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토요일은 LA폭동 25주년이었다. LA 지역 한인 사회와는 달리 이 곳 워싱턴 지역에서는 대체로 조용히 그 날을 보낸 것 같다. 그러나 그 폭동이 우리에게 가져다 주었던 충격과 근본 원인들을 생각할 때 우리는 그 사건을 절대로 잊어서는 안 된다.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라도 폭동이 가져다 준 교훈들을 기억하고 계속 가르쳐야 한다.
그래서 나는 지난 몇 년동안 4월 29일이 찾아 오면 내가 교회 주일학교에서 가르치고 있는 9학년 학생들에게 조금이나마 LA폭동을 소개해 왔다. 배경을 설명하고 당시 현장 모습, 폭동에 대해 자신의 경험을 소회하는 장면이 담긴 간단한 비디오들을 학생들에게 보여주어 왔다. 물론 비디오 내용 자체가 성경 공부와 직접 연결되지는 않는다. 그러나 한인 사회에서 교회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과 폭동이 기독교인들에게 제공하고 있는 도전을 고려할 때 내가 맡고 있는 학생들에게라도 LA폭동의 의미를 배울 기회를 제공해 주어야 한다고 느꼈다.
LA폭동은 1992년 4월 29일부터 시작해 5일간에 걸쳐 일어났다. 이 폭동으로 인해 50명 이상의 사망자, 수천명의 부상자와 10억달러 이상의 재산 피해가 초래되었다. 그리고 우리 한인 사회가 가장 큰 피해를 보았다. 그러나 지난 몇 년간 내가 가르쳤던 학생들 가운데 이 폭동에 대해 들어본 학생은 거의 없었다. 아마 요즘은 한인 어른들 가운데에도 이 폭동에 대해 잘 모르는 사람들이 상당히 있을 것이다.
25년 전의 일이기에 나이 어린 학생들이나 젊은 청년들 그리고 미국에 온지 오래되지 않은 한인들은 모를 수 있다. 물론 그 가운데에서도 매년 찾아 오는 폭동 기념일을 전후하여 한인사회 언론 보도를 통해 이 폭동에 대해 배우고 생각해 보는 기회를 갖는 분들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위에 언급했던대로 이 폭동에서 가장 큰 피해를 본 것이 한인사회라는 사실을 고려할 때 우리는 이 날을 결코 그냥 지나칠 수 없다.
내가 학생들에게 보여 주는 비디오 가운데 미 주류 언론계에도 잘 알려졌던 이경원 (K.W. Lee) 대기자가 절규하는 모습이 담긴 것도 있다. 그는 우리 한인사회의 앞길은 우리 스스로가 정하고 개척해야지 결코 우리를 잘 모르는 주류 언론이나 정치인들 손에 놔두어서는 안된다고 강조한다. 또한 폭동 당시 LA타임즈에서 일하던 젊은 한인 사진기자의 현장 목격 회상 비디오도 있다. 그는 폭동의 피해자는 비단 한인들 뿐만이 아니었다고도 한다.
이 폭동은 흑인이었던 로드니 킹을 무자비하게 구타했던 백인 경찰 4명이 주로 백인들로 구성된 배심원 재판에서 무죄평결 받음이 직접적 도화선이 되었다. 그런데 엉뚱하게도 한인 사회가 가장 큰 피해자가 되었다. 데모대들이 경찰 방어선 때문에 백인 지역 진입이 어렵게 되자 코리아타운 한인 상권 지역으로 옮겨져 온 것이다. 혹자는 그 이유가 흑인들과 한인들 사이에 존재하고 있었던 잠재적 갈등이 표출된 것이라고도 한다. 폭동이 일어나기 한 주 전 한인가게 주인이 15세 흑인 소녀 손님을 총으로 쏴 죽게했던 두순자 사건에 대한 검찰의 항고가 기각되기도 했기 때문이다. 이 사건 1심의 예상보다 낮은 형량과 이후 상급법원의 검찰항고 기각이 흑인 사회를 자극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모든 갈등에 대한 근본적 이유는 흑인 사회가 빈곤, 실업, 그리고 낮은 교육의 울타리를 벗어나지 못하는 것에 있을 것이다. 폭동이 25년 지난 지금도 그 이유들은 대체로 그대로 존재한다. 그 사이 흑인 대통령을 선출하기도 했지만 크게 변함 없다. 물론 그에 대해 책임 소재를 따질 수도 있다. 그러나 문제 해결에 대한 합리적 대책 수립이 없는 한 LA폭동은 25년 전의 일회성 사건이 아니라 현재도 진행된다고 볼 수 있다. 지상 위로 분출되어 나오기만을 기다리고 있는 활화산이다. 그러기에 우리는 이 사건에 대해 후손들을 가르쳐야 할 뿐 아니라 문제 해결 방법 모색에도 힘을 보태야 한다. 이경원 대기자가 강조했던 것처럼 우리의 운명을 남의 손에 그냥 맡기고 있을 수 만은 없는 것 아닌가.
<
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