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주 금요일 저녁 동료 교육위원으로부터 텍스트 메시지가 들어왔다. 애난데일과 알렉산드리아 지역에 국토안보부의 불체자 단속반이 들이 닥쳤다는데 내가 뭐 아는게 없느냐는 물음이었다. 전혀 아는게 없다고 대답하자 체포된 사람들도 있고 어린아이들이 현장에 있어 체포를 모면한 사람들도 있다고 했다.
또 다른 교육위원에 의하면 저소득 이민자들이 많이 거주하는 지역 아파트 단지 주차장들은 텅 비었다고도 했다. 대통령이 선거 공약으로 내세운 불체자의 대대적 추방이 실행에 옮겨지는게 분명하다고 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학생들이 걱정이라고 했다. 학교로 들이닥칠 수도 있다는 우려도 든다고 했다.
이런 텍스트 메시지를 주고받으면서 오래 전 친구 한 명이 생각났다. 버지니아 주 알렉산드리아 시에서 고등학교에 다닐 때였다. 그 학교에서 사귀게 된 한인 친구들 중 의사가 되고 싶어 했던 학생이 있었다. 그는 공부도 열심히 했고 주말이면 종종 자기 아버지가 일하는 직장에서 밤새 경비를 서기도 했다. 그렇게 해서 번 돈으로 가족들의 생활비에도 보태고 대학 학비로 저축도 했다.
나 하고 공부 뿐 아니라 장래 포부 등에 대해서도 대화를 많이 나누는 가까운 사이였다. 졸업반 겨울이 지나면서 서로 진학할 대학도 대충 정해졌다. 우리 둘은 대학에 들어가기 바로 전 여름방학에 같이 고국을 방문하기로 했다. 흥분되는 일이었다. 나도 경비를 마련하기 위해 파트타임 일을 했다. 그리고 한국에 가서 같이 할 것들에 대해 자세한 계획을 세웠다.
졸업식이 다가오고 비행기 표를 구입해야 될 때가 되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주저했다. 확실한 설명 없이 그저 준비가 덜 되었다고만 했다. 나중에 일정상 티켓구매를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고 하자 그때서야 사실을 털어 놓았다. 영주권이 아직 없다는 것이다. 그래서 한국에 나가면 돌아올 수 없다고 했다.
생각치도 못했던 얘기였다. 가슴이 아팠다. 그동안 신분문제로 얼마나 불안했고 앞으로 또 언제까지 그럴까. 내가 고국 방문으로 들떠 있을 때 얼마나 힘들었을까. 어떤 위로의 말도 섣불리 건넬 수 없었다. 그 친구는 다행히 그 후 가족 모두가 영주권을 취득했고 자신의 포부대로 의사가 되었다. 참 기쁘고 감사한 일이다.
그런데 그 친구가 만약 당시에 이번처럼 불체자로 단속되었으면 어떻게 되었을까. 그를 비롯해 부모님들과 나이 어린 동생까지 모두 한국으로 추방되었을 수도 있다. 한국에 돌아가서 의사가 되기는 커녕 그동안 벌어진 학업 차이로 아마 고등학교 공부도 제대로 좇아가지 못해 중도에 학업을 포기했을지 모른다. 부모님들도 직업을 구하기가 어려워 가족들의 생계유지 자체가 쉽지 않았을 수 있다.
나는 거의 18년 간 페어팩스 카운티에서 교육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그동안 종종 이민자 학생들과 관련된 이슈에 대한 주민들의 반응을 접할 수 있었다. 그럴 때마다 이민자 출신 교육위원으로서 상당히 민감하게 받아들이게 된다. 그리고 불체자에 대한 얘기도 결국은 합법 이민자들과 엄격히 분리하기 어렵다고 느꼈다.
그러나 불체자들이 불안한 생활을 하면서도 자신들의 고국으로 돌아가지 못하는 이유가 과연 무엇이겠는가? 대부분의 경우 가난이 그 이유일 것이다. 그런데 미국이 아무리 경제 침체에서 완전히 벗어나지 못했다고 해도 이들이 추방되어 돌아갔을 때 겪어야 되는 어려움과 과연 비교할 수 있겠나?
나 자신도 고등학교 시절 미국으로 가족들과 이민 온 이유가 가난을 이겨내고 좀 더 나은 삶의 기회를 찾기 위해서였다. 중남미 출신의 대부분의 불체자들이 이 곳에 와 있는 이유와 다를 게 하나도 없었다. 그렇기에 추방당하는 그들을 보면 남 일 같지가 않아 가슴이 아프다.
특히 미국 건국이 기독교 정신에 입각했다고 한다면, 강제 추방의 극단적 조치가 과연 기독교 정신에 부합하는 일 일까를 물어 보지 않을 수 없다.
국민의 70-80 퍼센트 이상이 기독교인이라고 자처하는 미국에서 굶주리고, 헐벗고, 병든 자를 돌보아야 하는 기독교인들의 사명은 과연 합법 체류자들에게만 국한된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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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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