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포에서 만난 노교사
옷깃을 스치는 오월의 부드러운 바람마저도 오늘따라 무겁게 다가왔다. 그 서먹함이란 바다를 처음으로 항해하는 항해사의 초면만큼이나 굵고 부자연스러운 것이어서 이전엔 경험하지 못했던 전혀 다른 차원의 감정의 경험이었다.
하늘아래 그토록 허무하게 떠날 수 있는 것일까. 그 슬픔의 적막함이란 목포역에서 함께 세월호의 영령들이 인양된 목포 신항으로 택시 합승을 한 인근 지역 초등학교 선생님을 만나면서 한층 더 심화되었다. 목포 신항 바로 옆 초등학교에서 아이들 가르치는 일을 30년 넘게 하시고 은퇴하신 할머니 선생님의 쏟아지는 통제 불능의 눈물로부터 이미 예견된 것이었다.
-탕감 안될 비련
참으로 오랜만에 끝 모르는 슬픔의 바닥을 내려갔다. 이 짧은 방문이 어떤 위로를 떠나간 넋들에게, 그 가운데에서도 너무나 선남선녀의 모습으로 다가오는 그 여덟 명의 미수습 실종자님들의 고운 자태 앞에서 위로의 표현으로조차 다가갈 수 있단 말인가. 이미 고인이 되었고 그 주검마저도 뿔뿔이 사라져 첨단과학에 의존해야 하는 이 기막힌 비극의 현장 앞에서 주체할 줄 모르고 올라오는 억소리로도 도무지 탕감될 수 없는 비련이었다.
그 간극 앞에서 이미 살은 자와 죽은 자의 구별은 하늘과 땅만큼이나 깊고도 처절한 생의 경험이었으리라. 거기엔 이미 신학도 종교철학도 신심도 윤리도 해당될 수 없는 오직 존중되어야 마땅할 “한 인간으로서의 누려할 삶의 최후”가 타자에 의해 결정되는 맞이해서는 안될 인격적 살인 고의적 살인이 적용되어 파멸을 불러 온 인간세상의 비극이 있을 뿐이다. 참으로 고통으로 점철된 참극의 현장이었다.
-비극의 책임은
그렇기에 아무 상관도 없을 것 같은 이들의 죽음이 워싱턴과 서울을 비행하는 여행자의 삶속에도 치열하게 다가온 것이리라. 그것은 이 비극의 책임이 부정의에 대한 나 자신의 암묵적 과실로부터도 기인된다는 어떤 일말의 도덕적 인식으로부터 다가온 것이다.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절대 묵과해서도 남의 일로 간과해서도 안 되는 이웃의 불행을 어떻게 하면 하감할 수 있을까하는 전진적인 자세가 필요한 어떤 숙제 같은 것이었다.
-조영남과 깨달음
“누구를 위하여 종은 울리나” “쿠오바디스(주여 어디로 가시나이까)”
저 십자가 위에서의 칠언조차도 무색하게 만드는 이 끝 모르는 슬픔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애통함”으로 “하늘나라”에 도달할 수 있다는 성경의 역사적 예수가 가르쳐준 도그마 아닌 진정한 위로로부터 잠시 해방될 수 있었다.
놀랍게도 이 깨달음은 스스로에게서 온 것이 아니라 평생을 자유로운 여행자로 살다가 그 천재적인 머리로 에세이를 쓴 이 시대의 광대 조영남 님의 신학 에세이 “예수 샅바를 잡다”에서 얻은 영감에 기인한 것이었다. 비난은 비난으로 끝날 뿐 개과천선의 길은 누구에게나 열려있다.
-예수와 애통함
결국 하늘나라는 희망의 산물이고 믿음의 유무에 의해 구체적인 실재(Reality of Salvation)를 소유하느냐 소유하지 못하느냐의 문제로 귀결되는 지극히 개인적인 결단이 요구되는 일이다.
자나 깨나 그 중심엔 애통함이 있다. 왜 예수는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임이요”라고 소리치셨을까. 슬픔을 당한 자와 함께 울어라. 축제의 자리에 가기보다는 장례식에 자주 가서 위로하라는 그 말씀은 성령이 기본적으로 위로자(Comporter)라는 전제를 더 굳세게 만든다.
-평양 시민과 세월호
독재자에게 충성하는 삼백만의 평양시민을 한 때 미워한 적이 있었다. 그것은 오판이었다. 동족상잔의 비극은 언제든지 또 일어날 수 있으니 증오는 증오를 남는 법. 그들의 잘못이 아니다.
애통의 미학을 통치하신 분 그(He)에게서 오늘 세월호의 아픔을 다스리는 법을 조금 배울 수가 있었다. 그것은 윤리가 아니고 모범이 아니고 나의 나됨을 아는 철저한 자기인식의 발로에서 비롯되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거기서 감사도 나온다. 거기서. 워싱턴에 돌아와 보니 그 여덟 명 중 두 명의 시신 확인이 이루어졌다는 방송보도를 접한다. 이제 이 이 슬픔을 끝낼 때가 되었다.
반드시 기억은 하되 새 날 새 나라를 바라보자. 살아남은 남과 북의 사람들을 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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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재우<한반도 문화재단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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