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음 주 대선후보 첫 토론의 가장 흥미로운 관전 포인트는 “어떤 도널드 트럼프가 나타날까”다. ‘대통령답게’ 보이려는 절제된 트럼프일까? 여전한 막말의 선동적 트럼프일까?
막상막하의 지지율로 치열한 접전이 계속된다면 절제된 트럼프를, 힐러리 클린턴의 반등세가 강해진다면 선동적 트럼프를 토론에서 볼 수 있을 것이라고 토론전문가들은 예상한다.
민주당 대선후보 힐러리는 이번 주 유세일정을 최소한으로 줄이고 26일 공화당 대선후보와의 첫 맞대결이 될 90분간 토론 대비에 몰두하고 있다. 순식간에 증발해버린 지지율 우세 회복의 모멘텀이 될 수 있는 이번 토론의 승리가 절실해진데다 예측불허 트럼프는 토론경험 풍부한 힐러리에게도 새로운 도전이다. 공격수위 조절이나 기본예의와는 거리가 먼 트럼프와의 싸움인데 이메일 스캔들로부터 남편의 불륜, 자신의 건강까지 원색적 공격의 대상이 될 불편한 주제도 너무나 많다.
주요정책과 트럼프의 입장을 정리한 두터운 브리핑북을 탐독하고 토론전문가와 심리학자까지 초빙한 대책회의를 거듭하며 철저하게 준비하는 힐러리의 전략은 크게 두 가지다. 트럼프의 자질부족 증명과 힐러리 자신의 긍정적 이미지 회복이다.
한 명도 아닌, 두 명의 트럼프에 대한 대응책을 세워야 하니 두 배로 일이 많다. 트럼프의 대역들을 상대로 모의 토론을 진행하고 지난 공화 경선의 동영상도 꼼꼼히 분석한다. 무엇이 트럼프를 자극해 그를 폭발하게 하는가 - 통제 불능의 불안정한 모습을 스스로 드러내는 자살골을 유도하기 위해선 그의 취약점을 파악해야 한다.
대선후보 토론이 당락에 지대한 영향을 끼친 사례는 드물다고 미 선거역사 학자들은 지적한다. 그러나 금년은 좀 다르다는 것도 인정한다. 무엇이든 변수가 될 수 있는 너무 치열한 접전이기도 하지만 더 큰 이유는 트럼프다. 미 정치에선 전례 없는 ‘도널드 트럼프’라는 새로운 현상이 토론을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는 생존경쟁인 ‘리얼리티 쇼’처럼 이끌고 갈 수 있어서다.
그 어느 때보다 엔터테인먼트 효과가 높아 미 인구의 3분의1이 TV 앞에 모여들 것으로 추산된다. 1억 명이 관전할 최대의 ‘정치 쇼’인만큼 양 진영의 준비작전도 뜨겁다. 목표가 다르니 전략도, 스타일도 대조적이다.
힐러리가 ‘트럼프 저지’를 넘어 자신의 이미지 회복을 궁극적 목표로 삼는다면 트럼프의 목표는 ‘대통령답게’가 되어야 한다. 힐러리 때리기나 구체적 정책에 대한 지식의 유무를 뛰어 넘어 “아, 트럼프에게도 대통령 자질이 있네”라는 느낌을 줄 수 있어야 한다.
힐러리와 달리 트럼프는 집중 스터디를 선호하지 않는다. “지나친 준비는 위험하다. 대본대로 읽는 가짜처럼 보일 수 있다”면서 모의토론도 싫어한다. 그렇다고 전략부재는 절대 아니다.
그도 트럼프식의 철저한 대비에 돌입했다. 폭넓게 조언을 구하는 한편, 토론방식이 힐러리에 유리하게 “조작되었다”며 자신이 밀릴 경우의 안전망도 깔아놓았고, “힐러리가 또 하루를 쉬네, 휴식이 필요할 거야. 잘자요, 힐러리 - 토론에서 봅시다!”라고 트윗을 날리며 상대를 약 올리듯 찔러보기도 한다.
정석대로 품위를 지키면서도 강력하게 대응해야 할 힐러리의 부담이 더 커 보이긴 하지만 트럼프의 토론환경도 어렵긴 마찬가지다. 여러 후보들이 북적댔던 경선의 토론과는 달리 1대1의 대결이다. 이슈토론이 전개되면서 그의 국정 무지가 민망하게 드러날 위험이 높아진 것이다.
전투의 느낌이 강한 대선후보 토론 승패의 관건은 ‘실수’다. 가장 치명적 토론 실수로 기록된 불운의 후보는 1976년 무명의 지미카터와 맞섰던 현직 공화당 대통령 제럴드 포드였다.
소련이 동유럽을 압제하면서 폴란드에만 3개 사단을 주둔시키고 있을 때였다. 그런데 현직 대통령이 “동유럽은 소련의 지배하에 있지 않다…폴란드인들은 소련의 지배를 받고 있다고 생각하지 않을 것으로 본다”고 답한 것이다. 다음날 신문들이 대서특필하고도 며칠이 지나서야 포드는 “동유럽에 대한 소련의 지배를 미국이 허용하지 않겠다”는 의미였다고 늑장 해명을 했지만 이미 치명타는 가해진 후였다. 트럼프가 참고할 사례다.
‘결정적 한방’이 아닌 사소한 몸짓의 파장도 길다. 빌 클린턴 및 로스 페로와의 3자 토론에서 지루한 듯 시계를 흘끔거리던 아버지 부시 대통령의 모습은 여러 사람의 눈살을 찌푸리게 했고, 자타가 공인하는 박학다식의 앨 고어가 무지한 조지 부시를 비웃듯 내쉰 한숨은 거센 비난을 받았다. 힐러리가 주의해야할 부분이다.
양 진영의 공통전략도 있다. 상대를 추켜세우며 자기후보에 대한 기대치 낮추기다. 트럼프 진영은 40여 차례나 후보토론에 참가했던 힐러리의 풍부한 경험을 강조하고 힐러리 진영은 경선에서 16명을 패배시킨 리얼리티 쇼 스타의 TV 경험을 지적하며 ‘무서운 적수’라고 평가한다. 상대방이 낮은 기대치 덕에 승리한 듯 보일까 경계하는 것이다.
트럼프의 승리 기준이 ‘대통령다운’ 이미지 각인이라면, 힐러리는 유권자들이 자신을 좋아하도록 까지는 못해도 “트럼프 대통령은 너무 겁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정도로도 성공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토론은 상대를 죽여야 내가 살아남는 필사적인 ‘배틀 로얄’ 게임에 비유되기도 하지만 첫 토론이 전부는 아니다. 포드가 치명적 실수를 한 것도 두 번째 토론에서였다. 다음 주 첫 대결이후에도 2번의 토론과 43일이라는 ‘긴’ 유세기간이 아직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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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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