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화와 쇄신 바람이 ‘아웃사이더 돌풍’으로…고립-보호주의 기조
▶ ‘역대 가장 추잡한 선거’ 비판 속 심각한 분열상 적나라하게 노출
7일 美미시간주 유세장의 도널드 트럼프 새 미국 대통령 당선인 [AP=연합뉴스 자료사진]
8일 열린 미국 대선이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의 당선으로 막을 내렸다.
지난해 3월 공화당 테드 크루즈(텍사스) 상원의원의 출마선언을 계기로 첫 신호탄을 쏴 올린 대선 레이스는 597일간의 대장정을 마무리하고 미 역사상 첫 '아웃사이더 대통령', '부동산 재벌 대통령'을 배출했다.
누구도 예상하지 못한 그야말로 대이변이다.
변화의 충격파 측면에서만 보면 8년 전 첫 흑인 대통령을 배출했을 때에 비해 절대 뒤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온다.
'파란', '이변'으로 불리는 이번 대선은 성난 민심의 현주소와 더불어 부끄러운 민낯도 그대로 드러냈다.
'아웃사이더' 돌풍으로 대변된 주류 기득권층에 대한 미국인들의 분노와 변화·개혁 열망, 경제위기와 맞물린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 기조, 선거 과정에서 트럼프 당선인과 민주당 힐러리 클린턴의 '치부' 등이 그것이다.
트럼프 당선인이 이들 현상과 문제점을 어떻게 국정에 반영하고 바로잡을지에 '트럼프정부'의 성패가 달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아웃사이더 열풍이 보여준 변화와 개혁 열망
이번 대선의 가장 큰 특징은 누가 뭐래도 아웃사이더 돌풍이다.
공화당에 전혀 기반이 없고 지지율도 고작 1∼2%에 불과했던 트럼프가 지난해 6월 대선 출마를 선언했을 당시만 해도 대부분 사람은 그를 비웃은 게 사실이다.
민주당에서도 지난해 4월 무소속 버니 샌더스(버몬트) 상원의원이 클린턴에게 도전장을 냈을 때 미 언론조차 가능성 '0'라며 관심을 두지 않았다.
하지만 워싱턴 정가와 기득권을 겨냥한 두 사람의 직설적인 비판과 개혁 요구에 성난 유권자들은 기다렸다는 듯 열광하면서 큰 지지를 보냈고, '찻잔 속에 태풍'으로 그칠 것 같았던 이들의 돌풍은 그야말로 초대형 태풍으로 부상해 초반부터 대선판을 뒤집어놓았다.
샌더스 의원이 2% 부족한 뒷심 탓에 경선에서 고배를 마셨지만, 트럼프 당선인은 당내 16명의 기라성 같은 제도권 주자들을 하나씩 꺾는 대이변을 연출한 데 이어 본선에서도 각종 악재에도 불가능할 것 같았던 기적적인 막판 대역전승을 이뤄냈다.
비주류 아웃사이더들이 일으킨 이 같은 돌풍의 원동력은 바로 기성 주류 정치권과 기득권층에 대한 유권자들의 실망과 분노다.
진보·보수를 막론하고 정치인과 언론, 월가 등 주류 기득권 지배층이 겉으로는 중산층과 약자보호를 외치면서 실제로는 자신들만의 리그를 만들어 자신들의 배만 불려왔다는 인식이 '트럼프 돌풍', '샌더스 돌풍'으로 나타난 것이다.
단순한 트럼프 열풍에서 이미 '트럼피즘'으로 굳어진 이 현상은 앞으로 미국사회를 바꿔나가는 새로운 원동력으로 작용할 것으로 보인다. 당장 트럼프 당선인은 취임 첫날부터 워싱턴 정가의 기득권과 기존 질서를 깨기 시작할 것으로 보인다.
공화당과 별개로 민주당도 정강에 시간당 연방 최저임금 7.25달러에서 15달러로 인상, 사회보장제도 확대, 고액 퇴직금 금지, 월가와 워싱턴 정가 간 회전문 인사 금지 등 '샌더스 공약'을 대거 반영해 놓은 상태다.
◇경제위기 속 고립주의와 보호무역 기조 뚜렷
이번 대선이 남긴 또 하나의 큰 흔적은 바로 '신(新) 고립주의'와 보호무역 기조다.
민주, 공화 양당 모두 경선과정에서부터 아웃사이더가 거센 돌풍을 일으키면서 미국의 기존 가치와는 다른 고립주의와 보호무역주의가 유권자들에게 어필하면서 대세를 형성했다.
특히 트럼프 당선인이 공화당 경선에서 승리하면서 이런 기조는 더욱 굳어졌다.
'미국 우선주의'를 표방하는 트럼프 당선인은 경제적으로나, 사회적으로나 변방으로 밀리고 있다는 위기감을 가진 백인 서민층의 표심을 잡기 위해 멕시코 국경지대에 불법 이민자 차단을 위한 거대한 장벽을 건설하고 미국 내 불법 이민자들을 취임 즉시 추방하겠다는 공약을 제시해 톡톡히 재미를 봤다.
또 점증하는 테러 위협 속에 모든 무슬림의 입국을 금지하겠다는 극단적 공약으로 강경 극우세력의 지지를 모았고 스스로 '역사상 최악의 무역협정'으로 규정한 북미자유무역협정(나프타)과 더불어 한미 자유무역협정(FTA) 재협상 카드로 백인 서민층 노동자들의 환심을 샀다.
또 동맹의 '안보 무임승차론'을 끊임없이 제기하면서 방위비 분담금을 대폭 증액하고 이에 응하지 않은 동맹에 대해서는 미군을 철수할 수도 있다고 공언해 왔고, 유엔에 내는 기후변화 분담금도 내지 않고 그 돈을 미국경제에 투입하겠다고 천명했다.
이 모든 것이 동맹과 민주주의를 보호하는 '세계 경찰'의 역할을 포기하고 미국 국민부터 챙기겠다는 미국 우선주의, 이른바 신고립주의에 기반한 것으로, 이는 비록 미국이 구축해 온 전후질서와 동맹체제의 근간을 부리째 뒤흔드는 것이지만 미국 유권자 사이에선 큰 호응을 얻었다.
지난 6월 캘리포니아주 유세장의 버니 샌더스 상원의원 [EPA=연합뉴스 자료사진]
트럼프 당선인과 달리 클린턴도 외교적으로 동맹강화에 초점을 맞추며 버락 오바마 행정부와 같은 '제한적 개입주의'를 표방하고 있지만, 이번 대선의 핵심 승부처였던 '러스트벨트'(Rust Belt·쇠락한 중서부 제조업지대)의 표심을 의식해 통상분야에서만큼은 보호무역 기조를 보였다.
국무장관 시절 찬성했던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에 대해서도 반대로 돌아섰다.
◇가장 추잡한 선거…부끄러운 민낯 노출
'여성과 남성', '주류 정치인과 아웃사이더' 등 미 정치역사상 전례 없는 대결 구도 만큼이나 미국 국민을 실망하게 한 부정적 사건들이 쏟아졌다.
민주, 공화 양당의 대선 경선 초반부터 샌더스 돌풍, 트럼프 돌풍이 거세게 몰아치며 개혁과 변화를 갈망하는 유권자들의 목소리가 분출했으나, 두 사람은 이런 열망에 아랑곳하지 않은 채 선거 내내 네거티브전으로 일관하며 진흙탕 싸움에만 몰두했다.
국무장관 시절 국가기밀을 개인 이메일로 주고받은 클린턴의 '이메일 스캔들', 저속한 표현으로 유부녀 경험을 자랑하는 트럼프 당선인의 11년 전 '음담패설 녹음파일', 클린턴재단의 외국인 기부금 부적절 수령 및 로비창구 전락 의혹, 법망을 교묘히 활용한 트럼프 당선인의 연방소득세 납세회피 의혹 등 하루가 멀다고 터져 나오는 각종 스캔들과 이를 둘러싼 서로의 저질 공격은 유권자들의 불신과 정치 혐오증만 더욱 키웠다.
두 사람이 연일 상대의 약점들을 고리 삼아 서로 '사기꾼이다', '대통령 자질이 없다'고 비판하고 이것이 각자 지지층에 그대로 확대 전파되면서 양측 지지자들은 이미 감정적으로 서로 하나가 될 수 없을 만큼 분열된 상태다.
클린턴을 '악마', '사기꾼', '범죄자'로 규정한 트럼프 당선인의 발언이나 트럼프를 '대체현실 속 인간', '음담패설 그 자체' 등으로 몰아세운 클린턴의 언급 모두 미국 국민을 극심한 분열과 갈등의 소용돌이로 몰아넣었다. 유세장 폭력 사태는 기본이고 트럼프 강경 지지자들 사이에선 '클린턴을 감옥으로', '유혈 쿠데타' 등의 막말이 쏟아져나오기도 했다.
미 일간 워싱턴포스트(WP)와 폴리티코를 비롯한 미국의 주요 언론이 이번 대선을 '역사상 가장 추잡한 선거', '가장 어두운 선거'라고 일갈했고, 의회전문지 더 힐은 앞서 클린턴과 트럼프 누가 되든 두 사람 모두 밀월 관계없이 '수사 압박' 속에 취임 첫해를 보낼 수도 있다고 지적했다.
새 정부의 가장 시급한 과제가 국민통합이지만 갈라질 대로 갈라진 민심을 하나로 아우를 수 있을지에 대해서는 회의적인 시각이 지배적이다.
실제 NBC 방송과 월스트리트저널(WSJ)의 여론조사(10월 3∼5일·1천282명)에서 응답자의 23%만이 새 대통령이 미국을 통합시킬 것이라고 답했을 뿐 64%는 미국을 오히려 더 분열시킬 것이라는 반응을 보였다.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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