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몇 년간 공연된 LA 오페라 작품 중에서 최고를 꼽으라면 서슴없이 2013년의 ‘해변의 아인슈타인’(Einstein on the Beach)을 꼽겠다.
작곡가 필립 글래스와 연출가 로버트 윌슨이 콜래보레이션 한 이 작품은 1976년 초연됐을 때 기존오페라 형식을 완전히 깨버린 혁명적 작품으로 음악계에 엄청난 충격을 던져주었다.
전통 오페라와는 형식, 내용, 구성, 춤, 음악, 무대, 이미지가 너무나 달라서 보지 않은 사람에겐 아무리 설명해도 상상이 되지 않을 이 작품은 스토리도 없고 주인공도 없고 아인슈타인과도 별 관계가 없는 전위오페라다.
배우 2명과 어린이 1명, 16명의 혼성합창단으로 구성된 출연진이 번갈아 무대에 올라 의미 없는 단어와 이미지, 똑같은 음과 리듬의 반복을 거의 5시간이나 계속하고, 무대 한구석에는 아인슈타인으로 분장한 사람이 앉아서 계속 바이올린을 켠다.
3년전 LA 오페라 공연이 특별히 좋았던 건 제니퍼 고가 아인슈타인으로 나왔던 거였다. 여자 바이올리니스트로서 처음 아인슈타인 역을 맡은 그는 끝없이 반복되는 미니멀리즘 선율을 마치 고전음악처럼 아름답고 수려하게, 섬세하고 안정적으로 연주해 극찬 받았다.
인터미션 없이 4시간30분, 관객들은 공연 도중 마음대로 나갔다 와도 좋다고 했지만 매혹적이고 경이로운 이미지들 때문에 모든 장면에서 단 한 순간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 최면적인 미니멀리즘 음악, 시간과 공간을 초월한 무대연출, 루신다 차일즈 안무의 추상무용이 기묘하게 어우러진 이 오페라를 보면서 나는 태어나서 한번도 가본 적이 없는 미지의 세계, 머나먼 우주로 환상 여행을 다녀온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여행을 꼭 한번 다시 하고 싶다는 열망이 지금껏 사라지지 않고 있다.
안타까운 것은 ‘해변의 아인슈타인’은 자주 공연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스펙터클 하고 특수 테크놀러지가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무대에 올리기가 쉽지 않은 이 오페라는 초연 후 지난 40년 동안 세차례 제작돼 단지 79회 공연됐을 뿐이다. 오리지널 제작팀이 직접 만든 ‘해변의 아인슈타인’을 LA에서 다시 볼 수 있는 가능성은 앞으로 거의 없는 것으로 보인다.
그런데 그 아쉬움을 조금이나마 달래줄 공연이 다음 달 도로시 챈들러 파빌리온을 찾아온다. 필립 글래스의 또 다른 걸작 오페라 ‘아크나텐’(Akhnaten)이 그것이다.
미니멀리즘 음악의 대표적 작곡가인 필립 글래스(79^Philip Glass)는 20여편의 오페라를 썼는데 그중 초기의 3개작이 ‘해변의 아인슈타인’(1976), ‘사티야그라하’(Satyagraha, 1979), ‘아크나텐’(1983)이다.
‘초상오페라 3부작’이라고 불리는 이 세 작품은 무력이 아닌 사상의 힘으로 세상을 변화시킨 사람들에 관한 것으로 천재과학자 아인슈타인, 비폭력주의자 간디, 그리고 인류 최초의 종교혁명을 일으킨 고대 파라오 아케나톤이 각각 주인공이다.
아크나텐은 기원전 14세기 이집트에서 다신 숭배를 금지하고 태양신 아텐을 유일신으로 선포함으로써 세계최초의 일신교를 시작했던 파라오다. 그의 아내는 미녀 왕비로 유명한 네페르티티이고, 후에 그의 왕위를 투탕카멘이 계승한다.
수도까지 옮기며 실시했던 그의 종교개혁은 그러나 신관과 백성들로부터 지지를 얻지 못해 결국 실패로 끝난다. 그러나 개혁의 결과로 고대 인류사에서 종교와 정치, 예술의 진로를 바꿔놓은 위대한 족적을 남긴 인물로 평가된다.
11월5~27일 LA 오페라가 6회 공연하는 이 오페라가 특별히 기대되는 것은 유명 연출가 펠림 맥더못(Phelim McDermott)이 새로 만든 프로덕션이라는 점, 젊은 천재 작곡가로 주목받고 있는 매튜 오코인(Matthew Aucoin)이 지휘한다는 점, 바리톤 윤기훈이 미래의 파라오 호렘하브 역으로, 소프라노 박소영이 아크나텐의 여섯 딸 중 하나로 출연한다는 것, 의상과 세트 등 비주얼 효과가 대단하다는 이야기 등이다.
언제 ‘사티야그라하’도 볼 수 있는 날이 오기를 기대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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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숙희 부국장·특집 1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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