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을 사는 현대인으로서, 급격하게 변화하는 사회에 적응하기가 참으로 버거울 때가 많다.
동성애자나 성 소수자에 대한 신학적, 사회 윤리적 논란이 많지만, 이런 논란을 떠나서 실제로 성 소수자들이 겪는 아픔을 주위에서 보는 것은 어렵지 않다.
실제로 나에게 성 소수자를 자녀로 둔 부모의 아픔과 고통이 전해져 온 적이 있다. 한 어머니는 아들이 자살을 하고 난 후 ‘단 하루 만이라도 나는 내 자식을 행복하게 해 주지 못하였다’고 통곡했다. 독실한 기독교 집안에서 이런 일이 발생하니, 엄마는 아이를 기도원으로, 정신 병동으로 치료한다고 데리고 다니고, 집안에 누구라도 알게 될까 쉬쉬하면서 부끄럽게 여겼다는 것이다. 아들 역시 도무지 자신의 힘으로, 기도의 힘으로도 되지 않는 자신을 혐오하던 가운데, 부모들 또한 꺼리는 것을 알게 된 아들은 자살이라는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다.
아직 그 원인을 정확하게 가린다고 말 할 수 없다. 천성적으로 호르몬 때문에 그렇다고 보는 설이 유력하지만, 사회적 퇴폐적인 문화에서 발생 할 수도 있다. 근본주의적, 문자주의적 기독교 입장에서는 이를 죄로 보고 성 소수자 들을 죄인으로 단정 짓는다. 그럴 수도 있다. 하지만, 왜 성 소수자만의 문제인가? 사회 전반에 걸쳐있는 성 폭력, 성 매매, 성 추행, 성 중독 등 이성 간에 이루어지는 이런 행위들은 눈 감을 수 있다는 말인가? 이성 간이든, 동성 간이든, 성을 무기나 쾌락의 도구로 삼는 성적 타락을 주시해야 한다. 특별히 강자가 약자를 무시하는데 기인하는 성폭력은 끔찍한 죄임에 틀림없다.
성서는 문자적인 해석 보다는 예수 중심의 복음 정신으로 해석하는 것이 옳다고 생각한다. 요한복음 5장에 “너희는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연구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언하는 것이니라. 그러나 너희가 영생을 얻기 위하여 내게 오기를 원하지 아니하는 도다”라고 말씀하신다. 예수님은 지금 이 시대에 함께 호흡하시며 일하는 자신에게 나오라고 촉구하신다. 그럼으로 성서를 옛 시대의 문자로 화석화 시켜서는 안 될 것이다.
우리가 먼저 할 일은 성문화를 정화시키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쾌락에 빠져 성을 하나의 도구로 여기는 성문화를 정화하여야 한다. 사랑하는 사람과의 관계에서 육체가 하나 되는 거룩하고도 아름다운 문화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 그럼으로써 하느님의 형상대로 창조된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느님 앞에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확인하는 관계가 되어야 한다.
구약 시대 나병환자들은 하느님의 저주였다. 가족과 사회에서 격리되었다. 얼마 전까지 우리 사회는 정신 지체아들을 숨기고 드러내지 않았다. 언제까지 성 소수자도 그렇게 취급할 것인가? 하느님은 그들도 사랑하며 그들과 함께 하신다. 그렇다면 하느님이 계시는 곳에 우리도 함께 있어야 하지 않을까?
그들을 완전히 이해하지 못한다. 다 알 수도 없다. 소수자이기 때문에 받는 불편함과 수치스러움, 자기혐오, 이런 것들을 피부로 느끼지도 못한다. 그러니 판단과 정죄와 심판은 하느님께 돌리고, 나와 다른 형제와 자매로 받아들이는 자세가 필요하지 않겠는가? 한 번쯤 자살한 아들 앞에서 통곡하는 엄마의 친구가 되어 줄 순 없을까? 나와 다른 사람, 나와 다른 성향의 사람들로서…. 다름을 소중하게 이해하고 받아들이는 것이 중요하다. 나와 다른 그들도 하느님이 사랑하는 당신의 자녀들이기 때문이다.
세계 성공회는 이 땅에 하느님 나라를 세우기 위해, 제자를 삼고, 섬김의 공동체가 되어, 사회 정의를 이루며, 지구 환경을 돌보며 보존하는 5가지 비전을 공유하고 있다. 이 중에 사회 정의를 이루는 비전은 사회의 모든 약자와 소외 된 자들과 함께 고통을 나누고, 그들의 문제를 제도적으로 해결하는 일이다. 그러므로 사회의 불의, 불평등에 대해 정의를 주장한다.
10월 중에 우리 교회는 성 소수자들에게 문을 개방하기로 하였다. 그들이 세미나를 열기 위해 장소를 찾던 중 문의를 해 와서 기쁘게 수용하였다. 그들의 아픔과 외로움과 고통을 함께 나누려는 교회 지도자들의 결정이 자랑스럽다. 아직 이들은 사회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지지 받지 못한 소외된 자들이지만, “기뻐하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기뻐해 주고 우는 사람이 있으면 함께 울어주십시오”라는 성경의 말씀을 실천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
한성규 신부 성공회 성 십자가교회>
댓글 안에 당신의 성숙함도 담아 주세요.
'오늘의 한마디'는 기사에 대하여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남의 생각을 들으며 서로 다양한 의견을 나누는 공간입니다. 그러나 간혹 불건전한 내용을 올리시는 분들이 계셔서 건전한 인터넷문화 정착을 위해 아래와 같은 운영원칙을 적용합니다.
자체 모니터링을 통해 아래에 해당하는 내용이 포함된 댓글이 발견되면 예고없이 삭제 조치를 하겠습니다.
불건전한 댓글을 올리거나, 이름에 비속어 및 상대방의 불쾌감을 주는 단어를 사용, 유명인 또는 특정 일반인을 사칭하는 경우 이용에 대한 차단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 차단될 경우, 일주일간 댓글을 달수 없게 됩니다.
명예훼손, 개인정보 유출, 욕설 등 법률에 위반되는 댓글은 관계 법령에 의거 민형사상 처벌을 받을 수 있으니 이용에 주의를 부탁드립니다.
Close
x