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의 대통령 탄핵안이 국회에서 찬성 234표, 반대 56표로 통과되었다는 것은 우리가 이미 잘 알고 있다. 그리고 기권이 7표, 무효가 2표 나왔다고 한다. 국회의원 300명 중 표결에 299명이 참여했고 단 한 명이 불참했다고 한다.
그런데 표결 참여 국회의원 중 누가 어떻게 표를 던졌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는 것은 한 명도 없다. 오히려 불참 의원의 경우에만 탄핵안에 어떤 입장을 취했는지를 확실히 알 수 있다. 나머지 의원들에 대해선 여당, 야당, 친박, 비박 등으로 나누어 불확실한 추측을 해 볼 뿐이다. 이는 한국의 국회법에 의해 대통령 탄핵안의 표결이 무기명 투표로 진행되었기 때문이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무기명 투표 방법이 옳지 않다고 본다.
나는 18년 째 버지니아주 페어팩스 카운티의 교육위원으로 일하고 있다. 어린 학생들의 교육에 직접적인 영향을 끼지는 일을 하는 만큼 내 나름대로는 가장 중요한 일을 한다고 자부한다. 교육위원 자리는 선출직 자리들 중 가장 낮다고 볼 수도 있겠지만 그러한 자리에도 투명성(Transparency)과 책임성(Accountability)이 무엇보다 중요시 된다. 그래서 교육위원들의 회의, 발언 내용, 그리고 이슈에 대한 찬반 표시는 모두 공개된다. 교육위원들을 선출하는 주민들은 이렇게 공개된 내용들을 보고 교육위원들의 업무 수행을 평가하고 다음 선거에서 재신임 여부도 결정한다. 이게 바로 민주주의 사회에서 꼭 필요한 책임 제도인 것이다.
물론 비공개 회의로 하는 내용들도 있다. 학생들 징계, 인사 문제, 소송 관련 사안 등이 법에 의해 비공개로 하도록 되어 있는 사항들이다. 그러나 그러한 사항들이라도 교육위원들의 결정은 공개적 표결로 하게끔 되어 있다. 프라이버시 보호 차원에서 해당 학생들과 교직원들의 이름은 밝히지 않지만, 교육위원들 개개인이 어떻게 표결에 임했는지는 모두 투명하게 공개된다.
이렇게 가장 낮은 위치의 선출직 공직자들에게 적용되는 책임성과 투명성 제도가 국가 전체의 정책과 입법 그리고 방향을 결정하는 막중한 책임을 지는 국회의원들에게는 더욱 요구되어야 한다는 것은 새삼 강조할 필요가 없다. 그런데 한국의 국회법에 의하면 대통령 탄핵안 투표는 무기명으로 하도록 되어 있다는 것이다. 나는 국회법이 왜 그렇게 제정되었는지 알지 못 한다. 그래야만 국회의원들이 외부의 압력에 좌우되지 않고 자신의 양심에 따라 의사 표시를 할 수 있을 것이라는 게 배경 취지가 아닐까 추측해 볼 뿐이다. 그런데 그렇다면 이는 유권자들의 알 권리를 위반하는 것이다.
유권자들은 선출직 공직자가 주위의 압력 아래에서 어떤 모습을 보이는지를 알 권리가 있다. 그래야 자신들의 표로 선출된 공직자들을 제대로 평가할 수 있다. 또한 무기명 투표가 꼭 양심에 따라 행해진다고 가정할 수도 없다. 오히려 무기명 투표이기에 양심과 상관 없는 방향으로 투표할 수도 있다.
대통령은 전체 국민들의 투표로 선출된다. 그렇기에 대통령 탄핵안에 대한 찬반 의사 표시야말로 국회의원들이 행사할 수 있는 가장 엄숙한 권리이자 책임을 수반한 행위라고 볼 수 있다. 한 국가의 운명을 바꿀 수 있는 결정에 참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그런 중대한 결정에 자신이 뽑은 국회의원이 어떤 의사 표시를 했는지를 유권자들이 확인할 방법이 없는 것은 적어도 정치적 선진사회에서는 있을 수 없다. 그렇게 진행된다는 것 자체가 한국이 아직 그런 면에서 후진성을 면치 못하고 있다고 자인하는 셈이다.
우리 조국 한국은 이제 더 이상 정치적 그리고 민주적 제도 구축에 있어서 후진국으로 뒤처져 있을 이유가 없다. 과거 군사 독재 시절처럼 누구를 두려워 할 일도 없다. 아니, 없어야 한다. 국민들의 알 권리가 투명성을 통해 보장 되어야 하고, 그렇게 알게 된 올바른 정보를 바탕으로 선출직 공직자들이 책임을 다했는지 여부를 유권자들이 제대로 평가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 제대로 된 민주주의 국가라면 그 어떤 사안에 대해서도 선출직 공직자들이 무기명으로 마치 남몰래 숨기듯 투표하는 일은 없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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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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