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식적으로 잘 납득이 가지 않는 점이 많아요” 한국의 국적법을 두고 지인이 한 말이다. 유학차 도미해 취업이민으로 미국에 정착한 뒤 지금은 시민권자인 그는 고등학생 아들이 선천적으로 복수국적 신분이 된 상황을 이해하기가 쉽지 않았음을 털어놨다. 만 18세가 되는 해의 3월 말 이전까지 한쪽 국적을 정리하는 ‘국적이탈’이라는 것을 해야 한다는 사실도 얼마 전에야 알았다고 한다.
그가 가장 어이가 없었던 점은 태어날 때 하지 않았던 아들의 한국 출생신고를 뒤늦게라도 해야만 국적을 이탈할 수 있도록 해놓은 규정이었다. “뭔가 필요 없는 것을 강제로 떠맡긴 다음 그것을 곧바로 다시 내놓도록 하는 느낌인데, 이건 좀 상식에 반하는 것 아닌가요? 처음부터 주지 않으면 될 것을 왜 이렇게 복잡하게 만들어놓았는지 모르겠다”는 게 그의 불만이다.
이처럼 미국에서 태어났어도 한국의 국적법에 따라 자동적으로 한국 국적까지 동시에 갖는 선천적 복수국적 신분 2세 자녀를 둔 한인부모들이 겪는 답답함이나 불편함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국적법 그리고 이와 연계돼 있는 병역법 관련 규정들이 너무나 복잡하고 상식에 반하는 행정편의적 측면이 많기 때문이다.
사실 선천적 복수국적 이슈는 미주 한인사회에서 한국의 재외동포 정책 개선을 요구할 때 가장 큰 문제 중 하나로 부각돼왔다. 특히 남성의 경우 국적이탈 시기를 놓치면 병역문제가 걸림돌이 돼 한국 연수나 취업시 뜻하지 않은 피해를 볼 수 있는 상황 때문에 벌써 여러 차례 선천적 복수국적법에 대한 헌법소원이 제기되기도 했다.
여기서 문제가 되는 핵심 이슈 두 가지는 우선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한 번 가본 적도 없고 한국에 출생신고도 돼 있지 않은 한인 2세 남성이 자신도 모르게 병역 자원으로 분류될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만 18세가 된 이후에는 이를 뒤늦게 알고 대처하려 해도 38세가 될 때까지는 법률상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다는 점이다.
하지만 한국에서는 정부나 정치권이 ‘병역 형평성’에 대한 국민의식을 내세우며 ‘개선의 시급성’을 인정하지 않는 분위기이고, 헌법소원도 지금까지 네 차례나 각하 또는 기각된 것처럼 법조계의 해석도 이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이제 나흘 후면 한국의 차기 대통령이 탄생하는 대선 국면이지만 이 선천적 복수국적 문제는 여전히 찬밥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 주요 대선 주자들이 내놓은 재외동포 정책들에서 이 문제에 대한 언급은 찾아볼 수 없으니 말이다. 헌법소원까지 제기됐던 이 이슈를 대선주자를 낸 각 당의 재외동포 정책 담당 전문가들이 모를 리가 없을 터인데, ‘재외국민보호법 강화’나 ‘재외동포 정책 전담기구 설치’와 같은, 그동안 국회에서 재탕, 삼탕 하다 결국 흐지부지돼 왔던 생색내기용 정책들만 나열했지 선천적 복수국적 피해 방지를 위한 대책은 그 어느 데도 없다.
물론 원정출산 등 일부 편법 복수국적자들이 국적이탈을 ‘병역의무 회피’용으로 악용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같은 원칙을 흐트리지 않는 범위에서 선천적 복수국적으로 인한 잠재적 선의의 피해자들을 방지하는 방안은 얼마든지 만들 수 있을 것이다.
미국에서 태어나 한국에 출생신고를 한 경우와 하지 않은 경우를 구분해, 한국 출생신고를 하지 않은 선천적 복수국적 2세들은 만 18세가 되면 한국국적이 자동으로 말소되도록 하는 것도 해법이 될 수 있다. 또 규정을 제대로 몰랐거나 개인적 사정 등으로 만 18세 때 국적이탈의 기회를 놓쳐버린 경우에는 ‘유예 기간’ 도입이나 별도의 구제 기회를 제공하는 것도 방법이 될 것이다.
급작스런 조기대선 상황에서도 이번에는 그 어느 때보다 많은 재외유권자들이 투표권을 행사한 것으로 집계됐다. 재외동포들이 이같이 커진 ‘보팅 파워’를 가지고도 ‘선천적 복수국적’ 문제가 대선 정국에 강력하게 제기돼 새로 출범할 정부의 재외동포 정책에 해결책이 반영되도록 하는 분위기가 조성되지 못한 게 아쉽다. 선의의 피해자를 양산할 수 있는 현행 선천적 복수국적 제도는 반드시 개선돼야 한다는 점을 오는 5월9일 탄생할 새 정부에 재외 한인사회가 계속 강력하게 주문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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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종하 부국장·사회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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