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1차 세계대전(1914-1918)은 20세기의 가장 큰 분수령 중 하나로 평가된다. 그 전쟁은 독일, 러시아, 오스트리아-헝가리 그리고 오토만(터키) 네 제국의 몰락을 초래 했다. 그리고 1917년 4월 참전 했을 때는 불과 군대 수 25만으로 세계 제 13위였던 미국이 1918년 11월의 종전 때는 400만 이상의 군대를 가지게 되어 군사대국으로 등장한다. 또 그 전쟁은 러시아의 공산혁명을 촉발시켰으며 불과 20년도 못되어 제2차 세계대전의 바탕이 된다.
1차 대전은 러시아와 일본이 영국, 블란서, 이태리, 미국 등의 우방국들로 독일 등 중 유럽 국가들과의 전쟁이었기 때문에 2차 대전 때의 대전국들과 비교할 때 국제관계에 있어서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는 철칙을 뒷받침 한다. 제정 러시아의 폭정에다 1차 대전 참전으로 민중의 분노가 최고조에 달해 러시아 혁명이 발발한 것이 1917년 중반으로 알렉산더 커렌스키가 혁명정부의 수상이 되었다. 1917년 4월 9일 블라디미르 레닌이 스위스에서 기차를 타고 러시아로 향한다. 독일은 세인트 피터스버그로 달려가는 그가 탄 기차를 최대한의 속도로 독일 지역을 통과하게 협조한다. 그가 러시아에 가서 더 러시아의 혼란을 가중시키면 러시아가 전쟁에서 손을 떼게 될 것이라는 계산이었다. 레닌주도하의 공산 볼세비키(과격파)혁명이 11월에 성공해서 커렌스키는 불과 5개월 만에 권좌에서 쫓겨나 망명의 길에 오른다.
독일제국 군대의 총인원은 1,100만 명이었는데 10% 이상인 177만 이상이 전사를 했다. 러시아의 전사자 수도 그와 비슷했다. 영제국은 전사자가 90만이었지만 블란서는 130만이 넘었다. 승전국들이 강화조약에서 독일에게 철저한 배상을 요구한게 이상한 일이 아니다. 독일제국의 해외식민지들을 주로 영국과 블란서에게 빼앗꼈던 것은 약과이고 330억불(현재가치로는 4,020억불)을 독일이 지불해야 했다. 와이마르 공화국이 1923년에 그 배상액수의 분할금을 지불못하게 되자 상상하기 어려운 인플레이션(통화 팽창)현상이 벌어진다. 1923년 1월에 250마르크이던 빵 한 덩어리가 11월에는 2,000억 마르크가 된다. 돈의 가치가 형편없이 하락되니까 돈을 불쏘시개로 쓰는 게 예사였단다. 또 임금을 받을 때 트렁크로 받았으며 어떤 사람이 자기 임금이 든 트렁크를 잠깐 놓아두고 돌아와 보니 도둑이 돈다발을 다 빼 놓고 트렁크만 가져갔다는 일화도 있다. 데모와 정변이 연달아 있다가 히틀러의 국가 사회주의당(나치)이 집권하여 소련의 공산제국과 함께 역사상 최악의 전체주의 국가가 된다. 히틀러는 영불에 대한 선전포고 이전에 스탈린과 불가침조약을 맺어 유럽의 여러 나라들을 눈 깜짝할 새에 집어 삼킨다. 그리고 1차 대전 때는 독일의 적대국들이었던 이태리 그리고 일본과 추축국이 된다. 히틀러의 소련침입으로 소련은 영, 불, 미국편이 된다.
화학전쟁, 가스 마스크, 화염 방사기, 철모, 탱크전투, 공중전투, 항공모함, 여자들의 참전, 혈액은행, 전쟁과 애국심의 고취를 위한 선전 영화 등 새로운 것들을 등장시킨 1차 대전은 또한 후방(민간인)과 전방(전투원)의 구별도 말살 시켰다. 2차 대전은 더 처참했다. 유대인 600만을 포함한 나치 수용소에서의 여러 나라 사람들의 집단 가스 독살은 인류의 최악의 범죄로 남아있다. 러시아의 베를린 점령으로 히틀러가 자살한 이후에도 일본은 전쟁을 끝낼 기미를 안보였다. 천황을 위한 옥쇄를 영광으로 여기는 카미가제 조종사들로 상징되는 일본의 최후항전이 미군의 전사자들을 더욱 양산시킬 것임을 우려한 트루먼 대통령의 원폭투하 결정은 1945년 8월 15일의 일황의 항복 선언을 가져왔다. 그리고 폭탄하나로 10만명이 몰살되는 핵전쟁 공포의 시대가 전개되었다. “확실한 상호 파멸(MAD: Mutually Assured Destruction)이란 개념으로 현재까지는 핵전쟁을 피해 볼 수 있었다. 하지만 김정은의 핵무장과 미국 본토까지의 운송수단인 대륙간 탄도탄(ICBM)의 실험은 특히 한반도에서의 핵전쟁발발 가능성을 대두시켜 많은 사람들을 긴장시킨다.
전쟁은 정말로 무서운 현상이다. 사람을 하나 죽이면 살인범이 되는데 전쟁시에는 적군을 많이 죽일수록 영웅이 되는 괴리 때문이다. 그리고 흉보면서 닮는다는 이치는 전쟁에서도 예외가 아니다, 1차 대전 때 독가스는 독일이 먼저 썼다. 그러자 영국과 블란서 쪽에서도 독가스를 사용한다. 어떤 기관총사수의 목격담은 이렇다. 참호에서 기관총을 겨누어 쏘아대면 적군들이 쓰러져 풀을 깎은 것처럼 되는데 또 계속 몰려오면 같은 일들이 반복되는 것을 보면서 “저 사람들도 아내들의 남편들이며 아이들의 아버지들인데 왜 내가 이렇게 해야되나”라고 했단다. 전쟁은 과부들과 고아들 그리고 피난민들의 대량생산, 따라서 피해자들의 달래기 어려운 슬픔의 주범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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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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