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도 많고 탈도 많았던 미국 대통령 선거가 마침내 끝났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었지만 선거의 후유증은 쉽게 사그러들지 않고 있다. LA와 뉴욕, 시카고 등 대도시에서는 아직도 트럼프 당선인을 미 대통령으로 인정할 수 없다며 수천여명의 군중들이 반 트럼프 시위를 벌였으며 LA 통합교육구의 고교생들까지도 시위대열에 나섰다.
어차피 이번 선거는 국민들의 신뢰를 받을 만한 후보가 없어서 유권자들이 스트레스를 많이 받았다. 여론조사에서 내내 밀리던 트럼프의 당선으로 충격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다. 뉴욕타임스와 CNN 등 미 주요언론도 대부분 클린턴의 승리를 낙관했었기 때문에 그 충격은 더욱 컸다. 이들 언론의 클린턴에 치우진 편파적인 보도 자세도 사실상 문제점으로 지적됐다. 북가주 실리콘 밸리에서 일하는 한인 전문직 여성은 여성비하 발언을 일삼고 반 이민정서로 가득찬 트럼프가 당선된 후 스트레스를 심하게 받아 우울증 증세까지 생기고 몸이 많이 아프게 되었다. 현재 그녀는 캐나다로 이민 가는 것까지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다. 이번 선거에 참여한 전국의 한인 유권자들도 참으로 고민스러운 한 표를 행사했다.
아시아태평양계 시민참여기금이 선거 후 전국적으로 한인 300명을 포함한 2,391명의 아시아계 유권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투표성향 조사에서 한인 응답자의 65%가 클린턴에, 30%가 트럼프에 표를 찍은 것으로 집계됐다. 한인들의 클린턴 후보 지지율이 트럼프 후보 지지율보다 압도적으로 높게 나타난 이유는 트럼프의 반 이민정책, 한미자유무역협정(FTA) 재검토 주장, 한국 안보 무임승차론 등이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클린턴에 한 표를 행사한 한인 유권자들 중 상당수는 그러나 클린턴이 마냥 좋아서 찍었다기 보다는 이메일 스캔들 등으로 밝혀진 그녀의 부도덕성에도 불구하고 “문제 투성이의 트럼프보다는 그나마 낫겠지”하는 마음에서 한 표를 던진 경우가 많았다.
평생을 의사로 일해 온 한 한인 유권자는 이번 선거에서 대통령란에 아무런 표시도 하지 않고 공란으로 두었다. 오죽하면 기권을 한 것이다. 어느 후보가 되든 미국의 앞날에 그렇게 큰 도움이 될 것이라고 보지 않은 것이다. 어떤 한인 유권자는 자유당의 게리 존슨 후보에게 차라리 한 표를 주었다. 소중한 한 표를 사장시킬 수는 없었기 때문이다. 이 유권자가 존슨 후보가 대통령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지 않았음은 물론이다.
반면 30%의 한인들이 트럼프에 한 표를 행사한 이유는 오바마 정부의 동성애 허용과 낙태지원 등으로 미국의 도덕성이 훼손됐다고 여겼기 때문인 것으로 분석되고 있다. 진보주의자를 자처하는 40대의 한인 남성은 이번 선거에서 막판까지 고민을 거듭하다가 트럼프에 한 표를 주었다. 이메일 스캔들 당시 거짓말을 밥 먹듯이 하고 클린턴 재단 등으로 자신의 권력을 남용해 사익을 챙긴 클린턴이 집권했다가는 미국의 정치가 변화하기 힘들겠다는 판단을 했고 민주당 집권 8년동안 빈부의 격차가 심해진 데다가 흑인 대통령 하에서 오히려 인종갈등도 더 심해졌다는 점에 대해서 실망을 느꼈다고 한다.
백인들을 상대로 비지니스를 하고 있는 한 한인 남성은 3~4개월 전부터 미국인들의 여론이 트럼프 쪽으로 움직이고 있었음을 그들의 오고가는 대화를 통해 알 수 있었다고 한다. 자신과 속깊은 대화를 나눴던 상당수의 백인 중산층 남성들이 이민자들로 인해 자신들의 일자리가 줄었다고 여겼으며 당장 오바마케어 시행으로 매달 200~300달러 정도 오른 보험료로 인해 생활비에 상당한 부담을 느끼고 있었다는 것이다. 또한 정직함을 가장 중요한 가치로 삼는 미국사회에서 클린턴 후보가 이메일 스캔들과 관련해 계속 거짓말을 한 것이 결정적으로 등을 돌리게 된 계기가 됐다는 것이다.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후보시절 강경일변도 공약에서 한발 물러서서 불법이민자 추방, 오바마케어 폐지, 멕시코 국경 장벽건설 등 정책에서 후퇴하는 소식들이 들려오고 있다. 이러한 변화는 한편으로 치우친 공약에서 벗어나 조금씩 균형 있는 정책으로 나아가는 조짐을 보여주는 것으로 여겨져서 다행스럽게 여겨진다.
이번 대선을 통해 이념, 세대, 지역, 인종별로 사분오열 된 미국에서 트럼프 당선인에게 현재 필요한 것은 본인에게 반대표를 던졌던 국민까지 하나로 묶는 ‘통합의 리더십’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명심해야 할 사실은 트럼프에 한 표를 행사한 국민들이 그를 지지했다기보다는 공화당이 추구하는 가치를 지지했다는 사실이다. 한 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가는 미국의 4년 후가 어떻게 될지 벌써부터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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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흥률 특집2부장·부국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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