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8~29세에 가장 많이 발병, 대체로 다른 정신질환과 공존
▶ 치료시기 놓치지 않는게 중요, 2~3년 적극 치료하면 호전
“양극성 장애라고요? 술 좀 많이 마시고 돈에 좀 헤프게 써서 그렇지 정신적 문제가 있는 사람은 아닌데요.
진단이 잘못된 것 같아요.” 3년 전 ‘최우수 사원’ 표창까지 받았던 회사원 김모(45) 씨가 병원에서 ‘양극성 장애(조울증)’ 진단을 받았다. 평소 감정기복은 좀 있었지만 의욕과 자신감에 넘친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에게는 말 못할 비밀이 있다. 대부업체에서 감당할 수 없는 정도의 돈을 대출받았다. 분에 넘치게 술 마시는 일이 잦아지고, 아내 몰래 이성교제까지 하다 보니 씀씀이가 커졌다. 소액으로 시작한 대출이 월 200만 원이 넘어 그가 감당하기 벅찰 정도가 됐다. 아내 손에 이끌려 병원에서 정신감정을 받은 것도 이 때문이었다. 하지만 그는 양극성 장애를 인정하지 않으며 치료를 거부하고 있다.
양극성 장애는 기분장애의 대표적 질환으로 기분이 들뜨는 조증(燥症)과 함께 기분이 가라앉는 울증(鬱症)도 수반된다. 극과 극의 기분이 교차해 양극성 장애라 한다. 조증 증상이 4~7일 정도 지속되고, 울증 증상이 2주 정도 계속될 때 조울증으로 진단한다.
조증이 잘 드러나는 제1형 양극성 장애는 쉽게 진단할 수 있어 치료가 빨리 이뤄진다. 반면 조증이 잘 드러나지 않는 제2형 양극성 장애는 병을 인지하기 어려워 치료시기가 늦어진다.
김씨는 전형적인 제1형 양극성 장애다. 하규섭 서울대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김씨 자신은 부인하고 있지만 20대 초반부터 양극성 장애가 노출된 것 같다”며 “초기에 치료를 하지 않고 방치하면 알코올, 이성, 도박 등에 집착해 스스로 해결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를 수 있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양극성 장애 환자는 우울하면서도 쾌락을 추구하기 때문에 문제”라고 덧붙였다.
유전적 영향 강하게 받아
양극성 장애의 원인은 명확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유전적 영향을 강하게 받는다. 가족력 있는 사람은 시기가 늦춰질 뿐 스트레스 등 외부 요인이 발생되면 병이 생기는 것은 시간문제다.
하 교수는 “양극성 장애는 고혈압, 당뇨병보다 유전적 영향을 강하게 받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며 “유전적으로 양극성 장애에 걸릴 확률이 높은 사람이 스트레스 등 외부자극을 받으면 발병시기가 빨라지고, 증상이 심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유전적 영향을 받기 때문에 10~20대 발병할 가능성이 높다. 초ㆍ중학생 때 학업성적도 우수하고, 또래 아이들과 잘 어울리다가 고교 입학 후 별다른 변화가 없는데도 성적이 떨어지고, 매사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는 일이 지속되면 양극성 장애를 의심해야 한다.
청소년기에 조증이 심하지 않으면 기분이 좋고, 의욕이 넘쳐 학업성적이 오르고, 사교성이 늘어난다. 성인의 경우 업무적으로 인정받는 사람 가운데 양극성 장애를 가진 이가 많은 것도 이 때문이다.
하지만 조증에서 울증 단계로 접어들면 의욕이 상실된다. 자신감도 떨어진다. 하 교수는 “평소와 달리 탄수화물 위주의 음식을 즐기고, 잠을 많이 자고, 활동이 눈에 띄게 느려졌다면 양극성 장애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전덕인 한림대성심병원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양극성 장애는 알코올중독, 불안장애 등 다른 질환과 공존하는 게 특징”이라며 “다른 정신질환을 앓고 있으면 치료하기 어려워 발병 초기에 치료해야 된다”고 말했다.
고혈압처럼 꾸준히 치료해야
양극성 장애는 18~29세에 가장 많이 발병한다. 정작 치료는 만성화된 40~50대가 돼야 받는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이 2011~2015년 양극성 장애 진료현황을 분석한 결과, 40대가 전체의 20.8%를, 50대가 19.2%를 차지했다. 발병 후 10~20년 지난 뒤 치료가 이뤄지고 있는 셈이다. 조울증 증세를 가볍게 여기고 치료하지 않다가 증상이 악화된 뒤에야 치료하기 때문이다.
양극성 장애는 적극 치료하면 다른 정신질환보다 예후가 좋다. 꾸준히 치료를 받고 약물을 먹으면 일상생활에 지장을 주지 않는다. 문제는 환자 대부분이 증세가 호전되면 약물복용을 중단하는 경우가 많다는 점이다. 전 교수는 “양극성 장애는 2~3년간 꾸준히 치료해야 한다”고 말했다. 하 교수는 “양극성 장애는 치료경과가 좋아도 재발 가능성이 높아 고혈압, 당뇨병처럼 꾸준히 치료가 필요한 질환”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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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치중 의학전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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