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미한국학교 북가주 협의회가 주최하는 백일장이 올해 23회 이니까 나 역시 23년간을 백일장 심사위원을 한 것이다. 그 때의 어린 학생들이 자라서 이제 어엿한 청장년이 되었고 학생들을 지도하시던 선생님들도 그동안 많이 바뀌었다. 그러나 한글학교 교사 직을 꾸준히 지켜주시고 매번 학생들을 인솔하고 나오시는 선생님들이 여럿 계셔서 심사하러 올 때 마다 뵈어서 반갑다.
백일장에서 주어지는 글제는 우리 생활 주변에서 흔히 보고 만날 수 있는 것들이다. 학생들은 이 중에 하나를 골라서 글을 짓는다. 비록 띄어쓰기, 맞춤법 등이 틀려도 정성스럽게 쓴 글, 솔직하게 쓴 글들이 귀중한 작품이다.
“이번에는 어떤 글을 만날까?” 많게는 몇 백, 적게는 몇 십개의 글을 햇빛 아래에서 읽으면 눈이 피곤하고 아프기도 하지만 심사를 할 때 마다 마음이 설렌다.
아이들의 상상력은 어른들의 그것을 초월하는 경우가 많이 있다. 어른들이 전혀 생각치도 못하는 것을 생각하고, 어른들이 바라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본다. 아이들은 어른들과는 달리,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맑은 영혼으로 세상을 바라보기고 생각하기 때문일 것이다.
그동안 기억에 남는 글이 몇이 있다. 한글을 배워감에 따라 자기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내용의 글도 그중 하나이다. 학교 공부 따라가기도 힘들고 주말에 과외활동하는 것도 바쁜데, 한글까지 배우기가 처음에는 싫었단다. “내가 왜 한국사람이고 또 왜 한국학교에 가야하나?” 하는 생각도 많았지만 커가면서 두가지 언어를 한다는 것이 얼마나 재미 있는지, 미국속에 한국인 이라는 것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를 썼다.
독도가 우리 땅이라는 것도 설득력있게 주장한 글도 대견했고, 친하게 지내던 친구가 아빠의 직장관계로 본국으로 돌아가서 슬펐다는 글도 참으로 어린이 다운 글이어서 좋았다. 한 초등학생은 제일 좋아하는 음식이 깻잎이라고 했다. 같이 점심을 들던 미국 친구가 “한국 사람은 이상한 것도 먹는다”고 해서 “너는 미역국 먹어 봤어? 김이 얼마나 맛있는 줄 알아?”하고 쏘아 주었다는 얘기를 쓴 글도 재미있게 심사했다.
철학적인 글도 있다. ‘날아가는 새’라는 글제에서 어떤 학생은 자신이 ‘날아 갈 수 없는 새’가 되어 날아가는 새와 얘기하는 특이한 글이었다. 그렇다. 날아갈 수 없는 새도 있는 것이 이 세상이다. 이번 23회 백일장 장원을 한 글도 새를 제목으로 쓴 글이다. 자기가 갈매기가 되어 오빠 갈매기와 함께 날아가 엄마 새를 만나는 내용이다. 풍부한 상상력과 글의 짜임새가 좋았다. 어떤 학생은 할아버지가 돌아가셨을 때 집 식구들의 모습을 차분하게 묘사하였다.
할아버지의 덮혀진 시신에 머리를 대고 조용히 기도하시던 할머니, 할머니를 위로하는 아버지 어머니. 그런 분위기에서 철없이 왔다갔다 하는 동생의 모습. 그래서 글의 끝을 이렇게 맺는다. “아무리 기쁘게 살아도 슬픔은 항상 있다. 생각해 보면 슬펐을 때가 가장 솔직했다.” 나는 매년 심사를 할 때 마다 이런 좋은 글을 만난다. 아이들 글 중에 가족 여행 이야기가 많았다. 온 가족이 함께하는 여행이 좋은 추억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시간과 여유가 허락하는 한 아이들과 많은 여행을 다니시라고 부모님들에게 권고하고 싶다.
그리고 놀라운 것은 백일장에 입상하는 많은 아이들이 부모의 모국 한국에서 태어난 것이 아니고 여기 미국에서 태어났거나 아주 어려서 미국에 왔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한국어로 수준 높은 글을 썼다는 것이 대견하고 그렇게 교육을 시켜준 부모들, 선생님들이 고맙다. 그런데 안타까운 것은 매년 백일장에 나오는 학생들이 줄어든다는 것, 학년이 높아갈 수록 참가 학생이 줄어드는 것이다.
대부분의 우리 부모는 아이들이 좋은 학교에 진학하고 졸업후 사람들이 알아주는 직장에 다녀서 돈도 많이 벌고 출세하는 것을 바란다. 그러나 참된 교육이라는 것은 우리 아이들에게 폭 넓은 교양을 갖게 하고, 균형잡힌 시각으로 세상을 보게하는 것, 그래서 정직하고 진실한 사회인으로 자라게 하는 것이 아니던가? 그렇게 하려만 어려서부터 많은 책을 읽고 또 자기의 느낌을 균형잡힌 시각으로 쓰게하는 교육이 필요한 것이다.
고백하지만 23년 동안 나는백일장 심사위원으로 아이들로부터 오히려 많은 것을 느끼고 배워서 행복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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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수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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