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보는 프랑스의 대문호 앙드레 모루아가 집필한 ‘미국사’(김영사 간)를 시리즈로 소개한다. 앙드레 모루아는 신대륙 발견부터 초강대국 반열에 오르기까지, 500년 미국 역사의 장대한 드라마를 유려한 문체와 심오한 통찰력으로 풀어냈다. 신용석 조선일보 전 논설위원이 번역을 맡아 원작의 미문과 의미를 충실히 살려냈다는 평이다. <편집자 주>
-리 장군의 도박
1863년 7월 3일 남군은 또 한 번 커다란 패전을 당했다. 버지니아 전투의 영웅 로버트 리 장군은 빅스버그 요새에 대한 압박을 약화하고 보급로를 확보할 목적으로 펜실베이니아로 진격했다.
그는 볼티모어, 필라델피아 혹은 워싱턴을 점령하면 다음 두 가지 일에 성공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그것은 국내에서는 빅스버그의 포위를 풀고 대외적으로는 유럽이 남부동맹을 승인할 거라는 전망이었다. 사실 이것은 매우 대담한 작전이었다. 왜냐하면 리치먼드를 무방비 상태로 방치해야 했기 때문이다. 어떤 사람이 말했다.
“만약 장군이 계시지 않는 동안 북군이 리치먼드를 점령하면 어떻게 합니까?”
리가 대답했다. “그때는 손에 쥐고 있는 여왕 패를 바꾸면 될 테지.”
-16만명의 대치
그는 셰넌도어 계곡으로 진격했고 처음에는 만사가 순조롭게 진행되었다. 남군은 펜실베이니아에 있는 모든 말을 징발하고 소, 돼지, 닭을 식량으로 조달했으나 가옥에는 손을 대지 않았다. 링컨은 남군의 진격을 저지하기 위해 조지 고든 미드(George Gorden Meade) 장군을 파견했다.
양군은 게티스버그 부근에서 만났는데 리 장군의 병력은 약 7만5,000명, 미드 장군은 8만 8,000명이었다. 공격과 방어를 임의로 할 수 있는 지형을 차지한 리는 공격해 들어갔다. 부하 장교들에게 “이제야말로 우리의 전투 실력을 양키들에게 보여주게 되었다”라고 말한 그는 연전연승의 기록을 자랑하는 자기 군대를 무적이라 믿고 있었다.
-버지니아 군대의 참패
사흘째 되던 날 조지 피케트(George pickett)가 거느린 버지니아 군대는 청색기를 따라 이때까지 보지 못했던 용감한 공격을 감행했다. 그러나 언덕에 도달하기도 전에 북군의 포화로 많은 병사가 쓰러졌다.
사상자가 너무 많아 리는 포토맥 강을 향해 후퇴하라는 명령을 내리지 않을 수 없었다. 미드 장군은 이를 추격해 리 군을 격파할 수도 있었지만 그도 매클레런처럼 조심성이 지나쳐 우유부단한 장군이었다. 그는 링컨의 끈질긴 주장에도 불구하고 적군이 무사히 패주하는 것을 방관했다. 링컨은 무릎을 치면서 개탄했다.
패전의 책임은 리 장군의 부관인 리처드 이웰과 제임스 롱스트리트에게 있었지만 항상 관대하던 리 장군은 두 사람을 옹호하고 스스로 책임을 졌다.
-링컨의 게티스버그 연설
링컨이 고대 그리스의 페리클레스와 데모스테네스의 연설에 견줄 만한 유명한 연설을 한 곳이 바로 많은 전사자가 묻힌 게티스버그의 전쟁터였다.
87년 전 우리의 조상들은 ‘자유롭게 태어난 모든 사람은 평등하게 창조되었다’는 명제를 신봉하면서 이 대륙 위에 새로운 국가를 창건했습니다. 지금 우리는 이 나라, 다시 말해 자유와 평등을 위해 이룩한 나라가 오랫동안 존속할 수 있느냐 없느냐 하는 시련을 받아 커다란 내란을 치르고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전쟁의 위대한 전쟁터에 모여 있습니다. 우리는 이 나라를 존속시키기 위해 스스로 생명을 버린 사람들에게 이 전쟁터의 일부를 최후의 안식처로 바치기 위해 여기에 모인 것입니다. 우리가 수행하려는 이 과업은 어디까지나 정당하고 적절한 것입니다. 그러나 넓은 의미로 본다면 우리는 이 땅을 기증하거나 신에게 봉납하거나 성역으로 만들 수 없습니다. 이곳에서 싸워 살아남았거나 전사한 용감한 사람들만 이 땅을 신성하게 할 뿐, 아무리 꾸며도 우리의 힘은 도저히 이에 미치지 못합니다.
세상 사람들은 우리가 지금 여기서 주고받는 말에 주의를 기울이지도, 오랫동안 기억하지도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용사들이 여기에 남긴 행적만은 영원히 잊히지 않을 것입니다. 이곳에서 싸운 그들이 존귀하게 추진해온, 아직 끝나지 않은 과업에 모든 것을 바쳐야 할 사람은 살아남은 우리입니다. 즉, 우리 앞에 남은 대업에 스스로를 바쳐야 할 사람은 여기 모여 있는 우리입니다. 명예로운 전사자가 숭고한 목적을 위해 최후의 충성을 다한 고귀한 희생정신을 계승함으로써 우리는 전사자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하는 데 굳은 결의를 바쳐야 합니다.
더불어 신의 가호 아래 이 나라에 새로운 자유를 탄생시키고 국민의,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정부가 지상에서 소멸치 않도록 위대한 과업에 몸을 바쳐야 할 것입니다.
-남부의 위기
게티스버그 전투 이후 리는 휘하 부대를 간신히 수습했으나 남군의 상황은 매우 위급했다. 빅스버그를 잃은 남부동맹의 동부 주들은 서부 주, 즉 아칸소, 루이지애나, 텍사스와 완전히 격리되었다. 또한 해상 봉쇄로 남부동맹은 유럽과도 연결될 수 없었다. 이제 남부는 나날이 압박해오는 공격자들에게 포위되고 말았다. 북부 해군이 항만을 봉쇄하는 바람에 남부는 식량, 옷, 군수품, 무기 등 모든 물자가 바닥났고 시민이든 군인이든 모두가 고통이 심했다.
남부에 남은 단 하나의 희망은 북부가 전쟁에 염증을 느끼는 것뿐이었다. 기대할 만한 이유가 없었던 것도 아니다. 링컨도 전쟁도 점점 인기가 떨어지고 있던 참이었다. 초기에 북부에서는 많은 지원병이 군기 아래로 모여들었다. 그런데 1863년이 가까워지자 지원병 수가 줄어들어 많은 주가 징집을 위해 장려금을 내야 하는 지경에 이르렀다.
<
신용석 번역>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