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교육위원으로서 지역 사회의 여러 행사에 참석한다. 지난 주말에도 예외 없이 금요일 저녁부터 일요일 저녁까지 내내 바빴다. 그 모든 행사들을 즐겨서 참석하는 것은 물론 아니다. 교육위원이기에 할 수 없이 가는 경우도 있고, 초청자의 성의를 거절할 수 없어 마지 못해 가기도 한다. 또한 개인적으론 힘들어도 일종의 사명감 때문에 하는 경우도 있는데 지난 일요일 오후 행사가 바로 그랬다.
이 행사는 ‘북버지니아 풋볼 명예의 전당’(Northern Virginia Football Hall of Fame) 이라는 기관에서 주최했다. 연례 행사인데 북 버지니아 지역의 청소년 풋볼 프로그램에서 두각을 나타낸 선수, 코치, 자원 봉사자, 치어리더, 심판 등의 성취와 노력 그리고 공헌을 평가해 시상한다. 동네 풋볼 리그에서 실력을 발휘한 어린 선수들을 비롯해 고등학교 리그 최우수 선수들을 선정한다. 그리고 명예의 전당 가입자들도 공식으로 발표한다. 이번에 명예의 전당 가입 영예는 알렉산드리아시에서 오랫동안 스포츠와 레크리에션 프로그램을 담당했던 사람과 오스본 고등학교 출신의 달라스 카우보이 풋볼선수 이렇게 두 명에게 돌아갔다.
올해로 27년째인 이 행사에 나는 여러 해 동안 참석해 왔다. 그런데 이 행사에 참석하려면 정말 마음을 단단히 먹고 가야한다. 시상식이 상당히 오래 걸리기 때문이다. 보통 저녁 식사를 포함하는데 식사를 오후 3시 반에 시작한다. 식사 전에도 한 시간 정도 리셉션을 갖는다. 그리고 식사 후 시상식 프로그램을 진행하는 데 보통 2시간 반 정도를 계획한다지만 실제로는 항상 그 보다 더 걸린다. 그래서 시상식이 끝나면 거의 저녁 8시나 된다. 그러니 전체적으로 5시간 이상 걸리는 셈이다.
그런데 이렇게 장시간의 행사임에도 불구하고 참석자들의 대부분이 자리를 꿋꿋이 지키는게 나를 놀라게 한다. 어쩌면 풋볼 게임을 통해 극기 훈련이 잘 되어 있는 듯하다. 이 행사에는 지역 의원 등 다른 선출직 공직자들도 종종 참석한다. 그러나 대부분의 선출직 공직자들은 내빈 소개나 자신이 맡은 순서가 끝나면 곧 자리를 뜬다. 그리고 그들이 그렇게 일찍 자리를 비우는 것을 참석자들은 충분히 이해한다. 왜냐하면 그 행사 외에도 다른 행사들로 주말에 바쁜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 행사에서 일찍 떠나는 것을 힘들어 했다. 그래서 거의 매년 행사가 다 끝날 때까지 자리를 지켜왔다. 지난 일요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내가 일찍 자리를 뜨지 않는 것은, 사실 그 행사장에서 나는 교육위원이면서 동시에 극소수의 아시안 중 하나이기 때문이다. 이제 공직 생활도 22년째이지만 나는 아직도 나의 인종적 배경에 민감하다. 대부분의 주류사회 행사에서 아시안을 별로 보지 못한다. 지난 일요일의 행사 같은 곳에서는 더욱 그러하다. 풋볼이라는 운동에 아시안 학생들이나 부모들의 참여는 두드러지지 않다. 그렇기에 그러한 프로그램에서 상을 받는 선수는 물론 코치나 심판 그리고 프로그램 운영 관계 등으로 자원 봉사하는 사람들 가운데 아시안들을 찾아 보기가 쉽지 않다. 치어리더도 마찬가지이다. 행사 참석자들은 거의 모두가 백인이나 흑인이다.
지난 일요일 600여명이 행사장인 호텔 볼룸을 입추의 여지 없이 꽉 채웠다. 그러나 아시안은 불과 1% 정도였다. 그런 모습이 나로 하여금 자리를 일찍 떠나지 못하게 했다. 특히 어린 학생들도 행사 끝까지 자리를 지키고 있는데 내가 먼저 일어날 수는 없는 것이다. 대신 악착같이 조금이라도 더 시상에 직접 참여하여 단상에 올라갈 기회를 찾는다. 백인과 흑인들로만 가득 채워진 행사에서 아시안의 존재를 조금이라도 더 보여 주어야겠다는 나만의 사명감 때문이다. 이게 다 나의 편협한 마음에서 비롯된 것은 아닐까 가끔 자문하기도 한다. 그러나 그 물음에 자신 있게 대답할 수 있을 때까지는 계속 그럴 것 같다. 특정 운동과 활동에 인종적 배경에 따른 학생들의 편중 현상이 보이지 않고, 다양한 인종적 배경의 학생들이 골고루 참여 하는 날이 빨리 왔으면 좋겠다.
<
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