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년 전, 한국 기술 표준원에서 산업기준을 만들면서 현재 “살구색”으로 알려진 황색 계통의 색을 “살색”으로 정했다. 그러자 국가 인권위원회에서 “살색이라는 색깔명은 특정 피부색을 가진 인종에게만 해당되기 때문에 잘못이다”고 지적했다. 피부색이 흰 사람도 있고 검은 사람도 있는데, 우리 나라 사람들의 피부색인 황색 계통의 색을 살색이라고 하는 것은 헌법에 보장된 평등권을 침해할 소지가 있다는 것이다.
기술표준원에서 정한대로 황색 계통의 색을 살색이라고 하면 검은색과 흰색은 살색이 아니라는 것이 된다. 그러면 흑인과 백인들의 피부에는 문제가 있다는 것이 된다.
한국의 전철에서 한 아이가 흑인을 보고 엄마에게 “저 아저씨는 왜 저렇게 깜 해?”하고 물으니까, 엄마가 “응, 세수를 안해서 그래”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그 흑인이 자신이 직접 겪은 일을 TV 프로그램에서 이야기 한 내용이다. 아이에게 쉽게 설명해 주기 위해 한 말이겠지만, “세수를 안해서 피부색이 검다”는 말에는 검은 피부색은 정상이 아니라는 뜻이 내포되어 있다. 세수를 해야 피부색이 우리 피부색 처럼 되는데, 세수를 안해서 검은 것이니까, 검은 피부색은 비정상이라는 것이다.
이 살색 에피소드에는 자신과 다른 것을 쉽게 용납하지 못하는 한국인의 독특한 성향이 나타나 있다.
그런데 “다른 것 (different)”과 “틀린 것 (wrong)”은 구별해야 한다. 어떤 사람의 말과 생각과 행동이 나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 그 사람이 틀린 것은 아니다. 단지 나와 다른 것 뿐일 수 있다.
다른 것과 틀린 것을 혼동하게 되면 상대방의 다른 점을 틀린 것으로 생각하게 되어 그 다른 점을 비판하고 비난하게 된다. 그러나 상대방의 다른 점은 틀린 것이 아니고 단지 나와 다른 것으로 인정하면, 이해와 포용을 하게 된다. 비판과 비난이 있는 곳에는 갈등과 분열이 있지만 이해와 포용이 있는 곳에는 화합과 협력이 있다.
한국에 새롭게 진보 정권이 들어선 지금, 한국의 정치인들이 이 “다른 것”과 “틀린 것”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가 꼭 필요하다. 최종 투표율 77.2 퍼센트를 감안하면 문재인 대통령의 실질적 득표율은 31.7퍼센트이다. 투표로 지지를 표명한 국민은 총 유권자의 삼분의 일도 안되는 것이다. 낮은 실질적 지지율과 여소야대의 정국을 고려할 때 야당과의 협치가 그 어느 정부 때 보다 절실하다.
협치와 통합을 이루기 위해선 보수와 진보의 이념은 서로 다른 것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니라는 것을 인정해야 한다. 물론 극우파와 극좌파의 이념과 정책은 배척해야 하지만 이번에 대통령 후보를 낸 주요 다섯 정당은 극우파나 극좌파의 범주에 들어가지 않는다. 필자가 생각하는 극우파는 히틀러의 나찌즘과 같은 것이며 극좌파는 주사파와 같은 것이기 때문에, 한국의 보수와 진보 진영의 이념과 정책은 서로 다른 것이지 옳고 그름의 문제가 아닌 것이다.
보수 진영에서는 보수의 이념과 정책이 옳다고 주장하고 싶을 것이고 진보 진영에서는 그 반대를 주장하고 싶을 것이다. 그러나 그렇지 않다. 만일 역사적으로 보수의 이념이 옳다고 인정되었다면, 민주주의가 정착된 나라에서는 보수의 이념을 따르는 정책만 펼치고 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반대의 경우도 마찬가지다. 보수나 진보 그 자체로는 절대로 완전하지 못하다. 보수와 진보는 각각 그 나름대로의 장점과 단점이 있기 때문에 공존하면서 서로의 약점을 보완해 주는 것이 바람직하다.
지난 9 년 동안 보수 진영이 국정을 운영하면서 보수의 이념과 정책으로 이룰 수 없었던 일들이 있었을 것이다. 그 보수가 할 수 없었던 일들을 이제 진보 진영에서 하면 된다. 그리고 진보 진영에서 일정 기간 정책을 펼쳐나가다 보면 진보 정부가 해낼 수 없는 일이 틀림없이 있게 될 것이다. 그 때는 다시 보수 진영이 나라를 이끌어 가면 된다. 이렇게 공존하면서 상대가 하지 못한 일을 하는 것이 자신의 진영에 맡겨준 시대적 사명인 것을 깨달아 실천할 때, 진정한 협치와 통합이 이루어질 수 있다. 그러나 서로 다른 것을 틀린 것으로 판단하여 자신의 주장을 굽히지 않으면, 분열과 갈등과 반목이 있게 되어 그 피해는 고스란히 국민들에게 돌아갈 것이다.
새로운 정부의 출범과 함께 한국의 정치인들이 진정한 협치와 통합을 이루어 우리 조국에 축복과 번영이 풍성하길 기도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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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승룡 목사 볼티모어중앙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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