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어린이만 앓는다는 건 편견, 성인 유병률 4.4%로 추정 우울증·알코올 오남용 등 공존질환 많아 증상 인지 늦어
▶ 약물과 행동치료 병행하면 치료율 68%까지 올라 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 환자는 나이가 들수록 과잉행동보다는 충동성, 주의력 결핍 등의 증상이 두드러지는 등 증상 양상이 달라지면서 제대로 병을 인지하지 못하는 일이 잦다. <세브란스병원 제공>
미국 영화 ‘월트의 상상은 현실이 된다(2013)’의 주인공 월트(벤 스틸러 분)는 다른 사람과 얘기하다가 갑자기 멍해지곤 해 당황스럽게 만든다.
현실에서도 월트 같은 증상으로 업무 실수가 잦아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우울증이나 공황장애까지 걸리는 이가 적지 않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주의력결핍과잉행동장애(ADHD)일 가능성이 있다.
ADHD는 과잉행동, 충동성, 주의력 결핍 등이 주 증상이다. 보통 세 가지가 동시에 나타나지만 주의력 결핍만 두드러지는 ‘조용한 ADHD’도 있다. 겉으로는 알기 힘들어 진단도 어렵다. 대한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이사장 정유숙 삼성서울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가 제2회 ADHD의 날(4월 5일)을 맞아 일반인 1,068명과 성인 ADHD 진단 경험이 있는 정신과 전문의 100여 명에게 성인 ADHD 인지도 및 현황에 대한 설문 조사했는데 성인 ADHD의 치료율이 1%도 되지 않았다. 또한 95%의 환자가 우울증 등을 경험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이 들면서 과잉행동↓ㆍ충동성ㆍ부주의 여전”
ADHD는 어린이만 앓는 병으로 많이 오해한다. 이번 조사에서도 일반인 가운데 60%가 성인 ADHD가 있는 줄 몰랐고, 심지어 응답자의 4.3%는 소아청소년 질환으로 잘못 알고 있었다.
ADHD는 발병 후 청소년기를 거쳐 성인기까지 증상과 기능장애가 지속되는 신경정신질환이다. 어린이 ADHD 환자의 70%는 청소년기까지 지속되고, 이 가운데 50~65%는 성인이 돼도 고쳐지지 않는다. 학회는 우리나라 성인 ADHD 유병률을 4.4%(82만 명)로 추정하지만 이번 조사 결과 실제 치료하는 성인 환자는 0.76%로 매우 낮았다.
성인 ADHD를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다 사회적 편견 등으로 치료를 꺼리기 때문이다. 병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하는 데에는 나이 들면서 증상이 달라져서다. ADHD의 가장 흔한 증상인 ‘과잉행동’은 나이 들면 줄지만 ‘충동성’과 ‘부주의’ 증상이 두드러진다. 상당수 성인 ADHD 환자는 이 같은 증상 때문에 직장생활에서 실수가 잦고, 일 처리를 계획적으로 하지 못하고, 업무 수행 능력이 떨어지는 등 다양한 양상을 보인다.
설문조사 결과, 성인 ADHD 환자가 진료실에서 가장 흔히 호소하는 증상으로 ▦집중력 저하 ▦빈번한 건망증 ▦심한 감정기복 ▦우울한 기분 등이 꼽혔다. 일반인이 성인 ADHD 증상이 주로 ‘가만 있지 못하고 자꾸 움직인다’는 과잉행동을 선택한 것과는 전혀 다르다.
또한, 진료실을 찾는 성인 ADHD 환자 가운데 우울증, 반사회적 인격장애, 공황장애, 불안장애, 알코올이나 약물 오남용 등 물질사용장애 등 1개 이상의 공존 질환을 경험하는 비율이 95%나 됐다.
이소희 학회 홍보이사(국립중앙의료원 정신건강의학과)는 “성인 ADHD 환자가 증상을 잘 알지 못해 기저(基底)질환인 ADHD가 아닌 공존 질환만 치료하는 등 올바른 치료를 하지 못하고 있다”고 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는 지난해 9월 ADHD 치료제의 의료보험 급여 적용을 18세에서 65세로 확대했다.
이밖에 성인 ADHD 환자 가운데 어린 시절 증상을 인지한 비율은 25.7%에 불과하고, 성인이 된 뒤에야 안 경우도 56.8%여서 ADHD 인지 비율이 턱없이 낮았다. 게다가 증상을 알고도 즉시 정신과를 방문하기보다 1년 이상, 심지어 10년이 넘어서 병원을 찾는 사람도 82.4%나 됐다. 정유숙 학회 이사장은 “ADHD가 어린이 질환이라는 잘못된 인식과 편견으로 성인 ADHD 환자가 82만 명 정도되지만 실제 치료율은 0.76%로 매우 낮다”며 “ADHD는 올바르게 치료하면 충분히 극복될 수 있다”고 했다.
“약물ㆍ행동치료 병행하면 68% 치유”
어린이든 어른이든 ADHD를 치료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은 약물치료다. 과잉행동이나 충동성, 주의력 결핍은 모두 뇌의 같은 부위(전전두엽)에 이상이 생겨 나타난다.
정 이사장은 “약물치료가 가장 기본 치료이고 행동치료를 보조적으로 한다”며 “ADHD 치료제는 뇌 전전두엽 부위에 신경전달물질(도파민ㆍ노르에피네프린)을 보충한다”고 했다. 미국 국립보건원에 따르면 약물치료는 56%의 치료율을 보이지만 행동치료는 35%이고, 두 가지 치료를 병행하면 68%까지 치료율이 올라간다.
하지만 실제 치료하는 사람은 10% 정도에 불과하다(소아청소년정신의학회 조사 결과). 약물 부작용을 우려하거나(25%) 필요성을 느끼지 못했기(34%) 때문이었다.
정 이사장은 “아이의 성장에 방해된다는 오해가 있지만 관련 연구에 따르면 약물 복용은 성장과 큰 관련이 없다. 드물게 성장 지연이 나타나지만 식욕저하에 따른 일시적 현상으로 곧 성장 속도를 회복한다”고 말했다. 정 이사장은 “치료제 일부가 향정신성의약품으로 분류돼 마약으로 오해를 받는다”며 “약사법에 따른 분류이지 마약 같은 중독성은 전혀 없고 오히려 치료 받은 어린이는 청소년기 음주ㆍ흡연 남용 위험을 85%까지 낮춘다는 연구결과도 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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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익 의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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