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주일에 한번씩 왕복 2시간 운전을 마다하지 않고 상담을 오는 내담자가 있다. 몇년 동안 학교를 자주 빼먹고 여러 문제를 일으킨 고등학생 자녀와 계속되는 불화로 때론 컴퓨터를 던지거나 문이 부서지는 격렬한 몸싸움으로 관계가 점점 더 악화됐다고 했다. ‘언제 정신차리고 변할까? 저 녀석만 변하면 문제가 해결될텐데…’라고 원망하며 기다리던 중 한국일보에 실린 필자의 칼럼을 읽고 상담 받을 용기를 냈다고 했다.
지난 3개월 동안 열심히 상담을 오면서 그는 자녀의 보여지는 행동에 화가 나던 것에서 점차 자신의 모습과 부부관계를 볼 수 있는 관점을 갖기 시작했다. 칭찬과 격려에 인색하고 초등학교 어린 아이에게 예의를 가르친다며 자주 혼내던 엄한 엄마였다고 했다.
아이가 중학교에 들어가면서 주 7일 일을 했는데 직장의 스트레스가 집에 오면 편한 가족들에게 짜증으로 쏟아졌다. 상담이 진행되면서 내담자는 마음 부칠 곳이 없어 외롭고 힘들었을 아이의 마음을 처음 돌아봤고 ‘아이가 문제가 아니라 내가 변해야 하는구나’라는 것을 깨달았다고 했다. 아이에게 정식으로 사과하고 이제는 성인이 된 자녀에게 명령보다는 부탁하는 식으로 태도를 바꾸니 신기하게도 아이가 예전같은 분노 행동 대신 조금씩 마음을 열어 관계가 점차 회복되는 것을 경험 중이다. 참 기적같은 변화이다.
“선생님, 저는 한참을 돌아가느라 몇년의 시간을 허비했어요.”
상담을 하다보면 지난 세월들을 후회하는 사람들을 종종 만난다. 그런데 정말 그 시간이 낭비였을까? 돌아가는 것이 낭비라는 생각에는 ‘지름길’이 있다는 것을 전재로 한 표현이다. 그러나 인생이란 게 원래 지름길 같은 건 애초 없고 그렇게 구비구비 걷는게 당연한 거라고 생각을 전환하면 아무 것도 낭비된 것이 없다. 힘들 때 주위를 돌아보면 나만 돌아가고 다른 사람은 탄탄대로 지름길을 가고 있는 듯 보이나, 실제로 내가 별 어려움 없이 살던 그때 누군가는 험한 길을 분투하고 걷고 있었다. 순서와 타이밍이 다를 뿐… 우리는 내 앞에 주어진 길에게 길을 물으며 오늘을 걷고 있으니 ‘혹시 돌아가나’라는 걱정과 후회를 할 필요가 없다.
워싱턴에서 플로리다까지 내려가는데 I-95고속도로를 타면 빨리야 가겠지만 열 몇시간 동안 지루하고 재미없는 회색벽을 끼고 달리게 된다. 그러나 시간은 좀 걸리고 돌아가도 로컬 길을 달리면, 평화롭고 목가적인 동부의 시골 풍경과 대서양 바다길을 달리다가 수평선을 뚫고 떠오르는 붉은 태양의 일출을 목격하기도 한다. 때로는 황량하고 쓸쓸한 겨울벌판을 지나기도 하겠고, 가끔은 길에 신호등이 가득해서 속도를 줄이고 정신을 바짝 차려야 하는 작은 도시의 풍경을 만나기도 한다. 어떤 길이 더 나은지 정답은 없다.
우리 주위에는 아무 고생 없이 편하게 산 사람들과 산전수전 겪으면서 성숙하게 익어간 사람들이 있다. 어떤 사람에게 인간미와 따뜻함이 느껴지는가? 만났을 때 온화함과 따뜻함이 은은한 향기로 풍기는 사람의 인생 스토리를 들어보면 예외 없이 절망의 계곡과 사막을 걷던 시간이 있었다. 그 시간 동안 우리는 깎이고 다듬어지면서 책에서는 배울 수 없는 인생의 값진 교훈과 보석같은 삶의 지혜를 선물로 얻는다. 포도가 어두운 통나무 통 안에서 오랜 기간 숙성되어야 맛과 향이 좋은 포도주로 거듭날 수 있듯이 아름다운 향기를 품은 사람에게는 고통의 시간을 묵묵히 견디온 인내의 시간이 있었음을 본다.
몇일 남지 않은 2016년 한해를 돌아보니 잘한 일 보다는 후회되는 일들이 먼저 머리에 스친다. 그러나 지나간 것은 지나간 데로 그 의미가 있고 그 것을 통해 내가 성장하고 배운 값진 교훈이 있으니 결코 후회란 덫에 나를 가두지 않으련다. 대신 ‘올해도 수고했어’라고 스스로를 토닥거려 본다.
한해 동안도 여전히 격려해주고 지지해준 가족들과 지인들, 그리고 부족한 글에 귀한 지면을 내준 한국일보와 3년반 동안 함께한 사랑하는 독자들에게 깊은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counseling@fccgw.or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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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니카 이 심리 상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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