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대선역사에서 최대 이변 중 하나로 기록될 도널드 트럼프 승리의 의미는 다양하게 분석된다.
잊혀지고 무시당했다는 소외감에 시달려온 근로계층 분노의 폭발이기도 하고, 8년 민주당 통치에 염증을 느낀 민심의 변화 열망이기도 하다. 약점 많은 여성후보 힐러리 클린턴에 대한 반감이기도 하고, 미국의 내일을 이끌어 갈 차기 대통령이 검증도, 준비도 안 된 정치 초보라는 불안이기도 하다. 그리고, 미국은 여전히 ‘백인의 나라’임을 소수계에게 통보한 ‘성명’이기도 하다.
어느 때보다 분노도 깊고, 분열도 깊은 ‘미국의 오늘’이 8일 선거의 치열한 접전 속에서 그 민낯을 드러냈다.
흑인들의 외면으로 오바마의 ‘무지개 연합’은 빛을 잃었는데, 가장 두꺼운 유리천장을 깨고, 가장 높게 가장 길게 쌓겠다는 장벽을 무산시킬 것으로 예상된 여성과 이민표밭의 ‘힐러리 연합’은 제대로 형성조차 못한 채 역부족을 실감해야 했다.
반대로 백인들의 ‘트럼프 연합’은 존재감을 확실하게 과시했다. 이민의 급증과 기술혁명의 세계화로 자신들의 세계가 무너지고 있는 것이 두렵고 화나는 저학력 블루칼라 백인만이 아니라 트럼프의 숨은 지지층, 고학력 화이트칼라 백인들도 합세해 투표장의 반란을 주도했다.
시사해설 사이트 ‘복스’가 선정한 2016년 대선의 승자와 패자 명단은 불편할 만큼 색깔이 선명하다. 공화당 트럼프가 선두에 오른 승자 명단엔 백인 우월주의자가 포함되었고 민주당 힐러리의 뒤엔 비백인 미국인들이 패자로 꼽혔다.
반이민 트럼프 돌풍으로 일찍부터 예상되었던 이민표밭의 확대와 결집은 기대에 미치지 못했다. 왜 이민표밭은 트럼프 저지에 성공하지 못했을까.
데일리 비스트의 루벤 나바렛은 특히 라티노 표밭이 힐러리의 ‘방화벽’이 되지 못한 이유로 표의 이탈을 꼽는다. 2,700만 라티노 유권자 중 금년 신규등록자가 320만명에 달하는 등 반 트럼프 열기는 충분히 달아올라 있었다. 그러나 3분의 1은 트럼프를 찍은 것으로 집계되고 있다. 과거의 공화당 후보 밥 도울이나 밋 롬니 때보다 오히려 지지율이 증가했다.
이민사회가 성장하면서 정체성도 다양화된 것이다. 자신은 트럼프가 범죄자로 매도한 ‘불법이민’이 아닌 트럼프의 ‘위대한 미국’ 약속에 끌리는 ‘아메리칸’이라는 정체성을 강조하는 라티노들이 늘어났다는 지적이다. 앞으로 또 다른 중대한 이민 이슈가 부상해도 이민표밭의 완벽한 결집은 힘들다는 뜻이다. 한인을 비롯한 다른 이민사회도 다르지 않을 것이다.
이민사회 정치력의 후퇴를 시사하는 것은 아니다. 트럼프 당선확정 후 트위터와 텍스팅을 통해 많은 다짐들이 이어졌다 : “삶은 계속된다. 우리는 견딜 것이다. 이 폭풍은 지나간다. 오늘 좌절해도 내일엔 일어선다, 우리의 투쟁은 중단되지 않을 것이다…”
트럼프와 이민사회의 껄끄러운 관계는 계속될 것이다. 자신의 핵심표밭을 열광케 한 반이민을 핵심공약으로 내건 트럼프가 포괄적 이민개혁 추진으로 화해의 손길을 내밀 가능성은 희박하다. 그보다는 공언한대로 취임 첫날 최우선 과제로 오바마의 이민행정명령을 철회하고, 곧 이어 ‘추방군’ 인력을 몇 배 보강하여 이민사회 불안을 조성할 위험이 다분하다.
트럼프의 당선이 많은 우리들의 밤잠을 설치게 한 것도 다시 음지의 삶으로 내몰릴 20여만명 한인 서류미비자들, 특히 불안에 찬 ‘젊은 드리머’들의 그늘진 모습이다.
‘트럼프 후보의 미국’과 ‘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은 다를 것이라는 낙관론도 있기는 하다. 어제 새벽 승리연설을 통해 “모든 미국인들을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약속하며 한결 ‘대통령답게’ 보였던 트럼프는 “단합하여 함께 일할 것”을 호소했다. ‘모든 미국인’ 속에 우리도 포함되었다고 믿어도 될까.
막말 비하와 국정 무지의 선동가라는 극단적 후보의 모습 외에는 아직 잘 알지 못하는 트럼프를 믿기 힘들다면 견제와 균형의 원칙 위에 세워진 미국의 민주제도에 기대를 걸어볼 수 있다.
이제 새 연방정부는 미국의 공화당 천하가 될 것이다. 백악관과 상하 양원을 다 장악했고, 공화당 대통령의 연방대법관 임명으로 사법부도 보수화를 유지할 것이다. 이 같은 1당 독주체제에서 민주제도를 지켜가는 책임은 절대 파워를 장악한 공화당에 있다. 차기 대선 2020년은 그리 멀지 않았고 그 4년 동안 이민의 정치력은 부쩍 성장할 것이다.
경험부족에 독재 기질 다분한 충동적 새 대통령의 성공적 통치여부는 공화당의 적절한 균형과 견제에 달려있다. 모두가 틀렸다고 비난하는 방법으로 정상에 오른 트럼프가 궁지에 몰린 자신을 버렸던 공화당 주류의 조언을 들을지는 물론 알 수 없다.
그를 혐오하고 반대했던 47.7%의 국민을 어떻게 치유할 것인지, 그를 찍은 47.5%가 그토록 열망한 ‘변화’는 미국과 세계를 어디로 이끌고 갈 것인지…‘트럼프 대통령의 미국’에 혼란스러워하고 있는 것은 우리만이 아니다. 미국전체가 예상하지도, 경험하지도 못했던 미지의 영역으로 들어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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