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럼프의 당선이 확실시 되면서부터 자꾸 뇌리를 파고드는 생각은 ‘하나님은 결국 우리를 버리시는가?’였다. 내게 이번 선거의 의미는 지구의 지속 가능성인가 지속 불가능성인가였고, 더 구체적으로는 새로 태어난 손자의 생존의 문제였다. 트럼프의 4년은 중환자실에 누워있는 지구에게 산소 호흡기를 빼는 것과 마찬가지로 느껴지기 때문이었다. 다른 어떤 이슈보다도 내게는 기후변화 대응 문제가 중요한 것이었다. 여러 개의 공이 담긴 바구니 밑에 구멍이 났다면 무엇부터 손을 써야 할 것인가? 불평등, 인종차별, 양극화 이런 문제는 인류의 역사가 지속한다면 복구할 기회가 오겠지만 우리를 담고 있는 지구는 그렇지 않다.
트럼프가 바뀔 수도 있다는 희망을 가지고 그가 앨 고어와 만났다는 소식이 반가웠다. 그러나 그가 인선한 차기 정부의 수장들을 보면 우려를 넘어 두렵다. 환경 관계 부서들, 내무부, 환경청, 에너지부에 내정된 수장들을 보면 미국과 지구를 화석연료회사들에게 통째로 내어 주려는 듯이 보인다. 특히 러시아가 트럼프를 돕기 위해 대선에 개입했다는 FBI의 보고와 함께 전해지는 엑슨 모빌의 CEO 렉스 틸러슨의 국무부장관 내정은 소름이 끼친다.
지금 러시아는 저유가 때문에 푸틴의 재임 16년 동안 최악의 경제공황을 맞고 있다. 금년 초 러시아 재무장관 안톤 실루아노브는 한 TV와의 인터뷰에서 “러시아는 벌써 국가 예비비의 16%를 썼고 2016년의 재원은 확보되었지만 2017년, 2018년, 2019년의 세수 확보를 위하여 무언가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가 세수의 50%가 석유와 천연가스 산업에서 온다. 그리고 군사비가 미국, 중국 다음으로 많다. 구 소련 회복의 야심을 가진 푸틴은 군사비는 한푼도 축내지 않는다. 그 무언가의 결정이 이번 미국 대선의 러시아의 개입일 수도 있겠다.
평생을 엑슨에서 일한 렉스 틸러슨의 푸틴과의 관계는 석유산업의 사업 파트너라고도 볼 수 있다. 둘은 1999년 러시아 국영석유회사인 로즈네프와 석유, 천연가스 개발 사업에 관한 계약관계로 만난 이후 계속 친분을 쌓았고 2013년 푸틴은 틸러슨에게 외국인에게 주는 러시아의 최고 훈장 ‘우정의 상’을 주었다. 그해 로즈네프와 엑슨은 5천억 달러라는 엄청난 금액의 계약을 맺었지만 무산되었다. 그 이유는 오바마가 러시아에 가한 경제제재 때문이었다. 러시아의 크리미아 침공으로 유럽과 미국의 견제 조치의 하나였다. 이에 대한 푸틴의 반응은 “이 조치는 반드시 부메랑처럼 미국이 후회하도록 다시 돌아갈 것이다”라고 말한 바 있다.
엑슨은 현재 뉴욕을 포함한 17개주 검찰총장으로 부터 수사를 받고 있다. 엑슨이 30년전 자회사 과학자들로부터 이산화탄소의 배출이 기후변화의 원인이라는 보고를 받았지만 이를 대중이 알지 못하도록 은폐했다는 혐의이다. 같은 이유로 그들의 창업자 록펠러 가족에게서도 소송을 당했다.
틸러슨이 국무장관이 되고 트럼프가 러시아의 경제제재를 풀어주어 5천억 달러의 딜이 발효된다면 수백만 배럴의 석유가 북극해에서 생산되게 된다. 이는 엑슨이 은폐한 과학적 사실 기후변화의 결과로 북극해의 해빙으로 가능하게 된 것이다. 북극은 벌써 온난화 효과가 이산화탄소보다 24배 더 많은 메탄의 배출로 더 위험하게 되었다. 인류 초유의 사건이라 북극 메탄의 매장량을 과학자들도 측정할 수 없다.
인류사의 시작은 자연을 정복해 가는 것이었다. 씨족사회에서 부족국가를 겪으면서 부족의 생존을 위하여 타민족은 정복하고 전쟁에 이기고 자연 자원을 수탈하는 것이 경제기반이 되어왔다. 그렇게 번성해 온 74억의 인류는 현재 지구에게 지각변동을 일으킬만한 지구 물리학적 힘으로 존재하고 있다. 이제 인류는 호모 사피언스라는 종의 보존을 위하여 자연을 정복보다는 보호해야 한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외면하고 있다. 과학은 또한 지구의 생물과 무생물이 얼마나 긴밀하게 상호 의존하고 있음을 알려 준다. 우리의 어떤 작은 행동도 쉽게 지구에 커다란 구멍을 낼 수 있다. 그 구멍은 또한 전체적인 파괴 시스템으로 이어지게 된다.
포브스는 세계에서 가장 강력한 사람으로 첫번째로 푸틴, 두번째로 트럼프를 선정했다. 트럼프의 당선으로 불행하게도 ‘우리 공동의 집, 지구’는 과학을 혐오하는 지구상에서 가장 강력한 두 사람과 화석연료산업에서 가장 강력한 한사람의 손에 들어가게 되었다.
트럼프 당선 이후로 뉴스를 보지 않는다는 주위 사람들의 이야기를 듣는다. 나도 그랬다. 그러나 생각을 바꾸었다. 오히려 더 깨어서 눈을 똑바로 뜨고 보기로 했다. 벼랑 끝에 아기가 서 있는 것을 알면 어느 엄마가 눈을 감고 있겠는가? 지금은 깨어 있어야 할 때다. 우리 모두가 깨어 있어야 한다. 인류사의 그 어느 때 보다도 ‘우리 공동의 집’을 지키기 위하여 우리 모두는 깨어 있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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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은영 기후변화 전문가 워싱턴 D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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