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명체는 시작과 끝이 있어서 생명체라고 부른다. 생명이 끝나는 시점인 죽음은 지극히 자연적인 현상이며 그다지 특별할 것이 없다. 동물들 중에서 몇몇은 죽음을 슬퍼한다고 알려져 있다. 특히 인간과 유전적으로 가장 가까운 침팬지의 경우 죽은 새끼를 계속 등에 얹고 다니는 경우도 있으며, 죽은 엄마 주변을 떠나지 않고 먹지도 않고 지내다가 뒤따라 죽은 경우도 관찰되었다. 그렇지만 대부분의 죽음은 엄청난 일이 아니다.
그에 비해 인간은 죽음을 매우 각별히 여기고 두려워한다. 죽은 이의 몸, 주검을 특별하게 취급한다. 죽음을 인지하고 슬퍼하는 것처럼 보이는 동물들도 일단 죽은 몸에 대해서는 그다지 특별하게 대하지 않는다. 주검에 대해 각별한 의미를 부여하고, 주검에 대한 태도를 매우 중요하게 여기는 점에서 인간은 특별하다.
인간은 언제부터 주검을 알고 특별하게 대하기 시작했을까? 인류 계통의 기원은 약 5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500만 년 전부터 주검을 특별하게 대하지는 않았다. 유명한 고인류 화석 ‘루시’의 경우 물가에서 죽은 뒤 물속에서 파묻혔기 때문에 뼈가 흐트러지지 않고 제법 상당수가 화석이 되었다. 루시 뿐만 아니고 대부분의 고인류 화석은 객사하고 횡사한 상태에서 화석이 되었다고 봐도 된다.
주검에 대해 특별한 취급을 하게 된 역사는 그렇게 길지 않다. 그리고 고고학적으로 알아볼 수 있다. 주검에 대해 특별한 처리를 했다는 것은 살아있는 상태와 구분하여 죽은 상태의 몸에 특별한 의미를 부여했다는 뜻이다.
역할이나 자격에 중요한 변화가 있을 때 인간은 중간 상태를 두어서 준비를 한다. 그 중간 상태는 이전 차지했던 지위도, 그 이후에 차지할 지위도 아닌 그 자체로서 중요한 과도기이다. 예를 들어, 삶이 그렇다. 생물학적인 삶이 시작하는 순간은 태어나는 시점이다. 그렇지만 사회-문화적으로 새 생명이라고 인정하는 순간은 문화마다 다르다. 전통적인 한국 문화에서는 돌이었다. 돌잔치를 치러야 비로소 새 생명이 시작된다고 인정받았다. 그 전에는 태아도 아니고 신생아도 아닌 과도기다.
성인이 되는 시점도 그랬다. 현대사회처럼 18세라든지 법적으로 정해진 연수를 지난 생일에 성인이 되는 것이 아니었다. 성인식은 성인이 되는 과정의 한 순간일 뿐이었다. 많은 민족지 집단은 과도기를 지나고 있는 소년들을 외딴 곳으로 데리고 가서 격리된 상태에서 시간을 보내게 한다. 그 동안 많은 일들을 겪게 해서 어른이 되는 준비를 시킨다.
말할 것도 없이 죽음은 가장 큰 지위의 변화이다. 자신의 삶이 언제 어떻게 시작할지 궁금해 하고 기다리거나 두려워한 사람은 없다. 그러나 자신의 죽음은 언제 어떻게 일어날지 궁금해 하고 기다리고, 두려워한다. 가장 큰 감정을 가지고 기다리는 죽음에 가장 정교한 의식으로 가득 찬 과도기가 뒤따르는 것은 어찌 보면 당연하다.
사망 진단서에 기록되는 몇 날 몇 시 몇 분이라는 순간으로 삶과 죽음이 깨끗이 갈라지지 않는다. 전통 문화에서는 숨이 끊어지는 순간 죽은 자가 되지 않는다. 죽은 순간부터 과도기를 거쳐서 죽은 자로의 지위 전환이 이루어진다. 이렇듯 이승과 저승의 사이에서 머무는 과도기는 수많은 문화에서 보인다.
주검을 정성스럽게 다듬어서 별도로 마련한 공간에 둔다. 그 공간이 과도기의 공간이라면 1-2년 후에 다시 꺼내어 손질한 다음 영원히 안식할 공간에 둔다. 주검이 놓여질 공간은 땅을 파내고, 파낸 바닥에 돌을 깔거나 회칠을 해서 영역을 구분하고, 그 위에 주검을 놓거나, 주검이 들어 있는 관을 놓는다.
관 안에는 죽은 자가 살아 있는 동안 함께 했던 용품들을 놓거나, 주검을 위해 특별히 마련한 용품들을 놓는다. 함께 했던 사람들을 놓는 경우도 있다. 순장이 그렇다. 500만년도 쉬이 넘는 인류의 역사 속에서 이렇게 주검을 특별하게 다루기 시작한 것은 네안데르탈인 정도부터다. 10만 년이 채 되지 않는다.
죽음이 인간에게 특별하고 주검이 인간에게 특별한 이유는 우리도 죽을 것을 알고 두려워하기 때문이다. 주검을 대하는 태도는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며 장례식은 죽은 자를 위한 것이 아니다. 주검을 소중히 다루고 장례식을 굳이 치르는 이유는 앞으로 다가올 죽는 날을 생각하는 우리를 보듬고 함께 살 수 있도록 하기 위함이다. 죽음을 알게 된 만물의 영장인 우리는 주검을 다루면서 죽음을 조금이라도 맞이할 수 있는 용기를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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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상희/ UC 리버사이드 인류학과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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