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년 연말이면 한국에서 대학교수들이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가 발표된다. 그 해 사회상을 가장 잘 반영할 것 같은 말을 투표를 통해 뽑는 것인데, 올해는 ‘임금은배, 백성은 물’이라는 뜻의‘ 군주민수’ (君舟民水)가 선정됐다. ‘순자’의 ‘왕제’편에 ‘강물의 힘으로 배를 뜨게 하지만 강물이 화가 나면 배를 뒤집을 수도 있다’는 어구와 함께 등장한다고 한다. 최순실 게이트로 성난 민심이 결국 대통령 탄핵안 통과로까지 이어진 상황을 빗댄 것이라는 풀이가 붙었다.
신문의 경우 ‘10대 뉴스’로 가는 해를 정리한다. 취재 데스크를 거쳐간 수많은 국내외 소식들 가운데 그 파급력과 뉴스 가치가 가장 컸던 10가지를 각각 꼽는 것이다. 올해는 그 중에서도 한국의 최순실 스캔들 및박근혜 대통령 탄핵, 그리고 미국의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 이견의 여지없는 최대 빅뉴스 였음은 물론이다. 한국과 미국 모두 10대 뉴스의 머리를 ‘대통령’이 장식했다.
한국의 이번 사태는 올해에 머물지 않고 내년까지 이어질 모양새다. 대통령 탄핵소추에 대한 헌법재판소의 판단이 남아있는데다, 그 결정 여부에 따라 조기 대선을 포함한 정치 지각변동이 예상되고 있어 2017년의 뉴스까지도 뒤흔들 것으로 보인다. 반면 ‘아웃사이더의 기적’으로 불린 미국 대선 결과는 이후 반발 시위와 재검표 청원,러시아의 해킹 등 일부 논란이 있기는 했지만, 선거인단 투표가 ‘반란’ 없이 순조롭게 끝나면서 내년트럼프 대통령 시대 출범은 순항을 예고하고 있다.
올해 미국 대선은 많은 사람들이 ‘설마’ 했던 트럼프 당선자 배출이라는 결과와 함께 미국만의 독특한 대통령 선출 시스템인 ‘선거인단’ 제도에 대한 논란을 다시 촉발시킨 점이 주목할 만하다. 트럼프 당선자가 전체 득표수에서는 힐러리 클린턴 전 국무장관에 250만표 이상 뒤지고도 백악관 입성에 성공하게 됐는데, 미국 역사상 이처럼 많은 표차가 나고도 선거인단 득표수 결과가 반대로 나온 것은 없었다는 것이다. 반대 진영의 입장에서는 이같이 상식에 반하는 결과를 내는 제도를 이제 바꿀 필요가 있다는 반발이 나오는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이와 관련해 진보 성향으로 꼽히는 저명 헌법학자인 어윈 체머린스키 UC 어바인 법대 학장이 얼마전 LA 데일리뉴스에 ‘선거인단 시스템이 왜 위헌적인가’라는 제목으로 기고한 글에 눈길이 갔다. 그는 여기에서 선거인단 제도의 문제점을 조목조목 지적하면서, 특히 각주별로 선거인단수를 배분하는 방식, 그리고 주별로 표차에 관계없이 1표라도 더 받은 승자가 그 주의 선거인단을 독식하는 ‘위너 테이크 올’ 규정 등 두 가지가 헌법에 위배된다고 주장했다.
그에 따르면 수정헌법상 모든 유권자의 1표는 그 가치가 동등하게 보장돼야 하는데 현재의 선거인단제도는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3명의 선거인단이 있는 와이오밍주는 그 1명이 유권자 19만여명을 대표하는데 반해, 선거인단수가 55명인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1명이 70만여명의 유권자를 대표하는 불균형이 실제로 존재하고, 이에 따라 이론적으로 전국 인구의 22%에 해당하는 주들이 미국의 대통령을 결정하게 되는 셈이라는 것이다.
이를 바로잡기 위해서는 헌법 개정을 해야 하는데, 규모가 작은 주들의 반대가 불을 보듯 뻔해 정치적 절차로는 이것이 이뤄질 수 있는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선거인단제도를 고치려면 소송을 통해 법원에서 위헌 여부에 대한 사법적 판단을 내리는 수밖에 없다는 게 체머린스키 학장의 진단이다.
견고하게 확립된 사회정치적 시스템에 바탕을 둔 미국에서 대통령 선출 방식을 바꾸는 획기적 사건이 일어날 가능성이 커보이지는 않지만, 체머린스킨의 주장처럼 많은 미국인들에게 충격적이었던 트럼프 대통령 당선이 미국 사회가 풀어야 할 새로운 과제를 한 가지 제시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한국에서도 2017년 새해에 대선이 치러지면서 개헌 논의를 포함한 여러 가지 변화의 요구들이 분출되는 현상은 피할 수 없을 것 같다. 합리적 상식에 반하는 어처구니없는 일들이 벌어졌다는 데 분노한 민심이 헛되지 않고, 새로운 해가 사회 전반에서 합리적 제도와 시스템이 정착되는 출발점이 됐으면 좋겠다는 바람이다.
<
김종하, 사회부장·부국장 대우>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