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여전히 변함없으시군요… 흔히 주고받는 인사 중에 ‘한결같다’는 수식어는 듣는 사람을 기분 좋게 만든다. 물론 듣기에 따라서는 ‘왜 발전이 없느냐’ 하는 뜻으로도 들릴 수 있지만 살아갈수록 일상에서의 꾸준한 자기 관리가 얼마나 힘든 일인가를 절감하게 된다. 특히 생업이나 외관상의 모습도 중요하지만 의리를 지킨다든가 대인 관계에서의 감정을 한결같이 유지한다는 것은 정말 쉽지 않다.
애완동물을 기르다보면 동물들의 감정이 사람보다 훨씬 순수하고 변함없음을 알게된다. 싫으면 싫은 대로, 좋으면 좋은 대로, 동물들의 감정에는 위선이 없다. 사람들이 때로는 개취급하면서도 애완동물을 기르는 것은 이 때문이겠지만, 요즘 견공들의 위세가 이만저만이 아닌 것 같다. 이름하여 개들의 귀환이라고나할까, 변신이라고나할까. 얼마전 신문에서 지역구에 출마한 두 후보가 막상막하, 팽팽한 접전을 벌이고 있는데 한두 표라도 더 얻으려고 ‘동물(개) 옹호단체’ 의 후원을 얻기 위해 문자 그대로 ‘덕 파잇’을 벌이고 있다는 내용을 읽고 혼자 웃었다.
핵가족 시대에 사는 현대인은 너나 할 것 없이 집에 애완견(동물) 한 마리씩은 기르고 있다. 천성적으로 동물을 싫어하거나, 시간이 없는 몇몇 무관심족(?)들을 제외하고는 이제 반려견으로 키우는 견공의 인구만도 (SF 시의 경우)수십 만에 이르고 있다는 기사가 나오고 있는 실정이다. 물론 우리 집에도 개를 한 마리 기르고 있는데, 그게 다른 집과는 다르게 여간 사연이 많은 개가 아니다.
4살짜리 말티즈 족으로, 촐랑대기 그지 없는 놈인데 4년 전 우리집에 도착하기까지 사실 우리 집에도 엄청난 ‘덕 파잇’의 폭풍우가 한 차례 지나갔었다. 바로 동물을 싫어하는 아내의 천성 때문이었는데 동물 알러지(?)라고나할까, 개는 고사하고 병아리만 옆에 가도 징그럽다고 소리를 지르는 판에 개가 웬말? 정말 개꿈같은 소리가 아닐 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정말 우리집에 기적처럼 개 한마리가 등장하게 됐다. 학업에 대한 압박, 진로 등 때문에 싱숭생숭 마음을 다잡지 못하고 있는 딸아이에게 개를 한마리 사 주자는 처남의 의견 때문에 한 마리 들여온 것인데 물론 그 놈의 등장이 있기까지 우리가족이 겪은 개싸움(?)은 정말 생각하기 조차 지긋지긋하다.
아무튼 놈은 그 일을 아는지 모르는지 위풍당당하게 우리집에 등장해서 지금은 마치 황제처럼 군림하고 계시다. 처음엔 가까이 가면 발로차던 아내도 어느새 정이들어 요즘은 오히려 우리보고 개를 학대한다고 나무란다. 주인 닮아서 음악을 좋아하는 것(?)이 특성인데 (아마도 음악을 틀어놓고 잠들곤해서인지) 자기 방에 놀러갈 때 마다 삐삐 장남감을 물고와서는 연주해주곤한다. 말티즈 족치고는 눈탱이가 밤탱이가 되어 눈물을 질질흘리는 것이 안쓰러워 보이기도 하고, 꼬리치며 명랑해 하는 체 하는 것 같지만 어딘가 늘 고독해 보이는 것이 개의 숙명적인 모습이기도 하다.
멍하니 홀로 앉아있는 개는 무엇을 생각하고 있는 것일까? 아니 두고 온 고향은 어디일까?멍멍이 얘기(?)가 다소 길어졌는데 이번 주는 생상스의 히트작 ‘동물의 사육제’라는 음악을 들으며 동물의 세계로 한번 빠져들어가 보는 것은 어떨까? 클래식에는 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를 비롯 프로코피에프의 ‘피터와 울프’, 쇼팽의 ‘강아지 왈츠’같은 동물을 주제로한 몇몇 작품들이 전해지고 있는데 특히생상스의 ‘동물의 사육제’야 말로 재치와 위트 넘치는, 말그대로 음악에서의 동물의 카니발… 그 자체라고하겠다.
사실 이 작품은 생상스가 바그너파로부터 공격을 받고 칩거 중에 작곡했는데 동물들에 대한 묘사를 통해 반대파들을 조소한 작품이라고한다. 가장 유명한 백조는 첼로곡을 대표한다고할만큼 아름답지만 사자, 캥거루, 코끼리, 수족관 등은 음악만들어도 동물들이 연상될만큼 표현력이 탁월한 작품이다.
1886년첼리스트 샤를 르부크가 주최하는 ‘사육제의 최종일’ 컨서트를 위해 작곡됐는데 처음에는 피아노와 첼로, 플루트만 사용되었다. 생상스의 사후(1922년) 가브리엘 피에르네가 지휘하는 콜론느 콘서트 오케스트라가 관현악곡으로 편곡, 오늘날까지 알려지고 있다. 이벤트 목적으로 작곡된만큼 생상스의 생전에는 거의 연주되지 않았는데 1922년 오케스트라로 발표된 이후 의외로 주목을 받으며 동물 음악으로서는 ‘피터와 늑대’와 함께 동물의 정서가 짙게 배인, 클래식 중에서도 매우 독특한 작품으로 널리 사랑받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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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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