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가주에 또 하나의 한인회가 설립될 모양이다. 한인회 무용론을 주장하는 한인들도 있지만 한인회는 미주이민사와 궤를 같이하면서 한인들의 권익 옹호 대변자로 성장해 지금은 미주 전역에 163개 한인회가 세워졌다.
한인들의 정체성을 유지하며 역사의 희망을 키워가는 한인회가 이스트베이에 또 하나 생긴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다. 그러나 동포들의 고른 참여와 협력없이 한인회가 특정단체 중심으로 설립되는 것에 선뜻 긍정의 시선을 보내기란 뭔가 개운치 않다.
EB노인봉사회가 노인회 타이틀로 동포사회 권익 신장사업을 하기에는 역부족임을 느껴 한인회 설립 필요성이 절실해졌다고 추진위원들은 주장했다. 또 오클랜드 시장이나 알라메다카운티 수퍼바이저가 카운티가 다른 SF한인회장의 협력 요청을 받아주지 않기에 EB한인회가 있어야 한다는 논리를 내세웠다.
그들은 카운티마다 한인회가 설립돼야 하느냐는 반박에 EB지역 타 도시나 카운티에서 자체 한인회를 설립한다면 적극 지원하겠다는 조항도 정관 초안에 명시하면서 한인회가 많아진다면 그 또한 한인들에게 좋은 일 아니냐고 말했다.
물론 그럴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우후죽순처럼 필요성에 의해 한인회가 설립된다면 한인회 정통성과 대표성은 손상될 것이며 허약해질 것이다. 한인회와 일반 봉사단체간의 차별성도 없이 한인회 이름만 남발하게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커뮤니티 역량도 분산돼 단합된 힘을 발휘하기도 쉽지 않을 수 있다.
추진위는 4만여명으로 추정되는 이스트베이 한인 중 400명에게 한인회 설립 동의 서명을 받았다면서 타당성을 내세웠다. 그러나 1%의 동의로 대표성을 부여하기엔 턱없이 부족한 숫자이다. 나머지 3만9,600명은 한인회가 만들어지는지도 모르는 상황에서 한인회가 만들어지는 것이다.
동포들이 한인회 설립 필요성을 따지며 방향을 세워나가는 공청회가 먼저 선행돼야 하는데 추진위는 한인회 설립을 사실화하고 정관 초안을 완료한 뒤 동포 의견수렴 정관제정 공청회를 내달 8일 개최한다고 밝혔다.
한인회 운영방식의 큰 틀을 세우고 나서 동포들에게 형식적인 절차를 구하겠다는 의지로 보여진다.
한인회로 인정받으려면 노인회가 줄곧 진행하던 사업을 한인회란 이름으로 굳이 하려는 이유를 설득력있게 전해야 할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인접 한인회와 마찰을 빚어가면서까지 한인회란 이름을 놓을 수 없는, 그 이름이 가진 대표성의 후광만 갖고 싶은 욕심으로 비춰질 수 있다.
한인회란 이름에 걸맞는 정체성과 사업들이 충분히 계획돼 있지 않으면서 한인회 시스템만 구축해놓겠다는 것이 과연 동포들을 위하는 것인지도 생각해봐야 할 것이다.
또 EB한인회 추진위는 이사회에서 한인회장을 선출한다고 밝혔다. 한인회장 선거시마다 불거지는 잡음과 갈등, 불화 등을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이사회 기능을 강화한다고 했으나 이 역시 이사들간의 담합, 내부 조율을 거쳐 끼리끼리 나눌 수 있는 부패의 함정이 도사리고 있다.
직선제는 선거를 치르는 비용도 만만치 않고 때론 깊은 상처를 남기기도 하지만 한인회라면 한인들이 직접 선출하는 형식을 갖춰야 대표성의 시비를 만들지 않을 것이다. 직선제 참여율이 낮다면 한인 명부를 데이터베이스화해 온라인 오프라인 등록제로 투표율을 높이는 방법도 강구해볼 수 있다.
한인회장 선거때마다 문제가 되는 대결구도, 불투명한 재정 운영, 일부 회장들의 그릇된 명예욕, 과시적 행사에만 집중해 정작 동포권익 보호에는 무심한 한인회가 동포들의 외면을 받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 외면에서 벗어나려면 이제 한인회는 자각과 반성을 통해 동포사회가 기대하는 역할을 모색하는 데 더 힘을 실어야 할 것이다. 시대가 변화하고 주류사회 진출도 넓어진 마당에 동포들이 한인회에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제대로 논의된 적이 없다.
한인회가 주류사회와 한인사회를 이어주는 창구로서 한인사회의 정치적 역량을 모으고 커뮤니티를 위해 봉사하는 단체라는 원론만 되풀이해서 말해왔을 뿐이다. 한인회는 한인들이 먼저 존재를 인정해줄 때 값져지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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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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