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간 밀실집필 논란을 빚었던 국정교과서의 현장검토본이 이달 28일 공개됐다. 교육부는 여론 추이를 보며 결정하겠다는 입장인 반면 청와대는 원안대로 내년 3월 시행한다는 입장이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역사교과서 국정화 시행은 폐기처분되어야 마땅하다. 정부가 강행을 한다면 시민 불복종운동으로 촛불이 아닌 횃불을 들어서라도 막아야 한다. 역사왜곡은 대통령의 탄핵과는 사안의 경중이 다르다. 잘못을 알고도 모르는 체하고 그대로 묵인할 경우 우리 모두는 역사의 죄인이 되는 것이다.
현장 검토본에 기술된 왜곡 사례를 중심으로 몇가지 살펴보면 첫째로, 친일파라는 표현 대신 ‘친일인사’ ‘친일세력’으로 표기한 점과 대한민국 정부수립을 ‘대한민국 수립’으로 기술한 점이다. 이러한 용어 선택은 한마디로 독립정신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부정하는 사관이다. 이는 ‘한국현대사 학회’ 교과서포럼 인사(뉴라이트)들이 2011년부터 공개적으로 주장한 역사관이다. “일제의 식민 지배가 한국의 근대화에 기여했다.” “정신대는 일제가 강제 동원한 것이 아니라 당사자들이 자발적으로 참여한 상업적 매춘이자 공창제였다 “이승만을 국부로 내세우고 광복절을 건국절로 바꿔야 한다.” 등 대충 이런 주장들이 그대로 국정교과서에 반영된 단어 선택이다. 민족정신과 국가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친일을 미화하고 독립정신을 폄하하는 내용이 그리 어렵지 않게 그려진 세계에서 유래를 찾아볼 수 없는 정체성 말살사관이다.
둘째로, 5.16 군사 쿠테타는 현실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다’ ‘불가피한 상황 이었다’라고 미화하고 있다. 역사는 변명의 장이 아니다. 또한 유신독재는 경제개발의 부흥을 가져왔다고 면죄부를 주고 있다. 대통령의 업적에는 공(功)과 과(過)가 동시에 병존하고 있다. 그러나 민주주의를 표방한 국가에서 독재는 과의 문제가 아니라 반역의 문제이다. 공이 있다고 해서 과가 정당화 될 수 없는 것이다. 공을 내세우기 위해서는 먼저 과부터 참회와 반성을 통해 사죄하고 용서를 구하는 것이 원칙이다.
셋째로, 친재벌 서술 강화와 노동운동 서술 축소 부문이다. 이는 ‘자유경제원’ 손을 들어준 역사서술이다. 자유경제원은 공동체의 가치보다 개인의 사익을 우선시 하고, 정부의 힘을 제한하는 작은 정부를 지향하며, 정부의 통제를 무한히 벗어난 경제적 자유를 외친다. 그리고 세금을 최소화고, 빈부격차는 자연스러운 것이며, 복지는 갈취라 생각하는 21세기 현대자본주의 경제정책과는 동떨어진 17-18세기 자유방임주의 이론을 옹호한다. 임금 피크제, 기간제 근로자(비정규직) 기한 연장 등 주요 현안에서 전경련의 대변인 노릇을 하는 위장 계열사로 맹렬히 활동하고 있는 무늬만 비영리 단체이지 실속은 영리단체나 다름없다.
넷째로 민주주의를 ‘자유민주주의’로 표기한 점이다. 이 용어는 뉴라이트의 정신적 지주 내지는 대부라고 불리는 유영익 국사편찬위원장이 주장하여 한때 논란이 된 적이 있다. 민주주의는 사회주의, 공산주의, 자유주의, 보수주의, 진보주의등 사회 철학적 이데올로기 중의 하나일 뿐이다.
다섯째로, 대결적 남북관계 서술이다. 최근 대두되고 있는 학술 언어인 ‘냉전원수만들기’ 와 ‘냉전 정체성 만들기’는 서로 상대를 원수로 만들면서 자신의 존재 근거를 확인하고 정체성을 공고히 해 나가는 적대의식의 충만 이론이다. 극우 보수는 사상과 인식의 외눈박이가 되어 보편성을 통해 자신을 보는 상식기준을 상실하고 가장 강한 반공이 가장 강한 정당성을 갖는 집단 의식구조 만들기에 바쁘다. 극도의 적대의식은 증오를 유발시킨다. 이러한 상태에서는 사생결단의 투쟁만이 진행될 뿐이다. 좌우진영 이념의 선긋기를 통한 낙인찍기 전략(종북)과 통합과 배제의 이중주 연주를 통해 적대의 정도는 하늘을 찌를 정도로 악취를 생산해 내고 있다. 친일과 반공의 프레임 속에 인간의 사고를 좁히려는 어리석고 비뚤어진 우를 그들은 범하고 있다. 더불어 우리사회는 이분들의 심기를 조금이라도 거스르면 종북자로 낙인 찍히는 마법을 경험하는 것이 그리 어렵지 않다.
역사란 오랜 기간 동안 인간이 거쳐 온 모습이나 행위로 인간이 만들어낸 과거의 행적이다. 역사적 해석은 다양할 수 있다. 또한 역사적 사건에는 수천만의 아우성치는 소리가 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과거에 저지른 잘못에 대한 명예회복을 찾기 위해 그리고 현재와 미래의 정치적 목적과 이익을 위해 역사적 사실을 왜곡해서는 안된다. 역사는 개인적인 소유물도 권력을 거머쥔 통지자나 그 권력을 뒷받침하는 특정 정당의 소유물이 아니다.
제국주의 일본에 저항하다 무참히 짓밟힌 독립운동가의 피맺힌 절규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냉전의 이념에 희생당한 6.25 영혼들의 동족상잔의 아픈 신음소리가 들리는가! 군사정권에 저항하다 처참히 쓰러져간 5.18 민중들의 한의 목소리가 들리는가! 조국의 미래를 위해서는 이래서는 안된다.
<
이형국 버크, VA>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