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우리 형(님)이 가진 별명 중의 하나가 ‘유리창’이었다. 대충 눈치채서 아시겠지만 바로 (도수 높은) 안경을 썼기에 붙여진 별명이었다. 그런 형이 가장 싫어했던 것이 바로 겨울이 오는 것이었다. 그것은 한겨울이 되면 입김으로인해 안경에 수증기가 어리기 때문이었다. 추운 곳에서 갑자기 실내에 들어 올 때도 안경에 뽀얀 안개가 서려 형은 늘 투덜거리며 겨울을 원망하곤 했다.
겨울이 되면 간혹 형의 안경이 떠오르곤하는데, 그것은 그 두 개의 유리창을 통해 2개의 세계를 들여다볼 수 있기 때문이기도 하다. 그중 하나는 형의 안경을 통해 역투영해 보는 세상… 뽀얗고도 성애가 가득한 창밖으로 바라보는 겨울이요, 또 다른 하나는 형의 안경을 통해 바라보는 또다른 나의 모습이다.
초등학교 5학년(2학기)때 우리 가족은 이사를 하지 않으면 안됐는데 겨울방학을 앞두고, 서울 변두리 그곳(학교)에서 배운 노래가 바로 캐롤 송 ‘창밖을 보라’였다. 당시만해도 이 노래는 널리 불리어지는 캐롤 송은 아니었으나 담임선생님이 음악에 소질이 있는 분이어서 능숙한 올갠(풍금)연주로 캐롤을 함께 부르며 추위를 녹였던 기억이 난다.
초등학교 5학년은 당시의 아이들에게는 다소 특별한 의미를 부여하는 학년이기도 했다. 그것은 5학년이 되어야 콩나무 시루같던 교실에서 그나마 오전 오후반으로 나누어 학습받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자신들만의 전용 교실이 생겨나고, 창틀에는 자신들의 이름이 새겨진 나팔꽃 화분도 놓이고, 오후반 녀석들이 낙서를 갈겨 놓는 그런 찜찜한 책상이 아닌 자신만의 오롯한 전용책상도 독차지 할 수 있게 된다.
전학을 가니, 이런 새로운 특권(?)을 내려놓고 다시 1학년부터 새로 시작하는 기분이들었다. 우선 낯선 아이들에게서 왕따당하는 기분이 싫었고, 낡은 학교시설… 특히 교실이 엄청 추웠던 것을 보면 난방시설이 형편없었던 것 같았다. 아마도 그때 담임선생님 역시 추위를 느껴 교실 분위기를 녹이고자 이 노래를 부르게 했는지는 모르지만 이 노래가 거의 익숙할 때쯤 되어서는 아이들 모두 추위를 잊고 들뜬 분위기의 합창 소리가 교실 공기를 가득 채웠었다.
창밖을 보라 창밖을 보라 흰눈이 내린다 / 창밖을 보라 창밖을 보라 찬겨울이 왔다 /썰매를타는 어린애들은 해가는줄도 모르고/눈길위에다 썰매를 깔고 즐겁게 달린다 -– <작사 – 미상, 작곡- 미첼>
서울의 동쪽 끄트머리에 위치한 그 곳은 한강을 지척으로, 채소밭들이 널려져 있었는데 도시도 시골도 아닌 그곳 분위기는 마치 버려진 섬처럼 황량하기조차 했다. 군데군데 건축붐이 일고 있었지만 당시까지는 시골분위기가 살아있었고 아이들의 옷차림은 남루했지만… 막상 겨울벌판에선 녀석들이 왕이었다.
건축용으로 흙을 채굴해 간 곳에 거대한 물웅덩이(호수)가 생겨 아이들이 겨울내내 썰매를 타곤 했는데, 철사로 엉성하게 얽어놓은 두발짜리 나의 썰매를 제외하곤 모두들 날선 날이 달린 외발 썰매를 스키처럼 타고 다녔다. 겨울 하늘은 스산했지만 솔개들이 날아다녔고 호수에선 얼음을 지치는 아이들, 겨울바람에 연을 날리는 아이들, 귀마개를 하고서 팽이를 치는 아이들… 이 모든 것이 크리스마스 츄리가 주는 화려함은 없었지만 마치 한 폭의 그림처럼… 카드 속의 겨울 정경을 연출하는 것이었다.
모든게 새롭고 낯선 곳이었지만, 지금도 당시의 5학년 겨울방학이 두고두고 떠오르곤 하는 것은 캐롤과 함께 떠오르는 창밖의 정경… 그 스산했던 겨울이 왠지 인생처럼 애달프고 보통의 꿈으로 회상하는, 전형적인 겨울 정경이곤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벌써 연말, 크리스마스다. 같은 사건들… 아무 기대감도 없는 그런 한 해가 지나가는 것 같다. 무의미함 속에서 의미를 찾아야한다고 마음을 다잡고보니 마치 지나간 나의 전인생이 평범함 속에서 무엇인가를 추구하려고 발버둥쳐온 흔적인 것만같다.
돌이켜보면 (베이붐세대의) 모두가 그랬듯, 누군가의 특별한 보살핌보다는 마치 버려진 아이들처럼 물만줘도 쑥쑥 자라야만했던 콩나물들이나 다름없었다. 창밖을 보라 창밖을 보라… 아마도 작자 역시 우리들처럼 평범하고, 어쩌면 갇힐 수 밖에 없었던 존재로서의, 창밖에 펼쳐지는 또다른 세계를 바라보길 원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오늘은 없는 나, 그러나 내일 또다시 솟아나는 희망의… 크리스마스spirit 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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