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남북 긴장 무심한 듯, 평화로운 날개 짓… 경원선 타면 과거로 시간여행도
두루미 10여 마리가 태풍전망대 인근 임진강 빙애여울에서 쉬고 있다. 연천 두루미 서식지는 팽팽한 긴장과 평화로운 풍경이 대비되는 곳이다. <연천= 최흥수기자>
서울시청에서 65km 거리지만 경기 연천은 실제보다 멀게 느껴진다. 마음의 거리는 강원 동해안 못지 않다.
연천 여행지도에는 휴전선으로 이어지는 길목마다 ‘민간인통제구역’이라고 표시돼 있다. 그곳을 드나들기 위해서는 군에서 관리하는 검문 초소를 통과하는 번거로운 절차를 거쳐야 한다. 한편으론 그 불편함이 연천의 매력이다. 북과 마주하고 있는 전방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묘한 긴장감과, 그 덕분에 보존될 수 있었던 자연이 고스란히 남아 있기 때문이다.
지난해 연천 구석기 겨울여행 축제에서 인기를 끌었던 구석기 바비큐.
▦두루루루~ 민통선 두루미 여행
연천 임진강 상류는 천연기념물 제202호 두루미 월동 지역이다. 두루미는 15종의 학 중에서도 전 세계에 2,700여 마리만 남은 희귀종이다. 일본 홋카이도에 1,000여 마리, 나머지는 중국 동북부와 러시아 연해주 한카 호수 등에서 번식하는데, 이중 800여 마리가 10월말부터 이듬해 3월까지 겨울을 나기 위해 연천과 철원의 비무장지대를 찾는다. 그렇기 때문에 두루미를 본다는 것은 그 자체로 큰 행운이자 사건이다.
정수리에 붉은 반점이 있어 단정학(丹頂鶴)이라고도 부르는 두루미는 “두루루루”하는 울음소리에서 따온 의성어 이름이다. 라틴어(Grus), 독일어(Kran), 영어(Crane)도 “그루루”하는 소리에서 비롯한 것으로 알려졌다. 140㎝에 달하는 매끈한 몸매, 양 날개를 펴면 240㎝에 이르는 우아한 날개 짓은 가히 환상적이다.
붉은 머리, 하얀 몸통, 검은 꼬리(실제는 꼬리 부분으로 접히는 날개 깃털이다)가 기품을 더해 예부터 고고한 선비정신을 상징하는 영물로, 장수와 행운을 가져다 주는 길조로 대우받아 왔다.
연천에서 두루미를 볼 수 있는 곳은 남한에서 임진강 최상류인 민통선 안이다. 중면사무소 인근 태풍전망대로 가는 초소를 거쳐야 한다. 신분증을 제출하고, 차량 통행증을 받고, 블랙박스 차단용 스티커로 전방을 가려야 한다. 절차도 간소해졌고 이를 진행하는 병사들은 위엄 있으면서도 관광안내소 직원처럼 친절하다.
태풍전망대는 휴전선에서 북한과 가장 인접한 지점이다. 군사분계선까지는 800m, 북한군 초소와는 1,600m에 불과하다. 인솔하는 군인의 안내를 따라야 하고, 전망대 건물 앞에서 기념사진을 찍는 것 외에는 사진 촬영도 금지다. 남북을 가르는 철책에 흐르는 팽팽한 긴장감과 겹겹이 이어지는 북녘 산하의 평화로운 풍경이 묘한 대조를 이룬다.
두루미는 태풍전망대를 가는 길목에서 만난다. 두루미의 주요 쉼터는 수심이 얕고 물살이 빠른 여울로, 이 부근 임진강은 특히 여울이 발달해 있다. 초소를 통과하면 도로는 임진강과 나란히 달린다. 넓지 않은 강줄기와 낮은 언덕이 그림처럼 이어진다.
도로 옆에 설치한 두루미전망대에 차를 세웠다. 수십 년 전 건설하다 만 교각 너머로 작은 모래톱, 장군여울이 보인다. 한때는 두루미가 가장 많았던 곳이지만 군남댐 건설 이후 수심이 깊어져서 쉬고 있는 두루미를 거의 볼 수 없게 됐다.
요즘은 2km 상류 빙애여울에서 두루미를 많이 볼 수 있다. 강줄기가 크게 한번 휘돌아가는 지점이다. 얕은 물살에서 목을 곧추세우고 쉬는 모습, 강줄기를 따라 군무를 펼치는 모습, 추수가 끝난 율무밭에서 고라니와 한가로이 놀고 있는 모습도 볼 수 있다. 두루미가 가장 많이 몰리는 시간은 오후 2~4시 사이다.
초소에서 사병이 동승해야 하기 때문에 하루 방문 인원이 자연스럽게 제한되고, 도로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조류인플루엔자(AI) 파동에도 두루미 관찰은 별 영향이 없다. 따로 주차시설은 없지만 잠시 차를 멈추고, 차창을 내린 상태에서 사진을 찍는 것도 가능하다.
그러나 방문 목적을 속이고 들어와 삼각대에 망원렌즈까지 받쳐놓고 장시간 죽치는 ‘사진꾼’들은 두루미의 최대 적이다. 이돈희 한국조류협회 연천군지회장은 “여울에서 쉬기 위해 날아오는 두루미를 쫓아내는 것과 마찬가지”라며 이런 몰지각한 행위는 절대 삼갈 것을 당부했다.
두루미를 가장 많이, 더 가까이서 많이 볼 수 있는 곳은 전방으로 더 들어간 필승교 부근이지만, 생태조사 등 특별한 목적이 아니면 출입을 금지하고 있다. 그곳만이라도 어떤 방해도 받지 않는 두루미만의 천국으로 남았으면 좋겠다.
임진강 상류는 여울과 습지가 발달해 두루미가 서식하기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다.
▦삐이익~ 경원선 시간여행
경원선은 서울과 북한 원산을 잇는 철길이다. 지금은 동두천역에서 철원 백마고지역까지 하루 11회 통근열차가 왕복한다. 소요시간은 약 55분. 호그와트 마법열차처럼 이 구간 경원선은 1950년대 언저리로 시간을 거슬러 오르는 착각을 불러 일으킨다.
백마고지역 ‘철도중단점’ 은 시간이 정지된 표시이기도 하다. 금강산 119km 서울 94km, 지나온 길보다 조금만 더 가면 되는데, 더 이상 길이 없다. 대신 역 광장에서 제2땅굴-철원 평화전망대-월정리역을 돌아오는 3시간짜리 안보견학 셔틀버스가 하루 2회 운행한다.
연천 신서면 신탄리역은 2012년 백마고지역이 개통되기 전까지 경원선 최북단 역이었다. 그 흔한 커피전문점 대신 아직까지 옛날식 다방이 남아 있는 낡은 동네지만 식당과 가게는 깔끔하게 간판을 정비했다. 북녘 땅이 내려다 보이는 고대산 등반객들이 많이 찾는다. ‘통일을 고대하는 마을’임을 알리는 장식과 벽화, 철도건널목 무인차단기 등은 추억사진 찍기에 적합하다.
전곡읍 한탄강역은 한탄강관광지와 이어져 있고, 전곡선사유적지와도 가깝다. 한반도 최초의 인류, 구석기 시대 ‘전곡리안’의 주먹도끼가 발견된 곳이다. 다음달 7일부터 30일간 이곳에서 ‘2017 연천 구석기 겨울여행’ 축제가 열린다.
대형 눈 조각과 얼음조각을 설치하고, 눈썰매장과 봅슬레이 등 즐길 거리도 운영한다. 특히 12m 대형 화덕의 구석기바비큐(꼬치당 3,000원)는 지난해 가장 인기를 모았던 먹거리이다.
동두천역~백마고지역 구간에 3량짜리 통근열차가 하루 11회 운행한다.
choissoo@hankookilb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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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천= 최흥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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