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나라마다 치료정책 달라 혼선
▶ 위암의 주요 원인임에도 위궤양·십이지장궤양 환자, 소수에만 제균 보험급여 일본선 “무조건 없애라
# 김모(43)씨는 최근 위내시경 위점막 조직검사 결과,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Helicobacter pylori)이 발견됐다. 김씨는 헬리코박터균이 위암을 일으키는 세균이라고 알고 있어 건강검진을 시행한 대학병원에 균을 제거해달라고 했지만 거절당했다. 해당 병원 소화기내과 교수가 “위궤양 등 위에 문제가 없는 사람에게 헬리코박터균을 제균하는 것은 불법(임의 비급여)”이라고 했다. 김씨는 비용을 자신이 부담하겠다는 데도 헬리코박터균을 없앨 수 없는 현실에 황당하기까지 했다.
헬리코박터균 꼭 없애야 하나?
전 국민(5,100만명) 가운데 절반 가량(2,500만명)이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돼 있는 상황에서 어떤 환자일 경우에 헬리코박터균을 없애야 하는지 논란거리다. 현재로선 헬리코박터균을 없애는 것이 꼭 필요하다는 확실한 근거는 없기 때문이다. 헬리코박터균을 치료해도 위암이 없어지지 않는다. 하지만 헬리코박터균을 없애면 십이지장궤양이 없고 위궤양도 재발률이 크게 줄어든다. 위림프종은 헬리코박터균을 없애면 치료효과가 훨씬 좋아진다.
건강보험심사평가원은 이에 따라 ①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된 위궤양이나 십이지장궤양, ②위 말트림프종(변연부 B세포 림프종), ③내시경절제술로 제거한 조기 위암일 때만 헬리코박터균을 없애는 치료를 보험급여로 인정하고 하고 있다.
하지만 국민 절반 가량이 몸 속에 위암 유발인자인 헬리코박터균을 보유하고 있는 상황에서 일부 극소수 환자만 제균을 보험급여로 인정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그래서 대한상부위장관ㆍ헬리코박터학회는 ①만성 특발성 혈소판 감소성 자반증을 가진 경우, ②위암 가족력이 있는 경우, ③기능성 소화불량증이 있거나, ④소화성 궤양 병력이 있는 환자가 장기간 저용량 아스피린을 먹는 경우에도 헬리코박터균을 없애는 치료를 확대할 수 있도록 하자는 정부 건의안을 최근 확정했다.
김재준 학회 회장(삼성서울병원 위암센터장)은 “조만간 이 같은 내용의 건의안을 보건당국에 제출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학회는 다만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된 모든 환자에서 위암이 발병되거나 소화기 관련 증상이 유발되는 것이 아니어서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된 모든 환자를 치료해야 할 필요는 없다는 입장이다.
우리나라처럼 위암 발병률이 높은 일본은 정부에서 비용을 부담하면서 ‘감염자는 무조건 헬리코박터균을 없애라’고 하고 있다. 헬리코박터균 감염자가 많지 않은 유럽도 헬리코박터균 제균을 각 정부가 부담하고 있다.
만성 위염+헬리코박터균=위암 위험
헬리콥터 모양처럼 생겼다고 해 붙여진 헬리코박터균은 주로 위장점막에 서식하며 상피세포를 손상시킨다. 증식 속도가 느리지만 움직임이 빨라 염증을 일으켜 위염, 위궤양, 십이지장 궤양, 위선암, 위림프종 등을 유발한다.
정훈용 서울아산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위염환자가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됐다면 위암 발병률이 3~5배 높아진다”고 했다. 정 교수는 “서양에 비해 동아시아에서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됐을 때 위암 발병률이 높은데, 이는 동아시아지역의 헬리코박터균이 갖는 독성인자(Cag A)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헬리코박터균이 발견된 것은 1983년. 호주의 로빈 워렌과 베리 마셜(2005년 노벨의학상 수상)이 사람의 위에서 최초로 나사 모양의 헬리코박터균을 배양됐다. 이후 실험을 통해 헬리코박터균이 위의 산성 환경에 적응해 살 수 있으며, 항생제로 치료했을 때 위궤양과 십이지장궤양이 함께 치료된다는 사실이 확인됐다.
이를 근거로 미국 국립보건원(NIH)은 위궤양에서 헬리코박터균 감염증이 확인되면 항생제를 처방해 치료를 권장한다고 발표했다.
국제암연구기관(IARC)에서는 동물모델 실험결과와 역학 연구결과를 바탕으로 헬리코박터균이 위암의 주요 원인이라고 공표했다. 세계보건기구(WHO)는 1994년 헬리코박터균을 주요 발암인자로 규정했다.
헬리코박터균은 주로 어릴 때 감염되며 가족간 감염처럼 오랜 기간 접촉하면서 사람 간 입을 통해 전염된다.
심기남 이대목동병원 소화기내과 교수는 “감염 경로는 아직 확실히 밝혀지지 않았지만 구강을 통해 감염되고 있다고 추정하고 있다”며 “특히 어릴 때 엄마와 자녀간 전파가 주요한 경로로 보고 있다”고 했다. 심 교수는 “엄마가 씹어서 아이에게 먹여주는 것, 도시가 아닌 거주환경, 어린 시절 한 방을 쓰는 가족 수가 많은 것 등이 감염의 위험요소로 꼽힌다”고 덧붙였다.
헬리코박터균에 감염 여부는 내시경을 이용하는 방법(위점막 조직검사, 신속요소분해효소검사, 배양검사)과 다른 방법(요소호기검사, 혈액 내 항체검사, 대변 내 항원검사)으로 알아낼 수 있다. 두 가지 항생제와 한 가지 위산분비 억제제를 병합해 1주간 치료하면 80% 정도 균을 치료할 수 있다. 1차 치료에서 균이 없어지지 않으면 병합요법을 바꿔 다시 치료를 한다.
유산균(프로바이오틱스)을 마시면 헬리코박터균을 없애는 데 도움이 된다는 주장이 있지만 별 차이가 없다는 주장과 팽팽히 맞서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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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대익 의학전문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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