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터스’(POTUS)라는 약어가 있다. 미국 대통령을 지칭하는 말이다. President of The United States의 이니셜을 땄다. 백악관 보도자료 등에 대통령을 가리키는 용어로 등장하는 ‘코드 네임’이다. 백악관의 공식 약어 중에는 ‘플로터스’(FLOTUS)도 있다. Firtst Lady of The United States의 이니셜이니 대통령 부인을 뜻한다.
웹스터 사전에 따르면 ‘포터스’는 1800년대 말부터 등장했고, ‘플로터스’는 레이건 대통령 시절 백악관 경호팀이 부인 낸시 여사를 지칭하는 암호로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이들 용어를 알면 왜 버락 오바마 대통령과 미셸 오바마 여사의 트위터 계정이 각각 @POTUS와 @FLOTUS인지 이해할 수 있다.
한국의 역대 대통령들은 YS, DJ, MB 등 이름의 영문 이니셜 약칭으로 불렸다. 이는 코드 네임이라기보다는 일반인들도 다 아는 애칭에 가깝다. 또 청와대에서 대통령을 지칭하는 말로는 ‘VIP’나 ‘BH’(청와대를 뜻하는 블루 하우스의 약어)가 있다고 한다. 박근혜 대통령 취임 초기 청와대 출입기자들 사이에서는 ‘PP’(President Park)가 쓰이기도 했으나, 박 대통령이 이니셜로 불리는 것을 싫어해 사용금지령이 내려졌다는 후문도 있다.
대통령은 권위의 상징이다. 국가원수이자 군 통수권자로서 나라를 통치하는 행위는 이같은 권위에 기반하고 있다. 특히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그 권위가 국민이 투표를 통해 위임한 권력의 정당성과 신뢰성에서 나온다. ‘포터스’라는 약어에서는 미 합중국 대통령이라는 권위가 느껴진다. 또 그 권위의 뒤에는 철저한 프로토콜을 바탕으로 한 치의 오차도 없이 맞물려 돌아가는 백악관과 연방 정부의 시스템의 공고함이 뒷받침하고 있다. 이는 누구나 이해하고 공감하는 상식에 속한다.
그러나 이러한 상식을 철저히 파괴하는 사태가 모국에서 벌어지고 있다. 권위를 바탕으로 해야 할 대통령의 통치행위를 일개 개인이 쥐고 흔들었다는 이른바 ‘국정농단’ 논란은 충격을 넘어 참담하기까지 하다. ‘대통령 위에 최순실’이라는 헤드라인으로 압축된 이번 사태에 그간 현 정부에 비판적이었던 측은 말할 것도 없고, 박 대통령 지지층의 상당수도 할 말을 잃은 분위기다.
가장 황당한 것은 최씨의 ‘연설문 개입’ 정도의 단편적 사실을 넘어 국정 운영에서 대통령이 비선 실세들의 ‘꼭두각시’에 불과한 것 아니었냐는 의혹이 생길 정도의 정황들이 봇물 터지듯 쏟아져 나오고 있는 점이다. ‘무당의 신정정치’라느니 ‘대통령이 사교(邪敎)에 홀린 것’이라는 등의 진단이 난무한다. 최순실 의혹을 두고 국회에서 “봉건시대에도 있을 수 없는 이야기”라고 변명했던 대통령 비서실장의 말이 역설적으로 봉건시대보다도 못한 실상의 ‘비민주성’을 부각시킨 점이 더욱 씁쓸하다.
한국의 사태가 워낙 충격적이어서 그렇지, 이제 불과 열흘 정도밖에 남지 않은 미국 대선도 진정한 국가지도자의 됨됨이를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만드는 것은 마찬가지다. 막말과 여성 비하 및 성추문 의혹 등으로 자질 논란의 중심에 있는 도널드 트럼프 공화당 후보나 이메일 스캔들과 클린턴 재단 논란에서 자유롭지 않은 힐러리 클린턴 민주당 후보 모두 선거 결과가 어떻든 후유증이 만만치 않을 것임을 예고하고 있다.
최순실씨 태블릿 PC에 담겼다는 파일들의 존재가 이상하게도 트럼프의 ‘음담패설 녹음 파일’, 그리고 힐러리의 사설 이메일 서버의 존재와 묘하게 오버랩되는 것은 하도 어처구니없는 사태가 터져 나온 충격 때문인지도 모르겠다.
여권 인사들 사이에서조차 권위와 신뢰, 정당성을 잃은 권력은 더 이상 권력이 아니라는 지적이 나오고, “이제 누가 대통령의 말을 믿겠느냐”며 남은 임기 동안 ‘식물 정부’가 될 것이라는 예견이 난무하는 가운데, 걱정되는 것은 나라의 중심이 뿌리째 흔들리는 상황이다.
최순실 일가와 이른바 ‘비선 실세들’ 및 대통령 주변을 둘러싼 온갖 의혹들을 명명백백하게 가리는 철저한 진상 규명이 이같은 혼란을 수습하는 최우선 과제임 분명하지만, 이와 함께 흔들리는 민심을 잡아 세우고 중심을 잡아줄 진정한 리더가 필요한 때다. 그러나 지금 한국에서는 여야를 막론하고 이른바 대선 잠룡들 중에도 그런 인물이 좀처럼 보이지 않으니 답답하고도 답답하다.
<
김종하 부국장대우·사회부장>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