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란스럽다. 이래도 되나 싶다. 대통령 탄핵 수렁에 빠진 한국이야기다. 잘못은 바로잡아야 한다. 시시비비를 따져 처벌 받을 일을 했다면 벌을 주면 된다. 민심이 아니라 법에 따라서.
한국의 탄핵 정국을 지켜보면 한국이 법치주의 국가인지 의심스러울 때가 한두번이 아니다. 국가의 수장을 언제까지 쫓아내라고 시한을 두는 나라가 또 있을까. 시간에 쫓기다 보니 사실 확인은 뒷전이다.
검찰에, 특검에, 국회 청문회에, 헌법 재판소까지 대통령 쫓아내는데 사활을 건 듯 하다. 급기야는 19세기 창녀 누드 그림에 대통령의 얼굴을 입힌 패러디 그림을 표현의 자유라며 버젓이 국회에 전시했다. 그것도 국회의원이 주도했다니 할 말이 없다. 과거 군사독재 시절 매 맞았다는 사람들이 이제는 민주주의를 등에 업고 또 다른 폭력을 휘두른다. 아니면 말고 식으로.
대통령 탄핵은 주로 동남아의 개발도상국이나 후진국 형 정치 전형이다. 선진국에서는 보기 힘든 장면이다. 남미 부국 브라질도 여성인 리우마 호세프 대통령을 탄핵으로 쫓아내기는 했지만 선진국에서는 대부분 정치적으로 해결하지 한국처럼 이념의 틀에 갇혀 죽기 살기로 몰아치기 식 탄핵은 하지 않는다. 지난 15년 사이에 벌써 두명째다. 다음은 누가될까. 정치는 실종되고 시뻘건 이념만 이글댄다.
미국은 의회가 대통령을 탄핵하면 그것으로 끝이다. 따라서 의회는 정치적 부담으로 매우 신중을 기한다. 명확한 증거가 없는 정황만으로는 탄핵 하지 않는다. 재선 도청 사건인 워터게이트 호텔 사건으로 물러난 리처드 닉슨도 탄핵 직전 녹취록 공개로 자진사퇴했다. 무려 2년을 버틴 후였다. 백악관 인턴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었던 빌 클린턴은 연방 하원의원 절반의 찬성으로 탄핵안이 가결됐지만 연방 상원에서는 찬성표가 3분2를 넘지 못해 탄핵을 면했다.
한국 국회는 분위기에 편승돼 일사천리로 탄핵안을 가결시켜 헌법 재판소로 보냈다. 헌법 또는 법률 위반에 해당하는지를 심의하라는 것이다. 한국 국회가 마련한 탄핵안에는 일방적인 주장만 가득하다. 사실 확인도 되지 않은 탄핵 사유들을 헌법재판소로 보내놓고 빠른 시일내에 탄핵안을 승인하라고 밀어 붙이고 있다. 아니면 혁명 한단다. 그것이 국민의 뜻이고 국민 ‘법 감정’이라고 한다.
법은 멀고 주먹은 가깝다. 법에 호소하려는데 시간이 없으니 우선 주먹으로 해결하자는 식이다. 좋게 보면 ‘정당방위’지만 힘센 깡패가 지배하는 원시사회다. 지금 한국 국민의 법 감정이 꼭 그렇다. “네죄를 네가 알렸다. 매우 쳐라.” 조선시대도 아니고...
한국은 흉악범의 얼굴과 이름을 가려 신원을 철저히 보호해 준다. 신분이 밝혀지면 가족들이 동네에서 살수 없기 때문이다. 이 정도면 한국의 인권이 선진국 보다 낫다. 그런데 최순실 국정 농단 사태를 지켜보면 그렇지도 않다. 최순실의 딸과 조카의 고교 성적표가 공개됐다. 미국이라면 민·형사상 책임을 물어야 할 일이다. 비밀이어야 할 청와대 구조까지 낫낫이 폭로된다. 국민의 알권리 때문이란다. 본인의 동의 없이, 영장 없는 녹취록도 버젓이 증거로 채택된다. 국민이 원하기 때문이다. 아무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한다. 문제를 제기하면 역적으로 몰리는 분위기다.
세계는 한치 앞도 안 보이는 혼돈 속에 빠져들고 있다. 트럼프 변수 때문이다.
트럼프의 행보에 온 세계가 숨죽이고 지켜보며 주판알을 튕기고 있다. 트럼프는 러시아와 손잡고 중국을 밀어붙일 기세다. 사사건건 미국의 발목을 잡았던 중국과 미국이 충돌하면 한국은 불똥을 맞게 돼 있다.
트럼프의 미국은 한국 안보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인다. 중국과 싸우려는 미국으로서는 일본의 비중이 더 크다. 일본은 지리적으로 중국의 태평양 진출을 방어하는 천혜의 요새다. 이런 국제적 이해관계 속에서 한국은 지금 국민 법감정과 이념의 틀에 고립돼 진흙탕 싸움을 벌이고 있다.
이틈을 노려 중국은 사드를 빌미삼아 한국에 온갖 횡포를 부린다. 드라마 상영 금지, 화장품 수출 금지, 중국 여행객 제한, 심지어는 조수미 공연까지 일방적으로 취소하며 한국을 압박하고 있다. 미국에 반기를 든다고 미국이 한국에 보복을 가했다는 말은 들어보지 못했다. 중국은 한국을 속국으로 생각한다. 등거리 외교도 힘이 있을 때 쓸 수 있는 카드다. 힘이 없으면 중국에 조공을 바쳐야 한다. 유력 대선주자는 트럼프를 패러디해 ‘한국 우선’을 외치며 북한과 손잡고 핵문제를 해결하겠다고 한다. 한국의 앞날이 안타깝고 두렵다. 나만의 생각은 아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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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섭 부국장·기획취재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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