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대통령 당선인들은 자신만의 ‘이너 서클’과 함께 워싱턴에 입성한다. 후보시절부터 생사고락을 함께 해온 참모와 친구, 정치적 동지들로 이루어진 소수의 최측근 그룹이다. 논공행상도 해야 하고 신뢰할 수도 있으니 백악관과 새 내각의 요직에 등용된다. 당선인과 같은 지역 출신으로 배타적인 이들의 백악관 점령은 새 대통령을 시험하려는 워싱턴의 텃세를 꺾는 힘이 되기도 하고, 정실인사의 부작용을 드러내며 호된 비난의 대상이 되기도 한다.
땅콩농장주 출신의 지미 카터에겐 ‘조지아 마피아’로 불린 젊고 건방진 조지아 사단이 있었고, 로널드 레이건에겐 ‘미즈 대통령’으로 눈총 받을 만큼 분신 같았던 에드 미즈의 캘리포니아 사단이 있었으며, 빌 클린턴에겐 야심찬 변호사들의 아칸소 사단이, 조지 W. 부시에겐 선거의 귀재 칼 로브를 중심으로 한 텍사스 사단이 있었다. 제각기 절대 충성과 절대 신임으로 단단하게 묶인 관계였다.
뉴욕 출신이지만 ‘트럼프의 뉴욕 사단’이란 말은 들리지 않는다. 처음엔 트럼프의 출마를 진지하게 간주한 정치가가 거의 없었으니 절대 신임의 정치 인맥도 있을 리 없다.
대신 그에겐 가족, ‘트럼프 패밀리 사단’이 있다.
주류인사들이 등 돌렸던 공화당 전당대회는 트럼프의 가족잔치로 치러졌고, 대통령에서 할리웃 스타까지 호화 군단이 총출동한 힐러리 캠페인과는 대조적으로 찬조 연설자조차 변변히 없었던 트럼프의 유세장을 함께 누빈 것은 그의 자녀들이었다. ‘트럼프 대통령’ 실현에 최대 공신이자 가장 믿을만한 측근, 트럼프의 이너 서클은 그의 가족 사단이다.
핵심은 사위 재럿 쿠슈너다. 정치해설 사이트 ‘복스’는 트럼프 행정부를 세 다리 의자로 비유한다 : 하나는 공화당전국위원장을 지낸 라인스 프리버스 백악관 비서실장 내정자로 대변되는 기득권층, 또 하나는 백악관 수석전략가로 발탁된 스티브 배넌의 극우보수그룹, 그리고 중요한 마지막 하나는 공직경험 없는 35세의 쿠슈너가 이끄는 ‘트럼프 가족 다리’다.
끝없이 요동쳐온 캠페인 동안 트럼프가 가장 신뢰하는 ‘눈과 귀’의 막후실세였던 쿠슈너는 선거 후엔 전면으로 모습을 드러내며 막강한 입지를 과시하고 있다.
선거당일 트럼프의 승리가 굳어지면서 밀려드는 각계의 전화를 선별해 트럼프에게 넘겨준 사람도, 요즘 한창 진행 중인 행정부 요직 후보들의 명단을 받아 1차 검토를 하는 사람도, 프리버스나 배넌이 트럼프에게 올릴 제안에 대해 미리 조언을 구하는 대상도 모두 쿠슈너다.
대외적으로도 트럼프의 쿠슈너 총애는 곳곳에서 포착된다. 트럼프의 첫 백악관 방문에도 동행했고, 트럼프가 아베 신조 일본총리와 만나는 자리에도 트럼프의 맏딸인 아내 이방카와 함께 배석했는가 하면, 국가기밀정보를 알려주는 ‘대통령 일일 브리핑’을 쿠슈너도 듣게 해달라는 트럼프의 요청에 정계가 시끌대기도 했다.
당선 한 주 만에 ‘트럼프랜드’가 확실하게 체감한 교훈은 “쿠슈너를 화나게 하지 말라”였다고 CNN은 전했다. 선거기간 중 트럼프의 신임을 받던 캠페인 매니저들이 논란에 휩싸였을 때 모두 입 다문 상황에서 트럼프를 설득해 그들을 해고했던 쿠슈너는 검찰총장 시절 아버지를 투옥시킨 크리스 크리스티 뉴저지 주지사와 오랜 원한에도 불구하고 큰 마찰 없이 일하다가 선거 1주후 그를 정권인수위원장에서 밀어내면서 크리스티 측근들에 대한 ‘숙청’까지 단행했다.
쿠슈너에 대한 트럼프의 무한 신뢰는 트럼프에 대한 쿠슈너의 절대 충성에 근거한다. 충성을 맹세하는 측근들은 많다. 그러나 제각기 정치적 계산이 뻔히 보인다. 정치적으로 ‘노우바디(nobody)’인 쿠슈너에겐 다른 계산이 없다.
현대 미 정치사에서 트럼프 못지않게 막강한 가족 사단은 단연 케네디 패밀리였다.
1960년 말 대통령 당선인 존 F. 케네디가 법무장관에 동생 로버트 케네디를 지명하자 “부적절한 족벌 인사”라는 비난이 들끓었다. 아무리 똑똑하다 해도 로버트는 상원 위원회의 법률자문역이 경력의 전부인 35세 애송이 변호사에 불과했다. 케네디 사후 연방의회는 대통령의 친인척 공직임명을 금지하는 친족등용금지법을 통과시켰고 이를 서명한 것은 케네디 행정부의 부통령 시절, ‘건방진 녀석’ 로버트를 끔찍이도 싫어했던 린든 존슨 대통령이었다.
그리고 50년 후 존슨의 ‘달콤한 복수’로 불리는 이 법이 쿠슈너를 비롯한 트럼프 자녀들의 백악관 입성을 막고 있는 것이다. 자녀들을 공식직책에 임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밝힌 트럼프 측은 그러나 쿠슈너의 무보수 비공식 직책에 대해선 말을 아끼고 있다. 친족등용금지법 한편으로 헌법은 대통령의 참모선택 권한을 폭넓게 허용하고 있어 요즘 트럼프타워에선 쿠슈너가 트럼프 대통령의 가장 가까운 ‘눈과 귀’가 될 수 있는 방법이 다각도로 모색되고 있다.
쿠슈너의 백악관 입성여부는 트럼프 패밀리 사단에 잠재된 문제 중 일부일 뿐이다. 더 큰 문제는 자녀들에게 맡겨질 트럼프 비즈니스와 국익이 최우선되어야 할 트럼프 행정부의 이해상충 가능성이다. 트럼프는 사업에서 완전히 손을 떼겠다고 했지만 국내외 어느 기업과 정부가 대통령 자녀와의 거래를 통해 백악관의 특혜를 얻을 수 있는 기회를 놓치려 하겠는가.
역대 대통령들의 이너 서클은 국가보다 카터에게 충성한 조지아 사단처럼 대통령의 단명을 재촉하기도 했고, 클린턴 같은 스마트한 보스를 만나 워싱턴 엘리트층과 윈-윈 협조를 이룬 아칸소 사단처럼 재선에 성공하기도 했다.
트럼프의 패밀리 사단은 어떤 운명을 택할 것인가. 제45대 대통령이 자신을 백악관에 보낸 힘이 특권층에 염증 느낀 민심의 분노였음을 잊지 않는다면 4년 후, 예상보다 좋은 평가를 받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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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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