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전 신문의 한 기사가 내 눈길을 사로 잡았다. ‘내 남편과 결혼 하실래요?’ 라는 제목으로 한 아동 문학가인 오십대 초반의 미국여자가 자신이 죽은 후 혼자가 될 남편을 위해 배우자를 구하는 내용이었다. 그 여자는 자신이 말기암 환자이기 때문에 죽기 전 자신이 스스로 나서서 남편의 배우자를 구하겠다는 내용이었는데 어찌보면 너무 황당한 기사에 많은 사람들이 이 글을 읽고 아연했으리라는 생각을 했다.
어찌보면 얼마나 남편을 사랑하기에 죽어가는 여자가 이런 광고를 낼수 있을까 하는 생각과 함께 그 여자의 용감성과 적극성과 어찌보면 지나치리만큼의 배려를 칭찬해 주어야 하나 하는 생각에 내 머리 속은 한동안 뒤죽박죽이 되었다.
벌써 한 이십년은 되었을까? 그 당시 가끔 만나서 밥 먹고 쇼핑도 하는 친구들과 함께 차 안에서 잠깐의 토론이 있었다. 그 토론의 내용은 만약 우리들이 남편보다 먼저 죽으면 남편의 재혼에 찬성하느냐 아니면 반대냐 하는 얘기였다.
내 친구 둘은 모두 반대였지만 나 혼자 오케이였다. 친구들은 의외라는 표정으로 나를 바라보는 것이었다. 하긴 그 친구들은 남편 없이는 하루도 못사는 친구들이어서 어디를 가도 꼭 붙어 다니고 집에서도 함께 소파에 앉아 테레비도 같이 보고 아무튼 무엇을 하던지 함께 해야 직성이 풀리는 친구들이었으니 맨날 나 혼자 돌아다니고 밥도 따로 해먹는 우리 부부가 이상하게 비쳤을 것이다.
나는 부부가 꼭 함께 붙어다니며 무엇이던지 함께 한다고 더 사랑하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내 남편이 내 뒤를 졸졸 따라다니며 시시콜콜 모든 것을 다 참견한다고 생각하면 나는 벌써부터 숨이 막힌다. 아무리 부부라 하더라도 어느 정도의 공간은 있어야 그것이 더 건강하고 정상적인 관계라고 생각하는 편이다. 그때 나를 힐난하듯 바라보던 한 친구는 이미 삼년 전에 이 세상을 떠났다.
나는 지금도 마지막으로 그녀를 찾아가던 날을 소상하게 기억한다. 그녀는 침대에 비스듬히 누워서 침대 한켠에 앉아있던 나를 물끄러미 쳐다보고 있었는데, 마침 그녀의 남편이 지나가자 손을 내밀면서 ‘플리스! 플리스! ‘하며 안타깝게 그를 부르는 것이었다. 그러자 그는 다 안다는듯이 다가와 그녀의 손을 잡고 볼에 입맞춤을 했다. 나는 그 방을 조용히 나왔다. 그게 그녀와의 마지막 이별이었다.
이년 후 그렇게 그녀를 사랑한다던 그 남편은 재혼을 했다. 그가 재혼을 했을때 나는 충격을 받았고 마치 내가 배반을 당한 듯 그가 괘씸하게 느껴졌다. 부부 사이가 좋았던 사람들일수록 더 빨리 재혼을 한다는 말이 있다. 사이가 좋을수록 혼자 남았을때 더 외로움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부부 사이가 나빴다면 ‘이 웬수! 이제 난 완전히 자유부인이야!’하고 혼자 몰래 미소를 지을까.
우리 집 이층에 사는 케이티가 얼마 전부터 혼자 살게 되었다. 치매를 오래 앓던 구십세 남편이 결국 양로원에 갔기 때문이다. 나는 케이티가 얼마나 괴로울까하고 “괜찮니?”하고 물어보니 “아이 갓 어 후리덤”하며 팔을 번쩍 드는 것이었다. 생각보다 케이티는 씩씩했다. 아마 그동안 그녀는 굉장히 힘들었나보다. 금발 머리의 그녀는 아주 우아한 백인 할머니며, 병든 남편을 매일 데리고 다니며 함께 걷기도 하고 늘 그를 위해 온갖 종류의 쿠키를 만들어 주던 여자였다.
바이론이라고 불리던 그 할아버지가 건강할 때 하는 일이라고는 매일 우편물을 챙기는 것과 모아둔 쓰레기를 버리는 것이었다. 그러던 그가 언제부터인가 우편물을 가지러 이층에서 내려오지 않게 되었다. 어느 땐 내려오다가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다시 이층으로 올라가는 것이었다. 그는 올라가야 되는지 내려와야 하는지를 잊어먹은 것이었다.
마침 우리집은 아래층이어서 나는 내 방 창가에 앉아있으면 누가 이층에서 내려오는지 올라가는지가 다 보였는데, 그가 한 일년전 부터는 바깥 출입을 도통 하지 않게 되었다. 그는 완전히 치매환자가 되었고 결국 아내인 케이티까지 몰라보는 단계까지 왔다.
그가 떠나던 날 우리는 일부러 배웅하지 않았다. 인생의 말로가 다 이런 것인가하는 허무감이 가슴으로 밀려왔다. 우리의 삶에서 진정한 사랑이란 과연 무엇일까를 생각해 본다. 죽을때까지 그 누구에게도 짐이 되지 않고 마지막 날까지 자긍심을 갖고 영원한 삶을 향해 살 수 있다면 그 사람은 가장 복이 있는 사람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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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옥교 칼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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