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미국 대통령 선거 결과는 정말 뜻밖이었다. 아니 사실 충격이었다. 여론조사 기관들의 발표와는 너무도 달랐다. 또한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인 나에게 음식세 주민투표 결과도 실망스러웠다. 쉽지 않을 것은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좋은 교육을 바라는 주민들의 호응을 일말 기대했었다. 이러한 선거 결과들을 보면서 여러 생각이 든다.
우선 얼마 전 내가 속해 있는 한 단체의 회원과 대화를 나눌 때였다. 백인계 이민자인 그의 트럼프 지지 이유에 깜짝 놀랐다. 이번에 트럼프가 당선되지 않으면 앞으로 “백인 남자”는 대통령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다. 물론 힐러리가 여자이기에 지지한 사람들도 있다. 그들에게는 힐러리가 첫 여성 후보라는 역사적 상징성이 더 중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힐러리가 여자였기에 반대했다면 그것은 단순히 성차별적 발상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그리고 “백인” 부분을 거론한 점에서는, 후보의 인종적 배경 자체가 지지 결정에 얼마나 중요했는지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었기에 씁쓸함을 금할 수가 없었다. 또한 힐러리도 백인인데 굳이 트럼프가 백인임을 거론한 것은 힐러리가 소수계 유권자들로부터 전폭 지지를 받고 있다는 점이 싫었다는 뜻일 것이다. 트럼프 지지자들 가운데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꽤 많지 않을까 생각하니 섬뜩 무서워졌다. 이런 게 바로 인종적 우월의식이 아닐까 생각되었다.
그리고 이번 결과를 학생들이 어떻게 받아들일까 하는 질문도 있다. 각종 미디어의 보도를 통해 어린 학생들도 이미 트럼프 당선자가 보여 주었던 막말과 무례한 행동에 대해 다분히 알고 있다. 만일 똑같은 언행을 우리 학생들이 학교에서 했다면 분명 무거운 징계를 받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런 후보자의 대통령 당선에 대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이게 바로 민주주의의 장점 아니면 맹점이라고 해야 하는 것인가? 그런데 그렇게 하고서도 대통령에 당선되는 현실이 답답하다.
그러면서 지난 주 하버드 대학 남자 축구 팀의 올해 시즌이 취소된 사건이 생각났다. 남자 선수들이 같은 학교 여자 선수들에 대해 성적인 모독을 하는 내용이 담긴 보고서를 작성해서 돌려보는 저질스러운 전통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남자 선수들은 사과를 했지만 학교 측은 그러한 일에 대해 그저 어린 대학생 남자 선수들이 할 수 있는 치기어린 장난쯤으로 치부하지 않고 축구 시즌 자체를 취소하는 단호한 결정을 내렸다. 하버드 대학의 이런 결정을 보면서 트럼프 당선자는 여성에 대한 모욕적 언행에 대해 왜 진심어린 사과를 하지 못했을까, 그리고 그가 이제 미국의 대통령이 된다는데 학생들에게 그런 행동에 대해 어떻게 설명을 해야 하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어쨌든 이제 선거는 끝났다. 내가 40여년 전에 미국으로 이민을 온 이래 지금까지 이렇게 치열했던 대통령 선거는 본 적이 없었다. 앨 고어와 조지 부시 사이의 대결이 연방 대법원 판결로까지 이어졌었을 때도 이런 치열함은 느끼지 못했다. 그러나 이제 패자도 결과에 승복했고 다행히 승자도 예전과 달리 포용적 언사를 보여주고 있다. 그리고 어제는 며칠 전까지 만해도 그렇게 서로를 비난했던 현직 대통령과 당선자가 백악관에서 회동을 하기도 했다.
총 득표수에서는 오히려 패자 보다 뒤진 승자가 이제 해야 할 일은 모든 국민들을 껴안고 가는 것이다. 공화, 민주 양당으로 나뉘는 지지자들 뿐 아니라, 미국에서 태어난 자나 이민자들 모두 다 말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인종적 차이나 편견도 뛰어 넘는 정책 뿐 아니라 대통령 자리에 걸맞는 품격도 보여 주어야 한다.
세계가 우리를 주목하고 있다. 고국의 동포들 가운데 93%가 힐러리를 지지 했었다는 것을 보면 트럼프 당선자가 얼마나 한국인들에게 인기 없었는지도 알 수 있다. 그 것은 비단 한국인들에게 뿐만 아니다. 아마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그런 시각으로 경계하고 있을 것이다. 세계 최강대국에서 최고의 힘을 갖고 있는 지위에 올랐다고 힘으로 군림하지 말고, 도덕적 권위로 미국과 자유 세계를 이끌어 나갈 수 있게 되기를 바란다. 그렇게 안 될 가능성은 생각하고 싶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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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일룡 변호사 페어팩스 카운티 교육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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