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이 사람으로 태어나서 사람답게 산다는 일이 그렇게 만만치 않다. 살다보면 하기 싫은 일이 있고, 가고 싶지 않은 곳이 있다. 그러나 사람답게 살려면 이런 일들을 해야하고 가고 싶지 않은 장소도 가야한다. 가령 장례식이나 평소에 알던 사람이 아파서 요양원 신세를 지고있다면, 썩 내키지 않아도 가끔 병문안도 가야만 한다.
며칠전 십여년 전에 함께 같은 교회도 다니고 가깝게 지내던 권사님 한분이 세상을 달리해서 신문에 난 부고란을 보고 장례식엘 다녀왔다. 장례식은 천국 환송 예배로 잘 치러졌다. 우선 자녀들이 많고 손주들도 많아서 북적거리는 장례식이 쓸쓸한 장례식보다 훨씬 보기 좋다고 생각했다. 본인도 늘 베풀기를 좋아하던 분이라서 한 세상 잘 사시고 목사님의 설교대로 영원한 집으로 편안히 가셨구나 생각했다.
나는 돌아오는 길에 한가지 후회가 가슴을 쳤다. 살아계실 때 한번 찾아가 뵙는다고 늘 생각은 하면서 이런저런 일로 바쁘다고 핑계를 대며 이제 가신 뒤에야 후회를 한들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깨닫고 이렇듯 인간은 항상 한발짝 늦는구나 했다.
십여년 전에 우리 부부는 세분의 권사님들을 모시고 멕시코 크루스를 다녀온 적이 있다. 그분들은 여행을 하는 동안 어린애들처럼 좋아들 하셨다. 늘 손주들 베비시터를 하느라 시간도 없고 또 돈도 없어서 이처럼 호화여행을 해본 적이 없는 그들에게 이런 여행은 꿈 속에나 그리던 여행이었던 것이다. 여행이 끝났을 때 한분이 내게 이렇게 물었다. “권사님 우리 하루만 더 있으면 안되냐”고.
여행을 할 때 내 남편은 그들을 “마이 뜨리 램브(세마리 양)”이라고 불렀다. 남편은 앞에서 나는 뒤에서 그들을 따라다니며 에스코트했다. 우리가 돌아왔을 때 어느 분이 내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이 진짜 크리스챤이라고. 아마 그분은 노인들을 귀찮케 여기지 않고 세명이나 무사히 거느리고 다닌 우리들이 좀 대견해 보였나보다.
또 내 주변에 우리 교회를 몇개월 다니시고 대단히 박식하셔서 신문에 글도 많이 쓰시던 한 분이 얼마 전부터 어씨스탄 리빙이란 요양원에 계신 분이 계시다. 그분은 정말 온 세상을 한 때는 주름잡고 다니시던 대단한 분이셨는데 이젠 병이 들어 처음엔 잘 걷지도 못하셨지만 이젠 좀 많이 나아졌다고 해도 문제는 아무 의욕이 없어졌다는 것이다.
의욕을 잃은 인간은 희망이 없다. 희망이 없다면 그 사람은 다 산 셈이다. 의욕은 다른 말로 욕망이라고도 할 수 있다. 그분은 이제 아무 것도 잡수시고 싶은 것도 없고 아무 것도 하고 싶지 않다는 것이다. 한 두어달 전까지만 해도 새로 나온 책의 출판 기념회를 조촐하게 하고 싶다고 내게 플랜을 짜 달라고 부탁을 했던 분이다. 나는 이분의 말씀을 들으며 정말 인생의 허망함을 다시 한번 느꼈다.
우리 모두가 싫어도 누구나 그 길을 한번은 가야만 한다. 먼저 가고 뒤에 갈 뿐이지 그 스테이지를 밟지 않을 사람은 없다. 희망과 의욕이 있을 때 인간의 눈은 반짝인다. 별처럼 아름답다. 그 속에 희망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모두를 포기한 눈은 그 동공이 텅 비어 있는 듯 공허하기만 하다.
인간은 유명한 사람이나 무명의 사람이나 한세상을 호걸하고 다녔던 분도 마지막 가는 길은 다 비슷하다. 죽음을 향해 걸어가는 그 쓸쓸한 길, 등은 구부정하고 쓸어질 듯 비틀거리며 걸어가는 그 길, 누구나 그 길을 외면할 수는 없다.
어제 가까운 친구의 남편이 떠나 가신지 일주기가 되어 비가 주룩주룩 내리는 날씨 속에서도 일주년 기념 예배를 드렸다.
약 삼십분 가량 드렸던 그 예배에 참석했던 분들은 모두 아름답게 진행된 예배 속에서 큰 은혜를 받았다. 목사님의 설교는 마지막이면서도 마지막이 아닌 희망과 위로를 경험하게 했다. 한사람은 갔지만 그 가족에게 또 새로운 생명이 태어나는 그 기쁨과 하나님의 사랑을 우리 모두는 보았다.
신기하게도 묘지에 갔을때 비가 약 십오분간 멈추기도 해서 너무 감사하기도 했다그분은 살아 계실때도 한세상 잘 사셨고, 돌아가신 후에도 복을 타고나신 분이구나 하는 생각을 했다. 벌써 오래전 어떤 분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사람이 사람답게 산다는 일이 그렇게 쉬운 일이 아냐”라고.
정말 사람이 다 사람은 아니다. 은혜를 입으면 갚을 줄 알고 또 주위 사람들에게 가끔 베풀 줄 알아야 사람다운 사람이다. 즉 사람답게 사는 사람만이 사람이라고 나는 오늘 그렇게 말하고 싶다.
<
김옥교 칼럼리스트>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