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피어 위에서 끝없는 수평선을 바라보며
▶ ‘아무것도 안할 자유’를 만끽하다
노스비치 안내센터에서 체사피크만 수평선으로 가는 피어.
쉰다는 것 또는 휴가라의 것의 뜻은 다양하게 정할 수 있다. 그 다양한 정의 중에는 ‘아무것도 하지 않을 자유’ 또는 ‘해야하는 것이 없는 상태’가 들어갈 것 같다. 워싱턴 디씨 부근에 그런 느낌을 주는 곳이 있다. 물가에 가만히 앉아서는 아무 생각 없이 수평선을 바라보는 곳. 그래서 뭔가 역동적인 것을 구하는 사람들에게는 그다지 맞지 않는 곳. 체사피크만을 마주한 작은 마을인 노스비치(North Beach)가 바로 그런 곳이다. 워싱턴 디씨의 동남쪽에 있는 메릴랜드주 캘버트카운티에 속한 인구 1,978명(2010년)의 작은 마을. 애난데일에서 46마일, 락빌과 엘리컷시티에서 55마일. 어디에서 출발하든 걸리는 시간은 대략 1시간 안팎. 안내센터 부근에 주차하고나서는 피어와 보드워크 위에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멍하니 게으름을 한껏 피워볼 수 있는 곳. 노스비치.
이 마을에서 운전할 때 주의점 하나. 노스비치 안내센터 앞 도로 처럼 이 마을의 물가도로는 일방통행 구간이므로 표지판을 잘 살펴보시길. 안내센터에 퍽 많은 자료가 준비되어있는데, 집에서 미리 인터넷으로 이 마을을 알아보고 가면 더 좋다. 이 안내센터를 지나 물쪽으로 접근하면 고풍스러운 시계가 얹힌 기둥을 지나 기다란 피어(pier)을 걷게된다. 오른쪽과 왼쪽에 작은 백사장이 있고 그 백사장 너머에 물가의 아름다운 주택들이 줄지어 서있다. 계속 걸어가면 체사피크만의 수평선을 마주하게된다. 이 피어 위에서 낚시를 할 수 있는데, 피어 양쪽에는 크지 않은 배를 정박시킬 수도 있는 시설도 있다. 날이 좋으면 이 피어에서 왼쪽 멀리에 있는 베이브릿지가 보이기도 한단다. 이 피어 끝의 양쪽에 기둥 위에 새집이 있는데 망원경이 있으면 더 자세히 볼 수 있다. 이 새의 이름은 물수리(Osprey). 텃새가 아닌 철새란다.
방문자 안내센터 곁에는 물놀이를 할 수 있는 아주 작은 백사장이 있다. 노스비치 주민은 무료이지만 성인(12세-54세)을 기준으로 하면 같은 캘버트 카운티 주민은 7달러, 외지인은 17달러를 지불해야한다. 어린이(3세-11세)는 각 4달러와 9달러. 부모와 자녀 둘이 갔다고 하면 (17x2)+(9x2)가 되어 52달러가 된다. 만만찮은 비용이다. 라이프 가드가 없어서 자기 책임하에 물놀이를 해야하는 곳인데 외지인에게 적용되는 이 적잖은 비용 때문에 어린이를 둔 가정의 원성이 높고, 인터넷 평점에서 별 하나(별 다섯이 만점)를 주는 사람들은 모두 그 이유 때문이다. 물놀이에 관심이 없어서 이 비용에서 자유로운 사람들은 노스비치에 대해 비교적 후한 평점을 준다.
안내센터 앞 피어에서 바라본 노스비치 남쪽 물가 모습.
그리고 안내센터에서 멀지 않은 곳에 습지를 구경할 수 있는 습지공원이 있다. 체사피크만의 모습이 너무 단조롭다고 생각되시면 이 습지에 들러보시길.
거듭 말하거니와 노스비치에서는 무슨 특별한 것을 기대하지 않는 것이 좋다. 기다란 피어, 물가를 따라 이어지는 보드워크 그리고 한없이 펼쳐진 수평선이 선물이다. 물론 안내센터 부근에 아이스크림가게, 식당, 골동품상점, 로컬 푸드를 파는 매장 따위가 있기는 하지만, 그것은 관광지의 모습이라기 보다는 동네주민을 위한 시설인데 외지인도 갈 수 있는 그런 느낌이다. 관광지에 왔다기 보다는 그저 이웃 마을에 잠시 들러서 조용히 쉬었다 가는 그런 곳이 노스비치인 것이다.
그럼에도 5월 6일(토) 오전 11시~오후 4시 사이에는 이벤트가 열리므로 너무 단조로운 것이 싫은 사람은 이 때 가보시길.
그런데 여기서 삶과 죽음을 생각해보는 기회를 가질 수 있다. 노스비치 물가에는 아주 많은 벤치가 있는데, 벤치 마다 추모동판이 붙어있다. 아프간 참전 중 전사한 군인, 할머니와 손녀, 자매, 부부 그리고 반려견 등등. 누군가의 죽음을 추모하는 이 동판들을 읽다 보면 이들의 죽음 앞에서 우리의 삶을 생각해보게된다. 동판에 있는 글귀 중 가슴에 와닿는 몇 가지를 여기에 옮겨본다.
언젠가 우리가 더이상 함께할 수 없는 날이 온다면
네 가슴에 날 간직해줘.
난 언제까지나 거기에 있을거야.
If there ever comes a day when we can’t be together,
Keep me in your heart,
I’ll stay there forever.
<곰돌이 푸>에 나오는 말.
세상을 떠날 때 가져가는 것이 아니라
갈 때 세상에 남겨두는 것이 중요한 것이지.
It’s not what you take with you when you leave the world behind,
It’s what you leave behind you when you go.
랜디 트레비스(Randy Travis)의 <세 개의 나무 십자가>(Three Wooden Crosses)라는 노래에 나오는 귀절을 응용한 것.
그대가 여기 있었기에 세상은 조금 더 아름다와졌습니다.
The world is more beautiful because you were in it.
모두가 이런 사람이 되기를 바라자.
그리고 베티 할머니와 에디 할아버지의 추모동판에 적힌 글은 보면서 부부라는게 뭔지 생각한다. 할머니 가신 후 17년을 홀로 지내신 할아버지의 고독이 가슴아프다.
우리 함께한 시간
물을 바라보는 것을 사랑했던 베티와
항상 그 곁에 지키던 에디
Our Time Together
For Bettie, who loved gazing at the water
and Eddie, who always sat beside her
안내센터 북쪽의 노스비치 물가에 줄지어선 집들(왼쪽). 철도박물관 뒤편에 있는 객차(가운데). 철도박물관 안의 일부.
벤치에 달린 수많은 추모동판을 읽으면서 김진철 시인의 <그래도 잊혀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라는 시의 마지막 부분을 떠올린다.
언젠가는 어차피 잊혀질 목숨이지만
그래도 잊혀진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그리고 가수 이문세의 노래 <나는 행복한 사람>의 첫 부분을 흥얼거려본다.
그대 사랑하는 난
행복한 사람
잊혀질 때 잊혀진대도
그대 사랑받는 난
행복한 사람
떠나갈 때 떠난간대도
여기까지 와서 수평선만 쳐다보고 갈 수는 없다고 생각되면 마을 구경을 해보자. 북쪽 즉 안내센터에서 수평선을 바라보면서 왼쪽으로 가는 길이 있는데 그쪽으로 방향을 잡고 물가를 따라서 계속 걸어가면서 물가 집들을 구경하는게 퍽 재미있다. 거기에는 단순 주거용이 아니라 수평선을 제대로 즐기기위해 만들어졌다는 것을 알 수 있는 예쁜 집들이 많다. 그리고 집의 이름을 적어서 붙여놓은 집들이 있는데 ‘Casa Marina’라는 이름과 ‘Maison Blanche’가 눈에 들어온다. 물가의 집, 하얀 집 쯤으로 번역되겠다.
그냥 물만 바라보다가 돌아가기 아쉽다고 생각되면 노스비치 남쪽의 체사피크비치에 있는 철도박물관을 가보자. 노스비치 안내센터에서 이 박물관 까지 걸리는 지리적 시간은 5분 남짓이지만 여기에 도착하는 그 순간 역사적 시간으로 100년 저 너머인 1900년대 초반으로 돌아가게된다. 1900년 부터 1935년 까지 워싱턴 디씨에서 여기까지 기차가 운행되었는데 1898-1899년에 지어진 마지막 역을 지금은 박물관으로 사용하고있다. 이 박물관 안에 들어가면 알게되지만 체사피크비치는 기차 뿐만 아니라 볼티모어로 가는 증기여객선이 운행되던 곳이기도 하다. 1900년대 초반에 이미 롤러 코스터가 있을 정도로 리조트가 융성했던 마을, 체사피크비치.
박물관 안으로 들어가기 전에 외부를 먼저 둘러보자. 자그마한 역사 뒤편에 돌로레스라는 이름의 객차 한 량이 복원되어 전시되어있는데, 보다 많은 빛을 객차 안으로 끌어들이기 위해서 천장에도 창이 나있는게 외관상 가장 큰 특징. 그리고 그 객차 내부의 천장에 퍽 아름다운 문양이 그려져 있으니 안을 꼭 들여다 보시길. 이 객차 곁에는 기관사가 기관차를 운전하던 기관실(Engineer’s Cab)을 덮개로 한 피크닉 벤치가 있어서 잠시 앉아 쉬면서 옛날을 추억할 수 있다. 관광용이 아니라 실제로 승객과 화물을 운반하던 증기기관차가 끌던 기차를 직접 타본 사람도 이제는 환갑을 넘긴 나이가 되어버린 그런 때에 우리는 살고있다……
이제 안으로 들어가보자. 자그마한 역사 안에 무척 많은 자료가 빼곡하게 들어차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내부 구경하기 전에 한 가지, 혹시 기차의 날(National Train Day)이라는 것을 들어보셨는지. 매년 5월 10일에서 가장 가까운 토요일이 기차의 날인데, 올해는 수요일이다보니 지역에 따라 5월 6일과 5월 13일로 나뉘어 기념한다. 이 박물관은 5월 6일을 기차의 날로 한다고 게시되어있다.
박물관에 들어서면 왼쪽 바닥에 놓인 증기기관차 헤드램프와 그 옆에 전시된 일등석용 고급식기가 눈을 끈다. 천장에는 1900년대 중반의 옛날 수영복이 전시되어 있어서 체사피크비치의 옛 영화를 상기시킨다. 건너편에 있는 방 바닥에는 기관실 기관사가 끈을 잡아당겨 울림으로써 전방에 경고를 알리는 종이 있는데 관람객이 직접 종을 울려볼 수 있다. 이 경종이 있는 방에는 여행용 가방이 몇 있는데 그중에 눈에 익숙한 디자인이 있다. 루이비통의 커다란 트렁크. 안내하는 분의 말을 들어보니 1900년대 초반의 것이란다.
이 박물관을 나서면 그 앞에 낚시용 전세보트의 정박장이 있다. 잔뜩 모여있는 낚시용 보트, 자주 볼 수 있는 것이 아니므로 역시 구경거리. 그리고 노스비치와 체사피크비치 사이에 체사피크비치 워터파크라는 물놀이장이 있는데 여기도 입장료가 마을주민, 카운티주민, 외지인 세 가지가 있다. ‘고무신집 아이가 고무신 한 켤레 더 신는다’는 옛날말이 생각나서 슬며시 웃게되는 마을, 노스비치와 체사피크비치.
방문정보
●노스비치 안내센터
인터넷 : http://www.northbeachmd.org/
주소 : 9023 Bay Ave, North Beach, MD 20714
- 화장실, 샤워시설, ATM 있음 - 무료 WiFi 가능함
- 워크보드 위의 금지사항 : 자전거, 롤러스케이트, 스케이트 보드 - 백사장에는 입장료 있음 - 백사장 금지사항 : 애완견동반, 불피우기, 주류, 고성방가, 유리용기사용 - 이 부근에는 일방통행도로가 있으므로 교통표지판을 잘 봐야함
●습지공원(Wetlands Overlook Park)
주소 : 4020 11th St, North Beach, MD 20714
●체사피크비치 철도박물관(Chesapeake Beach Railway Museum)
인터넷 : http://www.cbrm.org/
주소 : 4155 Mears Ave, Chesapeake Beach, MD 20732
개관시간- 주말 : 3월 중순-5월, 9월은 오후 1시-4시 / 6월~8월은: 오전 11시~오후 5시 -주중 : 4월~10월에 오후 1시~오후 4시 -입장료 없음, 기부금 환영 / 기념품 살 수 있음
●체사피크비치 워터파크
인터넷 : http://www.chesapeakebeachwaterpark.com/
주소 : 4079 Gordon Stinnett Ave, Chesapeake Beach, MD 20732
- 5월 27일 : 주말만 개장
- 6월 9일~9월 4일 : 매일 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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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사진 김성식 (VA, 스프링필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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