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리언 그레이는 이렇게 말했다부모님 지인의 아들이 있었다. 부모님을 통해 이야기만 전해 듣지 만날 기회가 없었는데 대학에 가서 드디어 만나게 되었다. 익히 듣던 바여서 내심 반갑기도 했는데 그가 대뜸 하는 말이 고등학교때 나땜에 살기 싫어진 적이 있었다 한다.
이 무슨 해괴한 소리? 눈이 똥그래져 바라보는데 이 녀석 하는 말, 고등학교때 부모님이 갖고 계신 사진 중에 내가 있다는 정보를 입수해서 훔쳐봤는데 본 순간 ‘아! 그렇게 만나고 싶었던 애가 이렇게 못생겼다니 난 무슨 맛에 살꼬!’ 했단다. 지금 같으면 당장 요절을 냈을 터이나 당시엔 내가 세상의 모든 가시에 속수무책 손 놓고 상처받는 애였던 관계로 그는 천운으로 목숨을 보존했다. 게다가 나중에 들려온 말이, 애는 재미있는데 너무 못생겨서 누가 보면 챙피할 것 같다나. 빼어난 미모를 아닐지라도 뒤돌아보게 못나지는 않았다고 자부하던 터라 당장 거울을 들여다 보며 물었었다. 거울아, 거울아, 내가 그렇게 못생겼니?
이 사연을 서른 중반에 눈 밝고 말 매서운 시인 친구에게 하소연 하니까 그녀는 나를 찬찬히 바라보더니 이 세상의 모든 여자를 세워놓고 예쁜 애와 못난 이를 가른다치면 나는 그래도 겨우겨우 예쁜 쪽으로 추려질꺼라고, 너무 낙심 말라고 했다. 이게 위로인가? 위로겠지. 그럼 백명중 49번? 51번이 되서 못난이 쪽으로 가게 되었다면 천추의 한이 되겠네. 인생살이에서 49번과 51번의 차이는 막대하겠지? 서울대를 턱걸이해서 들어간 이와 이차 대학을 일등으로 들어간 사람 중에 누가 더 신날까? 일등의 기쁨도 대단하겠지만 턱걸이의 쾌재도 만만치 않을 것이다.
게다가 일등은 언제나 부담이 있지만 턱걸이는 그저 낙제만 안하면 본전이므로 널널하다. 죽을 병에 걸렸다가 살아난 이가 인생을 더 소중하게 생각하듯, 굶던 이가 간신히 먹는 일이 해결되었을 때 느끼는 고마움이 지극하듯 49번 째의 미모는 딱 49번 째였기에 별 불만은 없었다. 그 얼굴로 당당히 시집도 가고 애 낳고 재잘재잘 잘 살았다.
근데 어느 날 갑자기 거울을 보니 재잘재잘이 자글자글로 바뀌었다. 앗! 드디어 나도 늙는구나, 나 정도의 사람도 서운한데 빛나는 미모를 소유하고 드높히 고개 들고 살던 이들의 상실감은 얼마나 심할까, 감히 상상은 할수 없되 그래도 짐작은 할 수 있어 참으로 마음 아팠다. 원래 없던 이야 더 없어져봤자 그게 그거니 별다르지 않지만 있던 이가 없어지면 땅이 꺼지는 것 같으리라. 그래, 나는 썩으면 먼지되는 이 육신에 애착말고 영원한 것을 바라며 살리라... 살면서 사람들은 전부 투자 가치가 있는 것에 제 삶을 투자한다.
달리기를 잘하는 사람은 더 빨리 달리려 노력하고 얼굴이 이쁜 사람은 그 이쁜 얼굴에 투자하고 돈 계산 빠른 사람을 돈을 주물러 한 밑천 챙기려 한다. 그래서 이쁜 사람은 당연히 이쁜 얼굴을 오래 유지하려 갖은 노력을 하게 된다. 백명중 49번 째인 나는 승산없는 것에 투자하기 싫어 대충 코스코에서 산 십불짜리 구리무을 쓰윽 한번 바르는 걸로 분장의 마무리를 삼는다.
젊었을 때 한미모 하던 이들은 바르고 문질르고 토닥거리는 자료가 셀수 없이 많다. 그러다 바르는 것만으로는 모자라 땡기고 고치고 주사맞고.. 요즘 뉴스를 보니 청와대에서 구입한 요상한 이름의 물품들이 많이 들어갔단다. 우리의 여자 대통령이 스러져 가는 미모에 깊히 상처받을 만큼 대단한 미모였나? 태반주사라는 것도 있던데 애기를 낳아 본 여자라면 누구나 숙연해야할 그 물체가 예뻐지는 물건으로 바뀐다니 아무리 예뻐지고 싶은 맘이 간절하다 해도 그렇게까지 더 이뻐지고 싶을까?
엽기다. 대통령이라는 분이 한 일을 갖고 왜 내가 챙피할까? 인간은 자연의 일부다. 자연은 태어나고 자라고 꽃 피우고 열매 맺은 후 흙으로 돌아간다. 날카로운 풍자와 독설로 유명한 오스카 와일드의 소설, 도리언 그레이의 초상을 보면 생김새에 집착하던 인간이 얼마나 잔인하고 추하게 되는지가 호러무비처럼 그려져 있다. 다시 새해. 주름은 계속 늘겠지만 늙은 이가 젊은 이의 얼굴을 갖는 해괴함 보다야 자연스럽게 늙는 게 나은거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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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 정 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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