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심코 집 앞을 내다보니 빙글빙글 빨강 파랑 불을 쏘며 여러 대의 경찰차가 서있다. 소방차도 오고 구급차도 왔다. 범죄가 흔한 동네도 아니고 웬일인가? 차고 바로 앞을 경찰차가 막고 서있다. 약국엘 가야했는데 경찰차를 비켜달라기가 부담스러워 남편에게 퇴근길에 약국에 들러 약 좀 픽업해 달라고 부탁했다. 경찰과 소방차는 꽤 오랜 시간을 있다가 갔다.
앞 집엔 직장을 은퇴할 때까지 독신으로 있다가 늦게 장가를 가 딸 하나를 두고 사는 부부가 있다. 늦은 나이에 태어나는 아기가 웬지 내게도 뿌듯했었다. 애는 하루가 다르게 크고 나중에 우리 손자가 생겼을 땐 제법 커서 베이비시터처럼 달래가며 같이 놀아주기도 했다. 그 애가 십대로 들어서며 힘들게 한다는 말을 몇번 그 애 엄마로부터 들은 적이 있는데 아마 애가 무슨 말썽을 부렸지 싶었다. 며칠이 지나 애엄마를 만났더니 애가 학교도 안가고 문을 잠근 채 두 주동안 부모와 말을 나누려 하지 않았다 한다. 처음엔 학교에서 카운슬러가 오고 나중엔 경찰까지 동원되어 병원에 입원시켰단다. 위로할 말이 없다.
인생을 살아내야 하는 일이 정말 녹록치 않다는 건 나이를 먹을수록 절실하다. 내가 그 나이였을 때 나 역시 너무도 힘겨웠는데 어떻게 그 모든 일들을 겪어내고 이 나이까지 오게 된 건지 믿기지 않을 만큼 기적같다. 그러는 사이에 자살로 이승을 떠난 이들이 꽤 된다. 학벌도, 집안도 최고였던 언니 친구, 언니와 내내 학교를 같이 다니던 그 언니는 약학을 전공하고 나서 약을 먹고 죽었다. 불문학을 전공했던 그 친구, 부유한 집 출신에 공부 잘하고 조용했던 친구, 그 친구와 찍은 사진을 아직도 갖고 있는데 아무 말도 없이 그 친구도 갔다. 나와 같은 과에 있던 여학생과 사귀던 남학생, 그 애도 쓰라린 유서를 남기고 죽고...
십여 년 전 빠리의 민박집에 만난 준 이라는 청년은 키 크고 잘생긴 미대생이었다. 서울 미대를 휴학하고 돌아다닌다면서 나이드신 분들이 그 세월을 살아내고 이렇게 여행하는 걸 보면 진심으로 존경스럽다고, 자신의 인생은 지금 꽝이 됐는데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할지 모르겠다며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인지 간절한 눈으로 나를 바라보았다. 그런 때 무어라 대답해야 하는걸까. 그냥 마음이 무거웠다. 그 청년도 지금쯤 중년이 됐을 텐데 지금은 어디서 어떻게 살고 있을까?
최근 ‘나는 가해자의 엄마입니다.’ 라는 책을 읽었다. 1999년 열세 명의 사망자와 스물네 명의 부상자를 낸 콜럼바인 총격사건의 가해자 중 한 명인 딜런 클리볼드의 엄마. 딜런의 엄마는 대학에서 미술치료를 통해 장애인 학생을 가르치며 지역 사회의 일에도 활발한 참여를 하던 평범한 엄마였다. 아연실색하여 도저히 믿을 수 없는 사실이 내 아들의 한 부분이었다는 걸 직시해야 했던 엄마의 심정은 어땠을까? 인생이 내일을 알 수 없는 칠흙같은 어둠속의 막막함이라는 걸 이 책은 소름끼치도록 정직하게 보여준다. 딜런의 이름은 시인 딜런 토마스를 따서 지어졌다. 딜런의 형의 이름 역시 시인 바이론을 따 붙여졌다. 아들들에게 시인의 이름을 지어줬던 엄마는 십수년 후 끔찍한 살인자의 엄마가 됐다.
살면서 내가 깊히 깨달은 것은 우린 모두 자신이 겪어낸 만큼 만의 인생을 이해한다는 거다. 내 아들은 그냥저냥 평범한 삶을 살고 있기에 나는 그 엄마의 마음을 결코 이해할 수 없다. 그 엄마가 어떻게 애를 키웠기에 애들이 그렇게 된 건지, 아님 애가 태어날 때부터 신비스레 감춰 갖고 나온 무서운 성향의 발로인건지 그 누구도 답을 발견할 수 없을 것이다.
내가 어렸을 때 나는 모든 문제아의 뒤에는 문제 부모가 있다고 생각했었다. 나 자신 냉정하고 엄했던 엄마에게 받은 깊고 깊은 상처를 추스리는데 내 인생의 거의 대부분을 소모해야 했었기에. 그런데 삶을 되돌아보면 부모도 어찌 할 수 없는 자신만의 몫도 있는 것 같다. 그토록 사랑했던, 순진하고 다정한 마음을 갖고 있다고 믿었던 아들의 이해할수 없는 행적을 고통스럽게 따라가며 가해자의 엄마는 결론을 무력했던 한 소년의 절망적인 우울증으로 보고 있다. 대체 애들은 어떻게 키워야 하는걸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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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정 수필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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