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 전 휴가 때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큰마음’먹고 혼자 한인타운의 극장을 찾았다. 이 나이에 ‘혼영’(혼자 영화 보기)에 도전한 것이다. 혼자 밥 먹고(혼밥) 술 먹고(혼술) 나홀로 즐기는 문화가 확산되고 있다지만 나 같은 50대 이상 중장년층에게 혼자 노는 것은 아직 어색하다. 티켓을 구매할 때부터 머쓱한 기분이었다. 왠지 극장에 혼자 온 사람이 나 밖에 없을 것이라는 생각에 미치니 청승맞기 까지 했다. 하지만 웬걸. 막상 극장에 들어서니 ‘혼영족’이 군데군데 눈에 띄는 것이 아닌가. 반갑기도 하고 고맙기도 하고…. 혼영의 첫 경험은 그리 나쁘지 않았다. 팝콘, 소다까지 곁들이며 오롯이 영화에 집중할 수 있었다고 할까. 영화가 끝난 후 직원에게 물어보니 주중 주말 관계없이 ‘혼영족’이 늘어나는 추세라고 설명했다.
한인들 사이에서 혼자 노는 방식은 아주 다양해지고 있다. 예전에는 생각지도 못했던 디즈니랜드나 매직마운틴 같은 놀이공원에 가서 혼자 실컷 어트랙션을 탄다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호텔 패키지를 예약해 나만의 럭서리함을 만끽하는 솔로도 보인다.
미국 회사에 다니는 2세 조카는 혼밥 혼술보다 한 차원 높다는 ‘혼행’(혼자 여행하기) 마니아다. 친구도 많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이지만 국내는 물론 해외여행까지도 주로 홀로 짐을 챙긴다. “온전한 나만의 시간을 갖기 위해”라는 게 이유다. 여럿이 가면 자기가 진짜 원하는 것을 포기하고 상대에 맞춰야 할 때가 많지만 혼행은 발길 닿는 대로 아니면 마음이 가는 데로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어 부담이 없다는 것이다.
‘혼놀족’하면 대개 혼자 사는 ‘싱글’만을 떠올리겠지만 꼭 그렇지도 않다. 한인타운에서 비즈니스를 운영하는 유모씨의 경우 주 1~2회 점심시간을 활용해 혼자 사우나를 찾는다. 그는 “매일 매일 거래처 사람과 고객을 대하다 보면 보통 피곤한 게 아닌데다 집에 들어간 후에는 가족과 어울려야 해서 혼자만의 시간은 상상할 수 없다”며 “일주일에 한두 시간만이라도 땀을 쭉 빼면서 피로도 풀고 생각도 정리하다 보면 그나마 숨통이 트인다”고 말한다. 일부 한인타운 사우나의 경우 유씨와 같이 혼자 오는 중년 남성 비율이 전체 고객의 30% 이상이다.
자녀를 둔 40대 가장 김모씨는 ‘혼운’(혼자 운동하기)과 ‘혼산’(혼자 산행하기)에 빠져 있다. 물론 가족이 있는 만큼 혼운은 퇴근 후, 혼산은 주말 아침이라는 시간적 제약이 있기는 하다. 그는 “운동을 싫어하는 아내 때문에 혼자 시작하게 됐는데 처음엔 심심하고 어색했지만 지금은 피트니스클럽이나 그리피스팍에서 땀을 흘리다 보면 복잡했던 머리도 맑아지고 몸까지 가벼워진다”며 “특히 잠시라도 혼자가 되어보니 가족과 주변 사람들을 오히려 찬찬히 되돌아보는 계기가 되더라”며 혼운과 혼산을 적극 추천했다. 이 뿐 아니다. 한인 커뮤니티 사이트에는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해외로 혼행을 다녀왔다는 미시족들의 여행담도 심심찮게 등장한다.
미주의 혼놀족들은 요즘 한국을 많이 부러워한다. 이곳과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입지가 넓어지고 당당히 그들만의 라이프스타일을 즐기는 흐름이 대세로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혼밥의 경우만 해도 칸막이가 쳐진 1인 식당이 지천이다. 심지어 요리 특성상 1인분은 주문하지 못했던 전골 전문점 같은 곳에서도 혼밥족들을 위해 별도의 메뉴와 조리기구들을 준비했다고 한다. 호텔과 리조트에서는 ‘나 혼자 간다’ 패키지를 내놓고 혼놀족들을 유혹한다.
그들에 대한 인식도 개선됐다. 한국의 한 대학신문이 재학생을 상대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는 응답자의 63%가 ‘혼밥을 한다’고 답했으며 혼밥족을 부정적으로 생각한다는 응답은 7%에 불과했다.
한인사회의 경우 싱글족은 갈수록 늘어나는 추세지만 아직 ‘혼놀’ 문화에 대한 인식이나 환경 은 크게 달라지지 않은 것 같다. 어떤 식당에서는 바쁜 시간대에 혼밥을 할라치면 눈치부터 보아야 하는 것이 현실이다. 궁상을 떤다는 핀잔을 주거나 친구가 없냐며 사교성에 의문을 가지는 것은 물론 자기혼자 편한 것만 추구하는 개인주의라는 삐딱한 시선도 감수해야 한다.
혼자 사는 것 혼자 즐기는 것이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다. 하지만 지금은 ‘혼자라서 고독하다’는 등식이 정답이 아닌 시대인 것만은 분명하다. 혼자인 사람도 많아졌지만 피곤한 세상에서 자발적으로 혼자이고 싶은 사람도 늘어나고 있다. 거스를 수 없는 대세라면 제대로 받아들이고 한인사회에도 바른 혼놀 문화가 정착되고 그에 걸맞은 환경이 조성되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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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광 특집2부장·부국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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