 샌프란시스코, 포틀랜드, 시애틀 등은 이전에 영국이나 프랑스가 건설한 요새 같은 전초기지에 불과했다.
그곳에서 조금만 외곽으로 나가도 들소가 뛰어다니는 대초원이 나타났다. 1865년에는 수백만 마리에 달하는 거대한 동물이 떼 지어 살고 있었다. 하지만 사냥꾼들이 조직적으로 도살하는 바람에 몇 해 지나지 않아 거의 멸종되고 말았다.
들소 멸종은 들소에게서 식량, 주거용 천막 그리고 가죽을 얻어 생활하던 인디언의 삶을 완전히 박살냈다. 먹을 것을 빼앗기고 백인 목축업자와 농민에게 토지를 약탈당한 인디언은 할 수 없이 저항전을 시도했으나 결국 희망 없는 투쟁에 그쳐버렸다.
-역마차 호위대 습격
인디언은 매우 해결하기 힘든 문제 중 하나였다. 남북전쟁 막바지 무렵 미국 내에는 약 29만 4,000명의 원주민이 있었다. 이들 부족은 대부분 미합중국 정부에 귀순했다. 처음에 그들은 일정한 토지 소유권을 인정하겠다는 미합중국 정부를 믿고 조약을 체결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백인이 그들의 소유지를 통행할 권리를 요구하자 그들은 승인했다. 그다음에는 목축업자와 농민이 나타나 그들에게 소유지를 매도하라고 강요했다. 거절할 경우 백인들은 그들을 학살했다.
1871년 오리건에서는 백인이 짐승을 잡듯 개를 몰아 인디언을 굴속으로 몰아넣고 남녀노소 할 것 없이 모조리 학살했다. 인디언들이 복수심에 불타는 것은 당연한 일이었다.
그들은 인디언에 대한 육군성과 내무성의 오랜 의견 대립을 이용했다. 인디언의 저항이 짐승이 줄어들었기 때문이라고 본 내무성은 그들에게 들소를 사냥할 소총을 안겨주었다. 그다음 해 봄, 인디언은 그 소총으로 역마차 호위대의 요새를 습격했다. 인디언의 행동이 위험한 정도에 이르자 내무성은 육군성에 사태 수습을 의뢰했다.
-선량한 인디언
육군성은 내무성의 감상적인 태도를 비난했고 정부는 부득이 2만 5,000명의 상비군을 인디언 구역에 배치했다. 군대란 언제나 실전을 바라며 만사를 전투로 해결하기를 좋아한다. 셰리던 장군은 이렇게 말했다.
“죽은 인디언만 선량한 인디언이다.”
1887년 도스 법(Dawes Act) 제정으로 인디언에게 소유지를 할당함으로써 그들에 대한 행정 문제를 어느 정도 개선했다. 1901년에는 다섯 부족의 인디언들이 귀순해 미합중국의 공민권을 얻었다. 1924년 의회는 미합중국 내에서 출생한 모든 인디언은 미국 국민이라는 법안을 최종적으로 제정했다. 근대까지도 인디언은 대부분 부락제도 아래 생활했으며 토지도 공유했다.
-광산 열기
새로운 서부에 가장 먼저 정착한 사람들은 광부로 그들은 캘리포니아에 일시적인 번영을 불러왔다. 광산 열기가 한창이던 시기에 새로운 주가 몇 개 탄생했다. 네브래스카 주는 1864년, 콜로라도 주는 1867년에 승인을 얻었다. 아이다호, 다코타, 워싱턴 등의 주는 철도와 함께 발전해 승인을 신청했다. 노스다코타, 사우스다코타, 워싱턴, 몬태나 등은 1879년 그리고 와이오밍과 아이다호는 1890년에 주로 승인받아 상원에서 서부의 세력이 확고부동해졌다. 이런 변화는 다소 위험을 안고 있었다. 소수파인 신생 서부가 미합중국의 외교정책을 좌우할 만큼 영향력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자유로운 아메리카
미국인은 결국 변방의 끝까지 도달했지만 변경으로 진출하던 개척정신만은 사라지지 않았다. 이 정신은 벽에 부딪친 반동으로 동부로 되돌아가 새로운 형식의 개척자를 창조했다. 즉, 대은행가와 대기업가가 개척자의 진취적이고 과감한 개인주의를 계승해 끈기와 인내를 보여주었다.
대륙 개발 시대에는 기업에 따르는 폐단에 대해 아무런 불편도 느끼지 않았다. 잭슨 시대 사람들은 혁명이 성행하던 1848년의 유럽 사람들처럼 진보라는 낭만주의에 사로잡혀 있었고, 그들은 보다 더 자유롭고 민주적이며 여유 있는 아메리카를 꿈꾸었다.
<
신용석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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