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즐겨 찾는 기차길옆 마을 “던스뮤어”라는 조그만 도시가 있다. 가끔 기차로 또는 4시간 정도 직접 운전하여 가기도 한다. 산이 좋아 자연을 자유롭게 누리며 “산”사람이 된 오빠 덕이다. 인구 1,600명 정도의 아주 조그만 숨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는 도시다. 물과 기차소리로 도시의 이름을 알리는 곳. 마치 버려진 도시같이 가게들은 닫혀있고 황량하고 쓸쓸한 도시. 심심찮게 들려오는 기차의 기적소리와 곳곳의 개울물 소리와 도시의 중심을 건너는 새크라멘토 강이 도시가 살아있음을 알리지만 그 소리 외에는 잠자고 있는듯한 마을이다.
비바람 폭설에 잠깐 깨어있을까 그것도 너무 잦으니 익숙하여 또 잠이 드는 것 같다. 물의 질이 가장 좋은 도시라는 던스뮤어에서 북쪽으로 15분만 가면 Mt.Shasta가 있어 경치가 좋지만 아직도 살아있는 화산이 언제 터질지 모르는 위험도 함께 안고 있다. 이곳의 많은 트레일을 걸으며 음악을 들으면 오히려 삭막하게 들릴 때도 많다.
자연의 위압감이랄까 때로는 조용히 자연의 소리를 들어야 삭막함과 촉촉함이 함께하여 풍요롭고 자연과 함께 하여야만 듣고 싶은 나의 음악이 제대로 들려온다. 독일의 작곡가 힌데미트(Paul Hindemith 1895-1963 후에 미국으로 망명)는 20세기 초 세계 전쟁에 휘말린 정치적 어려운 시대 못지않게 표현이 제한된 어려운 시대의 예술가로 음악활동을 한 작곡가이다.
1차 대전 삭막한 시대의 유럽, 특히 나치의 감시하의 독일 오스트리아 폴랜드 등에서 활동하던 음악가들의 작품에는 시대를 반영하는 건조함과 불안 우울증의 기운이 듣는 이들 피부까지에도 퍼진다.
반면에 전쟁의 기운이 돌때도 독일의 카바레에는 술과 자욱한 담배 연기 속에 재즈가 슬프게 또 리드미컬하게 밤을 울리곤 했다. 재즈가 한 낮의 오수의 기지개를 펼 때 슬픈 감성의 촉촉함과 나치의 압박 속에 예술의 자유가 없는 시대의 무조음악이 삭막한 시대의 건조함을 동반하는 것은 예술이 삶의 표현을 하는 자연스러운 반사작용 이었을 것이다.
그런 시대의 힌데미트의 음악이 일반적으로 청중이 선호하는 음악은 아니지만 21세기 현재를 사는 예술가들은 시대를 벗어난 연주로 작품의 모습 성격까지도 바꾸는 재주가 있다. 초월의 능력 변모의 마력은 가뭄을 촉촉함으로 전쟁을 평화로 절망과 좌절의 시대를 희망과 용기의 시대로 탈바꿈 시키고 있다.
바이올니스트 Arabella Steinbacher가 바로 그 매지션이다. 얼마 전 SFS에서는 힌데미트의 바이올린 콘체르트가 처음 연주되었으나 아라벨라 만큼 힌데미트를 새롭게 연주하는 연주자는 없을 것이다.
같은 음악회의 게스트 컨닥터 MarekJanowski는 오리지날 베에토벤과 브람스의 악보를 보는 듯 클라시즘의 진수를 동시에 연주자들의 역량을 충분히 발휘하도록 지나친 장식을 요구하지 않는다. 지휘자는 음악의 해석 소리의 질 까지도 바꿀 수 있는 또 다른 매지션이다. X-ray 로 보면 앙상할 몸이지만 멋있는 옷에 칼라까지 특별한 장식 없이 은은하면서도 샤이니 한 음악의 감각으로 변모 시킨다.
오랜 가뭄 끝에 비를 흠뿍 맞은 여기 베이 에어리아. 지난 3-4개월 계속된 비가 살짝 지루해질 정도로 충분히 내렸다. 건조함과 촉촉함. 마음의 촉촉함은 어떤 음악을 들어도 촉촉할 것 같기는 했으나 베에토벤과 브람스의 사이에 낀 20세기 현대음악의 건조한 음악 까지도 서정적 열정적으로 자칫 삐끗할 수 있는 리듬도 하나도 흔들리지 않고 사막의 오아시스를 만난 듯, 음악은 역시 경이롭다.
산속에서 듣는 바람소리 폭우가 쏟아지는 한밤중에 도시의 불빛이 없는 작은 시골마을은 오히려 어두움속의 푸르름이 있고 바람의 빛깔도 있는 것 같다.
밤이 깊어지며 거친 바람과 휘몰아치는 빗속에 마을 전체가 쓸려 내려갈 듯한 두려움 그래도 색깔을 잃어버리지 않는 산속의 밤이 위로가 됨은 신기하다. 폭풍의 밤이 지나고 말간 아침이 되면 괴물 같던 밤이 악몽을 잊고 물기를 흠뻑 먹은 나뭇잎에 반짝이는 햇살, 지저귀는 새소리 상큼 한 아침의 향기로 이어지고 코끝을 자극하는 진한 커피 향 과 어우러지며 행복한 아침을 맞는다.
조그만 시골마을 던스뮤어에서 맞는 이 아침은 새로운 세상에서 새로 태어난 나를 내가 내 엄마처럼 받아 품에 안는 것 같다. 건기와 우기 사막과 오아시스 삶의 밸런스는 도시와 산을 넘나들며 수위를 맞추고 다시 태어난다.
<
장 스텔라 음악 칼럼니스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