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델 카스트로의 사망 뉴스를 접하고 1959년부터 몇 년동안 내 자신의 직장 생활에 쿠바 혁명이 끼쳤던 작은 파장을 회상하게 된다.
그때는 국민연평균 소득이 60불 정도이던 때라 일류대학을 나오고도 직장 잡기가 무척 힘든 때였다. 당시 외국어 대학 재학 중이던 나도 가세가 기운 탓에 이곳저곳 일자리를 찾을 때였다.
동아일보사 견습기자 시험에 대학졸업자나 동등의 실력을 가진 자가 응시할 수 있다는 광고가 나온 대로 응시한 결과 최종 선발된 12명 중 하나가 되었다.
정경부, 사회부, 문화부를 두루 거친 다음 정규 기자로 배정된 곳이 외신부였다. 카스트로가 30세 좀 넘은 나이로 쿠바의 독재자 바티스타 정권을 몰아내고 혁명에 성공한 것이 1959년 1월이었다.
그때 외신부 기자들이 하는 일이 뉴욕타임스, 타임 그리고 뉴스위크 등 미국 신문과 잡지를 읽고 소화한 다음 소위 시사 해설을 쓰는 것이었다. 카스트로가 처음에는 공산주의자가 아니라고 유엔에 와서 공언하다가 지주 계급의 토지 몰수와 산업 시설의 국유화, 그리고 외국 회사들의 재산 동결 등의 조처로 공산화의 길을 걸으면서 니키타 흐루시초프의 소련과 동맹을 맺고 반미의 길을 걷게 됨에 따라 마이애미에서 불과 90마일 거리에 있는 쿠바는 미국 정부의 중요 관심사가 된다.
마이애미로 망명온 반 카스트로 쿠바인들 1,400명을 훈련시켜 돼지만(Bay of Pigs)이라는 지역에 공수해서 낙하만 시키면 쿠바인들의 열광적인 지지로 카스트로가 쫓겨날 것이라는 CIA의 장밋빛 예상은 완전히 거꾸로 되어 카스트로 정권이 오히려 단단해지는 단초가 된다. 그에 더해 소련과 동맹을 맺은 카스트로는 소련의 핵 미사일 기지를 쿠바에 설치하는데 동의해서 그 기지를 건설하는 것이 미국 U-2기에 포착되어 미소 냉전 시대 중 핵무기 전쟁의 열전으로 세상을 파멸시킬 수도 있었던 쿠바 미사일 위기가 1962년 10월 14-18일 사이에 벌어진다. 소련이 핵무기 시설을 철거하지 않으면 전쟁도 불사하겠다는 케네디의 최후 통첩 등으로 전 세계의 긴장을 피부로 느낄 수 있었던 때였는데 결국 ABC방송의 존 스캘리 기자를 통한 물밑 협상과 공식채널을 통한 대화로써 극적인 타결을 보게 되었다.
그러는 과정에서 외신부 여섯명 기자들 중 하나였던 나도 여러 차례 쿠바 사태에 대한 시사해설을 쓰곤 했었다. 그러다가 쿠바 사태가 나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일이 있게 된다. 전술한 것처럼 대학 재학중 취직을 했던 나는 제대로 학교에 출석할 수 없었던 것은 물론이다. 간신히 학기말 시험때 가서 배우지도 않은 내용에 대한 시험을 치루었으니까 전공인 영어야 그냥저냥 명맥을 유지했다하더라도 역사 철학 법률 등 교양과목은 C학점이면 다행이었을 정도였다. 그런데 영어과의 졸업 요구조건중 하나는 영어로 쓴 논문이었던 바 그 비중이 8학점이었던 것으로 기억된다. 그래서 카스트로의 혁명에 대한 것을 뉴 리퍼블릭 등 여러 잡지를 참조하여 논문을 썼는데 짜집기를 웬만치 했던지 A학점을 받는 바람에 졸업성적이 간신히 B학점 평균이 되었다. 쿠바 혁명에 대한 논문 때문에 B학점이 유지되었고 그 때문에 스탠포드에 풀브라이트 장학생으로 유학하게 되었다고 생각한다.
카스트로에 대한 평가에 있어서 미국 지식인들, 특히 소위 진보적인 지식인들은 관대하다는 인상이다. 진보적 대학 교수들의 영향을 받은 많은 대학생들의 기숙사 방에 흔히 걸려있던 카스트로와 그의 혁명동지 체 게바라의 초상화들이 그런 풍조를 대표한다. 물론 바티스타 등 무능 부패 독재세력을 쫓아내고 농지개혁으로 절대빈곤에서 많은 쿠바인들을 해방시켰는지는 모르지만 “권력은 총구에서 나온다”는 모택동의 격언대로 공산혁명과정에서의 유혈, 폭정, 찬탈, 독재 그리고 개인숭배의 과정에서 카스트로도 자유롭지 못하다. 어떤 칼럼니스트의 지적대로 카스트로의 처형부대 앞에서 총살된 5,600명의 쿠바인들 그리고 사법절차를 거치지 않고 암살로 희생된 1,200여명, 또 수많은 사람들이 자유를 부르짖다가 투옥되고 고문되었다는 사실은 그가 적어도 쿠바인들에게 무료로 교육과 의료 혜택을 제공했다는 치적(?)과 함께 기억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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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선우 변호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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