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료보험이 이렇게 복잡한 줄 미처 몰랐다.”
오바마케어 폐지 공약을 철회하기 3주 전 도널드 드럼프가 내놓은 공개발언이다. 그 다음 차례는 “세제개혁이 이토록 복잡할 줄 미처 몰랐다”가 될 것이고 아마도 “국제 무역정책이 이렇게 까다롭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단 한명도 없을 것이다” 등등의 발언이 줄줄이 그 뒤를 이을 것이다.
그러나 의료보험은 사실 그렇게 복잡하지 않다. 현재 치료를 필요로 하지 않는 사람들이 이를 필요로 하는 환자의 의료비용을 지원하되 필요하다면 도움을 제공한 사람들에게도 같은 혜택을 보장한다는 것이 의료보험의 기본원리다.
유감스럽게도 공화당은 이처럼 단순한 명제를 강력히 부인하는데 무려 8년의 세월을 소모했다. 그리고 의료보험의 작동원리에 대한 진지한 사고를 거부한 것이야말로 현재 트럼프와 그의 의회 내 우군들을 패배자처럼 보이게 만든 근본적인 이유다.
그러나 정치를 잠시 뒷 켠으로 밀어두고 물어보자. 앞으로 의료보험을 개선하려면 어떤 조치를 취해야 할까?
적정부담보험법(ACA)라고도 불리는 오바마케어는 두 가지 방식으로 건강관리제공의 근본적인 이슈를 다룬다.
우선 가입자 증가의 절반이상은 세금을 징수한 후 세수 일부를 국민의 의료비로 사용하는 방식인 메디케이드 확대에서 나온다. 공화당 지배하에 있는 지역을 제외하면 이 방식은 훌륭히 작동하고 있다. 이곳의 공화당 지방정부는 주민들에게 연방정부 지원금이 돌아가도록 허용치 않는다.
그러나 메디케이드는 최저소득 가정만을 커버한다. 소득이 연방정부가 정한 최저 기준선을 넘어서면 ACA는 민간보험업체들에 의존하는데 이들은 관련 규정과 보조비를 결합해 의료보험을 부담가능한 수준으로 유지한다.
이 역시 일부 지역에선 제 몫을 해냈다. 예를 들어 의료보험개혁이 의도된 기능을 수행하도록 만들기 위해 노력을 기울인 캘리포니아에서 의료보험 가입자의 숫자는 급증했고 프리미엄은 예상치 아래에 머물렀다.
하지만 보험 미가입자에게 부과되는 벌금에도 불구하고 건강한 사람들 가운데 소수만이 의료보험을 구입했다. 높은 디덕터블로 인해 매력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그 결과 보험사가 아주 없거나 극히 드문 주도 일부 생겨났는데 소형 주의 농촌 카운티의 상황이 특히 심각했다.
그렇다고 의료보험이 “죽음의 소용돌이”로 빠져든 것은 아니다. 프리미엄이 급격히 올랐다 해도 보조금 덕분에 보험료는 부담 가능한 수준에 머물렀고 의회예산국(CBO)도 시장이 안정되어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의료보험 시스템은 분명 개선의 여지를 지니고 있다. 과연 이것을 어떻게 개선해야 할까?
조금 더 돈을 써야 한다는 것이 하나의 중요한 대답이 될 것이다. 오바마케어는 비용이 두드러지게 저렴한 것으로 드러났다. CBO는 의료개혁법의 비용이 국내총생산(GDP)의 0.7% 정도로 당초 예상보다 3분의 1가량 낮은 것으로 본다. 이 정도면 사실 지나치게 싸다.
초당파 연구소인 ‘어번 인스티튜트’ 보고서는 ACA가 “본질적으로 자금을 충분히 조달받지 못한 상태”라며 만약 지금보다 후한 보조금을 제공받는다면 의료보험 플랜의 디덕터블을 낮춰 훨씬 매끄럽게 운용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 보고서는 GDP의 0.2% 정도를 보조비로 추가 지출할 것을 건의한다. 달리 표현하자면 공화당의 부유층 감세 경비의 절반가량에 해당하는 액수다. 공화당은 최근 부유층 감세안을 트럼프케어에 포함시켜 의회를 통과시키려 시도하다 실패했다.
다음으로 보험업계 내부의 부적절한 경쟁 문제는 어떻게 처리해야 할까?보조금을 증액하면 보험가입이 늘어날 것이고, 이는 다시 더 많은 보험사들을 시장으로 끌어들이는 계기가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대비해 정부가 원하는 사람들에게 직접 보험을 판매하는 공공 옵션(public option) 아이디어를 부활시키는 것이 어떨까? 이렇게 되면 최소한 민간보험업체가 기피하는 지역에서도 소비자들은 공공 플랜을 구입할 수 있을 것이다.
재보험 연장과 위험을 분담하는 리스크 풀(risk pool)이 예상보다 열악한 것으로 밝혀진 보험사들에 대한 보상 등 다른 기술적인 일들도 적지 않다. 일부 애널리스트들은 “장외”(off-exchange) 플랜들을 정부가 관리하는 마켓플레이스로 옮기는 것 역시 상당한 가입자 증가를 가져올 것이라고 주장한다.
트럼프가 자신의 대선 공약으로 내걸었던 건강보험 커버리지 개선을 진심으로 원하고, 오바마케어가 계속 유지될 것이라는 사실을 기꺼이 받아들인다면 점진적인 변화로 의료보험시스템을 보다 효과적으로 만들기 위해 그가 할 수 있는 일이 제법 있다. 게다가 이를 추진하는 과정에서 적지 않은 민주당의 협조도 받게 될 것이다.
두말 할 나위 없이 나는 이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기대하지 않는다. 오바마케어 개선은 많은 작업과 우 클릭이 아닌 좌 클릭을 요구한다. 이 모두 공화당이 듣기 원하는 얘기가 아니다.
트럼프케어 표결실패에 대한 트윗 통수권자의 첫 반응은 예상대로 보복을 다짐하는 것이었다. 그는 트럼프케어의 정치적 실패와 관련해 단 한번의 의논조차 한 적이 없는 민주당을 비난했다.
트럼프는 “오마마케어가 폭발을 일으킬 것이며 그같은 사태가 실제로 발생하면 모든 책임은 민주당이 지게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
법집행을 담당하는 행정부 책임자의 이같은 발언은 미국인의 의료보험제도를 사보타지하고 그에 따른 재앙의 책임을 다른 사람들에게 돌리겠다는 다짐처럼 들린다.
하지만 분명한 사실은 오바마케어에 기반을 둔 의료시스템 개선이 그리 어렵지 않으며 그다지 복잡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점이다.
■폴 크루그먼 약력
-예일대 경제학부 졸업, MIT 경제학 박사
-2008년 노벨 경제학상 수상
-현 뉴욕시립대 경제학 교수
-1999년~현재 뉴욕타임스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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폴 크루그먼 교수·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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