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 잉카 트레일
▶ 안데스 산맥의 43km 여정서 ‘나’를 만나다
-인류의 배꼽 쿠스코
풍요의 땅이란 뜻의 페루. 넉넉한 안데스의 마음과 욕심 없는 잉카인의 인심이 어우러진 평화와 행복의 나라. 페루는 남미 최고의 여행지로 각광을 받는데 세계인이 가장 가보고 싶은 여행지로 꼽은 마추픽추(Machu Picchu)와 불가사의 중 하나인 나스카(Nazca) 문양, 세계에서 가장 긴 장엄한 안데스 산맥 아래 옹기종기 터를 잡고 수천 년을 살아오며 일구어 놓은 독특한 문화와 음식을 즐길 수 있기 때문입니다.
또 그곳에는 어느 기관이나 단체에서 선정하든 언제나 세계 10대 트레일 중 1위로 랭크되는 ‘잉카 트레일’(Inca Trail)이 있는데 이 길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어제 리마에서 합류한 두 여성이 더해지니 14명의 전사로 팀이 꾸려지고 우리는 트레커이자 탐험가가 되어 엘도라도 금광을 찾는 심정으로 오백년 전 가장 찬란하고도 융성한 잉카문명의 발상지 쿠스코를 밟았습니다.
쿠스코란 배꼽이란 뜻으로 인류와 우주의 중심이라는 자부심이 서린 곳입니다. 이방인의 침범이 있기 전 그저 올망졸망한 사람들끼리 안데스에 기대어 서로 어깨를 맞닿은 채 살아왔을 그때에는 말입니다. 쿠스코 중심에 상징적으로 지어진 침략의 유산. 십자가를 앞세워 스페인의 정복자들이 잉카인들의 문명위에 세운 교회. 태양의 신전을 허물고 지은 그들의 천주교회. 이질적인 문화의 복합이 그래도 아름다움으로 받아들여지는 것은 잉카 문명의 바탕이 너무도 완벽하기 때문이 아닐까!
-안데스 자연과 잉카의 고대문명
잉카 트레일. 총 43km로 비교적 짧지만 운무에 가려 신비를 더하는 산과 숲, 두터운 이끼와 관목들의 아열대성 정글, 무엇보다 잉카인들이 닦아놓은 돌길과 터널 등을 한 번에 즐길 수 있는 환상적인 트레킹 코스로 어쩌면 나 자신과 충실한 대화를 나눌 수 있는 수행의 길일지도 모릅니다.
더불어 마지막 목적지는 잃어버린 공중도시, 마추픽추를 만나는 이 걸음의 축제는 그야말로 모험을 즐기는 여행자들에겐 놓칠 수 없는 기회일 것입니다. 잉카 트레일은 한때 잉카제국의 수도였던 쿠스코를 출발해 마추픽추까지 오랜 날을 걸어야 하는 코스인데 정통 잉카 트레일은 오얀따이땀보에서 마추픽추까지 옛 잉카인들이 걸었던 길을 걸으며 안데스 자연과 잉카의 고대 문명을 동시에 즐깁니다.
세계에서 가장 깊은 협곡과 빙하, 눈 덮인 산봉우리, 미려한 폭포 등 안데스 산맥이 펼쳐 놓은 풍경화를 감상하며 걷다보면 무심한 듯 곳곳에 남아있는 잉카의 유적지를 만나게 됩니다. 룬쿠라카이, 사야마르카, 푸유파타아르카, 위나이와이나 등의 유적지를 거치면 마침내 마추픽추에 닿게 되는데 돌길을 따라 쿠스코의 변방 구름 속 깊은 산중에 놓인 이곳으로 향하다보면 베일에 가린 신비의 세계를 탐험하는 영화나 다큐멘터리 속 한 장면을 걷고 있는 기분마저 듭니다.
-고소 증세와 포터들
아직 고소에 깨어나지 못한 몽롱한 몰골로 버스에 실려 쿠스코를 출발하여 잉카 트레킹의 시작점 Piscacucho에 도착하여 배낭을 다시 꾸립니다. 어제 다들 고소적응에 신경을 쓰는데 아무 생각없이 시내 관광에 나서서 거리를 활보하다가 그만 두 사람이 증세가 나타났습니다.
고도 3천m의 숙영지
빠알간 노을에 물들다
우리 숙소로 직접 찾아 와준 가이드의 트레킹 설명회를 듣고 심각한 고민에 빠집니다. 트레킹을 포기하면 어떻게 되느냐? 무엇을 하며 시간 보내느냐? 가다가 고소로 도저히 못가면 어떻게 되느냐? 세상 근심을 다 토로합니다.
그저 시간이 해결해주는 이 잉카의 나라. 아침이 열리니 다행히 그 두 사람이 호전되어 종주의 다짐을 다시 되새깁니다. 인디오와 트레커들이 뒤엉켜 북적되는 마을 87km. 이 마을에서도 얼마나 많은 잉카의 문명이 지고 피었을까. 고용한 포터들에게 허가된 중량만큼 맡기고 나만의 여장을 꾸립니다. 각자의 길을 걸어와 같은 목표를 향해 걷게 되겠지만 또한 한편으로는 같은 목적을 가지고 왔지만 인생길 저마다의 향방으로 가야하듯이 트레킹을 하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모든 부담은 본인 스스로 감수 할 수밖에 없다는 것이 또한 우리네 삶과도 같습니다. 비록 어느 정도 동행들의 도움을 받을 수는 있어도 결단코 최고점을 내 스스로 넘어야 하는 나만의 인생길이며 순례길입니다. 걷다 보면 길이 보일 것이고 누구하나 재촉함이 없이 제몫을 지고 묵묵히 내 삶의 길을 걸을 것입니다.
관리소에서 도장을 받고 유장하게 흐르는 우르밤바 강을 건너니 잉카 트레일이 펼쳐집니다. 길섶에는 거대한 선인장들이 귀한 열매와 꽃을 피워내고 사루비아의 꽃향이 진하게 번지는데 맑고 푸른 하늘과 새하얀 조각 구름이 우리들의 전도를 축복하여 줍니다.
-산골마을의 인디오들
세상 절반의 식물이 여기가 조상이며 400여종이 넘는 감자의 본산이라고 자랑스러워하는 원주민 출신의 우리 팀 가이드는 거의 식물학자의 수준을 지닌 지식으로 나무와 풀 꽃 등을 빠짐없이 설명해주고 도중에 유적지에 대한 설명도 열심히 하지만 거의 이런 것에는 별 관심이 없습니다. 그냥 천천히 쉬지 않고 자신의 페이스대로 걸어가는 것. 트레킹에서 가장 힘을 들이지 않고 목적지까지 갈수 있는 방법이기도 하지요.
가는 도중에 볼 수 있는 잉카 원주민들이 사는 마을이라고 하기에는 너무 작은 부락이 이어집니다. 삶을 지탱하기 위한 수단들이 널브러져 있는데 거의 음료와 주전부리입니다. 그늘을 제공해주는 대가뿐만 아니라 우리 눈에는 애처롭게 살아가는 그들 삶의 애환이 서글퍼 그리 필요하지도 않지만 한두 가지 팔아줍니다. 무너진 돌담. 버티기도 힘들 것 같은 허물어져가는 흙집. 고산에 사는 원주민들의 거주지는 거의 비슷한 것 같습니다.
그래도 그들에게는 웃음이 떠나질 않습니다. 뭐가 그리 즐거운지. 가난이 무엇인지 조차도 비교할 수 없는 산골마을의 인디오들은 마냥 행복합니다. 우리도 때론 모르고 사는 것이 더 행복할 때가 있듯이 말입니다. 정오를 넘기고 어느 마을에 차려진 식탁. 전혀 부족하지 않은 그리고 정갈한 오찬을 들고나니 오히려 부족한 잠이 밀려옵니다. 낮잠을 청하니 한숨자라 합니다. 급할 것이 없는 오늘 일정이라며. 달콤한 오수였습니다.
-잉카의 피리소리
우르밤바강을 끼고 걷는 도중에 가이드가 유적지가 나타 날 때마다 열심히 설명을 합니다. 잉카인들이 돌을 쌓아 만들어 놓은 주거지인데 땅을 지배했던 신물이라 여기는 뱀의 형상으로 구성되어 있고 그 옛날 마추픽추를 오고 갔을 잉카인들이 이용했던 곳이랍니다.
계곡 속의 작은 마을과 가지런히 정돈된 다락 논이 어우러져 참 평화스러우며 보기가 좋습니다. 고도 3천을 찍는 지점인 와일라밤바 어느 상점 뒤뜰에 마련된 숙영지에 여장을 풉니다. 잘 쳐진 2인용 텐트 하나씩을 차지하고 잠자리를 고른 뒤 저마다의 휴식을 즐기는데 웃돈 주고 온욕 샤워를 하기도 하는 예기치 않은 호사도 누립니다. 아직 저녁 식사 까지는 한 시간이나 남아 맥주를 시켜 잉카 트레킹의 첫날 오늘의 노고를 달래며 잔을 돌립니다. 어둠이 거미처럼 기어들고 서녘하늘 노을로 불타는데 가이드의 처량한 잉카 음률의 피리소리가 이역 하늘 아래 머무는 길손의 가슴을 적십니다. 한잔 두잔 취기가 더해가면서 석양은 마지막 기운을 발하고 기울어 가는데 이 부족을 잇는 차스키가 달리던 잉카의 길 위에 있다는 자부심에 조금은 상기된 채 행복을 누리는 우리들의 자화상이랍니다.
(미주 트레킹 대표 mijutrekki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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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박춘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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