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옥교지난달 칠년만에 고국 방문을 다녀왔다. 지금 구십인 큰 언니와 칠십인 조카와 또 함께 동행을 한 친구 J와 넷이서 떠난 여행이었다. 이번 여행의 목적은 남해안을 두루두루 보는것이고, 아무리 건강한 언니라해도 나이가 나이니 만큼 건강할 때 다시 한번 만나서 여행을 핑계로 함께 맛있는 것도 먹고 좋은 풍광을 즐기면서 추억을 남겨보자는 것이 목적이었다.
조카가 고급 차를 구입해서 여행은 안락하고 편안했다. 우리들은 먼저 막내 며느리의 아버지가 사시는 전남 장흥으로 출발해서 빼어난 경치를 자랑하는 강진을 비롯해서 순천과 여수, 통영과 거제도를 일주했다.
장흥은 우리 막내 며느리의 고향인데 바깥 사돈은 그곳에서 K 차 딜러를 하시면서 혼자 살고 계시다. 안사돈은 서울서 손주들 치다꺼리를 하시느라 양재동에 조그만 아파트에 사시는데 나와 친구가 서울에 머무르는 동안 우리들은 그곳에서 며칠 신세를 졌다. 장흥은 벌써 몇번째 와 봤지만 이번에도 바깥 사돈의 각별한 보살핌으로 하룻밤을 그곳의 유일한 호텔에서 잤다. 아침에 커피 생각이 나서 거리에 나서자 문을 연 곳은 편의점이 유일한데 깡통 커피지만 따끈한 아메리카노의 맛이 그런대로 괜찮았다.
강진에서 출렁 다리라는 이름의 긴 다리는 가우도와 연결된 다리인데 그 옛날 대학자이던 다산 정약용이 유배를 와서 몇년을 지내던 곳이어서 감회가 남달랐다. 강진은 남해안 중에서도 경치가 뛰어난 곳이다. 다음 목적지인 순천은 수천만을 위시해서 수목원이 볼만했다. 이제 한국은 어디를 가나 꽃들이 만발해서 꽃밭 천국이라해도 과언이 아니다. 벚꽃과 진달래와 철쭉, 개나리들이 보는 사람들의 눈을 현혹한다. 동양의 나폴리라는 여수를 거쳤지만 그 유명한 동백섬의 동백꽃은 보지 못했다. 철이 지났기 때문이다. 통영에서 하룻밤을 묵었는데, 파란 바다 위에 그림 같이 떠 있는 섬들을 내려다 보며 타는 케이블카가 멋졌지만, 저녁을 먹으려고 선창가에 나와보니 정작 우리가 맛본 굴밥은 천연산이 아닌 양식장의 큰 굴이어서 실망했다. 이렇듯 여행을 다니면서도 맛집을 모르면 낭패를 당하기 십상이다.
이번 여행에서 내가 놀라고 감탄한 것은 언니의 건강이었다. 연세가 구십인데 우리 칠십대보다 더 잘 걸으시고 우리를 위해 밥도 해주시고 하여튼 잠시잠깐 쉬지도 않으면서 끊임 없이 몸을 놀리는 것이 그녀의 건강 비결임을 알았다. 그녀는 일주일에 세번 노래 교실에도 나가셔서 장장 노래를 두시간 이상을 부르신다는 것이었다. 아직도 목소리도 쨍쨍하시고 아무튼 일찍 일어나시고 일찍 주무시고 긍정적인 마음으로 사는게 또 하나의비결이었다.
구십세의 어머니와 칠십세의 아들이 서로 손잡고 산보도 하면서 서로 오손도손 사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사실 수십년 전 그때 사십대였던 조카는 늦바람이 나서 슬하의 세아이들을 팽겨쳐 놓고 저 혼자 귀국해 버려서 그때 받은 아이들의 상처는 말할 것도 없고, 지 엄마인 언니의 속도 무지하게 썩혀 드렸던 때가 있었지만 이제 수십년 후 그 아이들도 다 잘 자라고 각자의 자리에서 잘 살고 있어 그 시절이 옛말이 되어버렸다. 나는 여행을 끝내면서 글 제목을 뭐라 지을까 생각하고 있는데 조카가 제천 근처의 어떤 굴을 지나오는데 이 굴이 바로 천등산 박달재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노래를 흥얼거리는데 “천등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하는데 나도 아!하면서 바로 이것이구나!하는 생각이 번뜻 들었다. 얼마나 한국적이며 토속적이며 고향을 느끼게 해주는 노래인가!엣날 우리 선조들이 험난한 산 고개를 넘으면서 한숨과 한으로 얼룩진 가슴을 안고 걷고 또 걷던 고갯길들이 이제는 모두 현대식 굴로 뚫어져 하루 종일 걸리던 산고개들이 두세시간으로 편리하게 줄어든 것이다.
서울서 내가 묵었던 지역은 강남구 대치동이라는 곳이었는데 아파트 뒷켠이 온통 숲으로 덮혀있고 산책로와 자전거 길이 너무 잘 만들어져 있어 놀라웠다. 온갖 꽃들과 새소리도 났다.
그러나 봄철이면 으례 찾아오는 황사가 문제라는데 마침 5월이어서 서울에서나 시골에도 온통 황사가 있어 밖에 나가기가 겁이났다. 거제도에 갔을때만 하늘도 맑고 공기도 깨끗해서 해안도로를 도는데 그 경치가 하와이 뺨칠 정도였다. 거제도가 이렇게 아름답다니! 우리들은 연신 탄성을 질렀다. 육이오때, 한때는 포로 수용소로 썼던 곳인데 이제는 다리도 놓아서 바로 거제도로 진입할 수 있었다.
여행을 갔다오면 사람들이 뭐 맛있는것 먹고 왔냐고들 묻는다. 오히려 서울 대치동의 지하도에서 남도 식당의 정식 코스 요리를 먹었는데 그 음식이 제일 인상에 남는다. 서울은 가는 곳곳마다 중년 이상의 여자들이 판을 친다. 돈은 있고 시간은 남아돌아서 음식점이나 커피숍이나 그들의 아지트가 된 것 같다.
선거철이어서 어수선 했지만 정작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김정은이 아무리 핵무기를 쏘아대도 태평했다. 미국에 사는 동포들만 걱정으로 안달을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행기를 타고 돌아오면서 이제는 이 미국 아니 이곳 캘리포니아가 고향이며 이곳이야말로 세상 어디에도 없는 천국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다시하게 됐다.
<
김옥교 칼럼리스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