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가 인양됐다. 차가운 바닷물 속에 잠겨 있다가 천일이 지난 후에나. 탄핵이 인용됐다. 검찰의 대면조사를 받았다. 청와대 주인에서 형사 피의자로 전락한 박근혜 전 대통령의 모습이 클로즈업되는 상황에서 세월호는 거짓말 같이 세상에 그 모습을 다시 드러낸 것이다.
우연이겠지. 그러나 그렇게 치부하기에는 그 타이밍이 너무 절묘하다고 할까. 탄핵이 이루어지자 바로 인양되다니…. 모두 우연일 수 있다. 세월호 참사, 비선실세 국정농단, 촛불시위. 그리고 탄핵사태에 이르기까지. 그러나 우연이 겹치면 필연이 되는 법인가. 이 우연처럼 보이는 일련의 사태가 한 시대의 종막이라는 필연적 상황을 불러왔기에 하는 말이다.
아버지에 걸쳐 딸도 대통령 직을 비극리에 그만두게 됐다. 딸은 탄핵이라는 정치적 사형선고와 함께 아버지의 흔적도 지우고 말았다. 한 세대 이상 대한민국을 지배한 박정희 패러다임에 종언을 불러온 것이다.
이제는 초조하게 사법당국의 처분만 기다리고 있는 박근혜 전 대통령. 그 뒷모습은 만상을 떠올리게 한다. 문득 한 가지가 스친다. 박정희 패러다임의 종언은 ‘대한민국 안에서만’의 정치사적 의미를 지닐까. 뭔가 또 다른 필연을 동반하고는 있지 않을까 하는 것이다.
일란성 쌍생아로 표현하면 지나칠까. 유신체제와 수령유일주의 체제 말이다. 그 두 체제의 탄생은 공교롭게도 똑 같은 1970년대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그리고 근 반세기. 대한민국을 짓눌러왔던 박정희 신드롬은 마침내 소멸됐다.
같은 반세기. 북에서는 3대 세습이 이루어졌다. 수령유일주의는 여전히 강고해 보인다. 그런데 북한발로 전해지는 뉴스들이 그렇다. 장성택 처형. 공포의 통치, 잇단 핵실험. 김정남 암살. 우연 같다. 그러나 하나하나 겹쳐서 필연으로 이어지는 것 같다. 수령유일주의 체제 붕괴라는.
조크로 들렸다. 맨해튼의 부동산업자에 리얼리티 쇼 진행자다. 그런 도널드 트럼프가 미 대통령 선거에 뛰어들었다는 사실이. 그런데 승점을 쌓아간다. 우연이겠지. 우연이 계속 겹쳤다. 뒤돌아보니 트럼프 대통령 당선은 필연이었다.
그 트럼프의 발언이 여간 예사롭지 않다. “그런 일은 없을 것이다.” 장거리미사일개발과 함께 미국을 공격할 능력을 곧 갖출 것이다. 연초 김정은이 내뱉은 호언이다.
그에 대한 트럼프의 응수다. 이후 트럼프의 대 북한 발언은 계속 강경으로 치닫고 있다. 그 발언은 그리고 급기야 이렇게까지 구체화되고 있다. “북한 핵은 ‘임박한’(imminent) 위협인 만큼 상황전개에 따라 미국은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허용을 고려할 수도 있다.” 만일의 사태 시 군사조치도 불사한다는 미국의 입장을 밝힌데 이어 나온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의 발언이다.
핵 확산금지체제를 금과옥조인양 받들어왔다. 그 미국이 한국의, 일본의 핵무장을 허용할 수 있다는 거다. 어떻게 받아들여야 하나. 북핵문제를 상당히 심각하게 보고 있다는 것이다. ‘임박한’(imminent)이란 용어를 사용한 것도 그렇다.
2002년 이라크 침공을 앞두고 부시 행정부는 ‘명백한 위협’이란 말을 사용했다. 이 ‘임박한’이란 용어의 구사는 그만큼 사태를 심각하게 본다는 것이다. 틸러슨 국무장관은 그런데 북핵문제와 관련된 인터뷰에서 최소한 네 차례 이상 ‘임박한’(imminent)이란 용어를 구사했다.
아무래도 고의성이 담긴 수사라는 것이 뉴욕포스트지의 분석이다. 그리고 거기에는 분명한 메시지가 포함돼 있다는 것. 중국에게 북한에 대해 ‘결정적 압력’을 가하라는 주문이 담겨 있다는 거다.
동북아 안보문제와 관련해 베이징으로서 최대 악몽은 일본과 한국의 핵무장사태다. 그런 만큼 트럼프 행정부의 한일 핵카드는 중국에게는 엄청난 압력으로 들려지고 있다는 것. ‘결정적 압력’이란 것도 그렇다. 북한으로 하여금 핵 프로그램을 완전 포기하게 하라는 것이다.
가능한 주문일까. 외교적으로 그것이 이루어진다면 기적이다. 핵무기를 체제유지의 근간으로 간주하고 있는 것이 김정은 체제이기에 더욱 그렇다. 군사조치는 너무 위험하다. 그러면 어떤 방법이 있나. 남은 방법이 없는 것은 아니다. 체제전복, 혹은 김정은 제거다.
북한은 중국으로서는 양보할 수 없는 완충지대다. 그 북한의 붕괴를 중국은 원하지 않는다. 그 북한을 완충지역으로 그대로 놔둔다. 그러면서 중국도 원하고, 미국도 원하는 체제로 바꾼다. 말하자면 핵위협은 사라진, 정치, 경제적으로 개방된 북한 체제 말이다. 여기에서 미국과 중국의 이해는 일치한다. 김정은 제거와 함께 내부에서 수령유일주의를 무너뜨리는 거다.
“미국과 중국은 ‘상호간의 존중’(mutual respect)을 통해 상생의 협력관계를 유지해나갈 것이다.” 왕이 중국외교부장과의 회담 후 틸러슨이 한 말이다. 한국과 일본의 핵무장 허용가능성을 언급했었다. 그리고 나온 발언이다. 갑자기 유화적으로 입장을 선회하기라도 한 것인가. 도대체 어떻게 보아야 하나.
‘상호간 존중을 한다’는 것은 중국이 자신의 이해뿐 아니라 미국의 이해도 돌보아야 한다는 의미의 외교적 표현이다. 다름이 아니다. 한국의 사드배치, 더 나아가 북한문제 전반에 대해 모종의 협상이 이루어졌다는 강력한 시사로 볼 수 있는 것이다.
말의 성찬은 계속 이어지고 있다. 그 발언들은 그저 외교적 수사로만 들린다. 전혀 연관성이 없어 보인다. 하나하나가 우연 같다. 그 우연들이 쌓인다. 결국 필연으로 이어진다. 김정은이 제거된다. 그럼으로써 반세기 가까이 이어져온 수령유일주의체제가 무너지고 마는 필연적 상황 말이다.
2017년은 북한에서도 패러다임의 일대전환이 이루어지는 그 원년이 될 것 같은 느낌이다. 김일성왕조 붕괴라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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옥세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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