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12월 연말로 접어들었다. 연말연시 마음이 분주하거나, 고국의 시국을 비롯 세상 돌아가는 일로 마음이 답답할 때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 잦아졌다. 그러다보니 이제는 어디 멀리 깊은 산이나 성지를 찾지 않고도 일상에서 하는 종교적 수행처럼 되어 버렸다. 마음이 힘들거나 세상이 어지러울 때 낮이건 밤이건 하늘을 올려다보는 일이나, 홀연히 바닷가 찾아 바다를 바라보거나 높은 산 올라 새해의 일출을 맞이하는 것이나 혹은 경전이나 성소 앞에서 마음의 손 모으는 것은 나름 기다림의 과정이요 그 어떤 ‘기다림’을 찾기 위함일 것이다.
요즘 기다림의 의미가 마음에 깊이 다가온다. 물론 그 기다림은 “배안에서 구조를 기다려라”는 마음 없이 쏟아낸 세월호 선장의 무책임 무능에서 나온 그런 거짓 기다림과는 다르다. 사마천의 사기(史記)에 나오는 다리 밑에서 만나자는 한 여인과의 약속을 믿고, 차오르는 홍수에도 피하지 않고 있다가 빠져 죽은 노나라의 미생(尾生)이 보여준 창조성 없는 기다림과도 다르다. 포기와 낙심이 가득한 절망적 혹은 수동적 기다림은 더더욱 아니다. 기다림의 왜곡이 슬프다. 그런가하면 ‘빨리빨리’ 문화나 각종 기계의 즉각적 반응의 편리함에 익숙한 나머지 점점 기다림을 불편으로 여기며 힘들어하는 요즘의 세태 역시 그리 달갑지 않다.
왜곡되지 않은 본래의 기다림, 누구나 또 어느 사회나 지니고 있어야 할 기다림의 회복이 그립다. 한 시인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기다림을 이렇게 노래했다. “내 기다림은 끝났다. 내 기다리던 마지막 사람이, 이 대추 굽이를 넘어간 뒤, 인젠 내게는 기다릴 사람이 없으니. … ”(기다림/서정주) 시의 앞부분은 얼핏 기다림의 포기를 말하는 듯하지만, 시 전체를 보면 기다림은 이승을 넘어 다음 세상으로 이어지는 것으로 이해된다. 시인에게 기다림은 곧 인생이요 삶의 내용인 듯하다. 우리의 삶에서 기다림은 곧 살아 있음의 표현과 다름이 아니다.
세상의 모든 것은 기다림의 산물이다. 우리 생명의 탄생도, 오늘의 우주도 천지창조 이래 수십억 년 기다림의 결과이고, 봄꽃 한 송이도 겨우내 기다림 끝에 꽃을 피운다. 우리 또한 기다림 속에서 태어났다. 모든 것은 기다림을 통하여 온다. 세상에 어디 기다림 없이 되는 것이 있는가. 기다림은 우리의 삶의 모습이요 우주의 존재방식이다.
그러므로 모든 기다림 앞에서 진지해야 한다. 기다림은 사람 사이의 관계와 세상의 만사와 만물을 이루어 가는 자연한 과정이다. 좁은 길이나 복잡한 찻길에서 양보를 통한 기다림이나, 늦게 온 친구를 타박하지 않는 넉넉하고 여유로운 기다림을 통하여 우리는 기다림의 일상적 아름다움을 본다. 기다림을 문제나 불편한 것으로 여기는 생각을 버려야 한다. ‘기다림’을 기다릴 줄 알아야 한다. 기다림을 통하여 이 일과 저 일이, 어제와 오늘이 비로소 하나가 된다.
우리 사회에 개인의 소박하고 특별한 기다림이 포기되지 않고, 기다림의 에너지로 출렁이는 사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이제 삼포(三抛) 오포(五抛)라는 말들이 사라지고 젊은이들 마음에 기다림이 되살아나, 마음에 맞는 사람을 만나 멋지게 사랑하고, 취업을 통하여 자신을 실현하고, 결혼이나 주택을 마련하고, 2세 출산 등을 꿈꾸는 개성과 희망이 담긴 기다림이 회복되었으면 한다. 그런가하면 편법이나 차별 없는 사회, 공정하고 투명한 세상, 평화와 통일의 세상 등등 낡은 세상 대신 새로운 세상을 위한 사회적 기다림이 실현되는 내일도 기다려진다.
기다림은 세상을 사는 힘이다. 프랑스 소설가 알렉상드르 뒤마는 ‘인간의 지혜는 단 두 단어 기다림과 희망으로 집약 된다’고 했다. 오늘의 실망이나 온갖 어려움 속에서도 끝내 이겨 낼 수 있는 것은 기다림 때문이다. 역사 속에서 암흑의 시대나 고난의 시대를 극복 할 수 있었던 것도, 고국의 수 백만 촛불 집회도 함께 희망하는 공동의 기다림이 있었기 때문이다.
기다림은 또한 모든 종교의 메시지이기도 하다. 신앙은 언제나 기다림이며, 기다림 없는 신앙은 없다. 소박하고 진지한 개인의 기다림과 모든 사람이 함께 고대하는 새로운 사회를 향한 기다림이 이루어지며, 비록 아직 원하는 바를 못 이루었을지라도 희망 가운데 창조적 기다림의 힘으로 살아가는 세상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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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석 성공회 워싱턴한인교회 주임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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