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수한 바보와 어리석음(촌스러움)은 다르다. 둘 다 무지에서 출발하지만 하나는 맑고 다른 하나는 탁하기 때문이다. 모든 선한 것은 바보스럽다. 손해보고 찢기고 희생당하지만 감동이 거기서 출발하는 것은 인간이란 본래 탁하고 악하며 어리석기 때문이다. 연말에 바그너의 악극 ‘파르지팔’을 들으며 영적인 감동이라고나할까, 나름대로 피의 수혈을 위해 매진해 보았다. 다소 어렵고 힘든 작품이었지만, 영원한 바보 ‘파르지팔’의 이야기는 항상 영감으로 차 오르게 하는, 어떤 감동을 느끼게 하곤한다.
성배란 신화 속에 등장하는 예수의 최후의 만찬 때 쓰였던 잔을 말한다. (가톨릭에서의)최후의 만찬 당시 예수의 잔 속의 포도주가 성혈로 변했다고 믿는 그 잔을 말하지만, 아무튼 믿거나 말거나 이 잔이 지끔껏 에스파냐의 발렌시아 대성당에 모셔져 있으며 전설에 따르면 예수가 승천한 뒤 성 베드로가 순교할 때까지 성체성사 때 쓰여져 왔다고 한다.
각 종교마다 신화는 있기 마련이며 특히 기적을 일으킨다는 성배의 이야기 역시 켈트 신화, 기독교의 전설 등에서 유래했는데 중세의 ‘아서 왕의 전설’ 등이 바로 그것이었다. 바그너(1813-1883) 역시 이 ‘성배의 이야기’를 주제로 말년에 ‘파르지팔’(1882년 초연)이란 작품을 남겨 큰 성공을 보았는데 그것은 교회 안이 아닌 교회 밖에서 이룬 성과이기에 그 시사하는 바가 남달랐다.
바그너의 경우는 ‘다빈치 코드’처럼 어긋난 것은 아니었지만 오히려 종교가 전할 수 없었던 신비적인 모습을 무대와 음악이라는 특수한 도구로 현혹시키는, 나름대로 ‘제 3의 예술’(?)로 승화시켰는데 그것은 종교극이 갖는 특수 효과 때문이었다. 바그너 자신도 이 작품을 신성 무대 축전곡이라는 이름을 갖다 붙였는데 나름대로 자신의 신앙을 예술로 승화시켰다고 볼 수 있겠지만 그렇다고 이 이야기가 전적으로 기독교에 바탕을 둔 것은 결코 아니었다. 그럼에도 성배의 전설을 그린 ‘파르지팔’은 기독교도들에게 열광적인 환영을 받았는데 그것은 ‘파르지팔’의 내용이 종교보다도 더욱 종교적이었기 때문이었다.
바그너 역시 이 아름답고 거룩하고 작품을 오직 자신(의 예술)만을 위해 특별히 건축된 바이로이트 (극장)에서만 공연되길 바랬는데, 살아 생전은 물론 유언에도 ‘파르지팔’ 공연만큼은 절대적으로 바이로이트에서만 할 것을 못 박은 것이 그것이었다. 일종의 신비의 연막이라고나할까, 그러나 바그너가 죽자 마자(20년 뒤) ‘파르지팔’은 뉴욕으로 옮겨져 바이로이트에서보다도 더 큰 성공을 보았는데 그것은 ‘파르지팔’의 음악이 워낙 아름답기도 했거니와 ‘성배 이야기’가 안기는 호기심, 신비감이 주는 반사이익때문이기도 했다. 바그너는 ‘파르지팔’의 완성도를 위해 사방 벽을 온통 어두컴컴한 보라색으로 덧칠하고 방안에 갇혀 향수를 가득 뿌린채 작업했다고 한다. 극이 완성되자, 종극에는 박수를 치지 말 것을 주문했는데 오직 단 한 사람의 박수소리는 바로 그 자신의 박수였다고 한다.
바그너는 종교적인 사람이었지만, 예술가로서는 다소 (스스로에 대한) 사이코패스였다. 반사회적이진 않았지만 박수를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다 했던 바그너의 인간성은 일반 상식으로서는 도저히 이해되지 못했고 오히려 신의를 헌신짝처럼 여겼던 불명예스러운 자였지만, 예술이라는 과실(果實)로서 인류에게 사면받았다. 그의 음악적 성과(기교)는 크게 주목 받을만한 것은 아니었지만 비장한 무기가 있었으니 바로 하일라이트를 지정하는 그의 비범한 안목이었다.
다행이라고해야할지, 불행이라고해야할지 바그너는 성배와 같은 신화의 진실(?)을 예술로 녹일 줄 아는 냄새의 천재였는데 그가 세계적 바그너 매니아들을 거느리며 우상화 된 것은 음악뿐 아니라 그의 예술적, 문학적 천품이 바탕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즉 최고의 선률을 최고의 순간에 쏟아 낼 수 있는 그만의 기교가 있었는데 그가 인류의 역사에 있어서 하일라이트를 장식하는 성배(의 사건)에 초점을 맞추어 그의 (예술에 있어서) 최후를 장식한 것은 성배가 안기는 나름대로의구도적 예지, 누구나 한번은 맞닥뜨려야할 인류의 종교성… 그 예언적인 예지였는지도 몰랐다.
아무리 고난스러워도 진실하고, 순수한 것에는 감동이 있기 마련이다. 바그너와 성배… 아니 예수의 피를 받았다는 잔이 과연 존재할까? 성배… 그것은 바그너의 예술이기에 앞서 인류에 영원한, 그 초월적 동경을 남긴다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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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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