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교과서 국정화 논란으로 시작된 역사 뒤집기가 건국절 제정 입법화로 도(度)를 넘고 있다. 한민족의 100년에 걸친 근현대사는 한 세기가 넘었는데 아직도 시련과 극복의 연속이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와 건국절 제정의 최근 논란 이면에는 이승만 정부의 책임이 무엇보다 크다 아니할 수 없다. 친일 반민족 행위자에 대한 청산을 하지 못하여 나라의 기강을 세우지 못한 점이 그러하며, 장기집권욕에 집착하여 의회정치를 파괴하고 독재정치로 일관했다는 점이 또한 그러하다. 이 두 가지의 결정적인 실정은 기득권 친일세력의 힘을 키워주었고 종말에는 4.19 혁명을 불러왔기 때문이다.
일본제국주의 침략에 협력하고 앞장선 친일파 후손들과 최소한의 기본권 마저 부정했던 독재정권 후손들이 이제는 공개적으로 임시정부의 정통성을 부정하고 대한민국 헌법에 반기를 들고 있다 한다. 이 모든 도발은 파시즘의 악취를 풍기는 뉴라이트 계열의 ‘한국사학회’ 학자들이 이론적 논리를 제공하고 맥을 같이 한 친일·독재 후손들이 동조함으로써 조직적으로 진행되고 있는 듯 한 양상이다. 그들이 국부로 내세우고자 하는 이승만 대통령마저 연합국 승리로 외세의 힘에 의해 독립한 것을 수치로 여기며 제헌헌법 제정시 헌법에 전문을 삽입하여 대한민국 정부의 정통성을 독립정신과 임시정부의 법통을 계승한 국가재건으로 하고 있다는 점이다. 다시 말해 독립정신과 민주공화 정신이 대한민국의 토대임을 분명히 한 것 이다.
당시의 정부수립 주체 누구도 대한민국은 항일 독립운동과 연합군의 지원으로 재건된 나라로 여겼지 2차대전의 냉전 산물인 신생국가의 창설에 해당하는 건국으로 여기지 않았다. UN 보고서 제196호3항 원문에는 한반도 전체가 아닌 남한 만의 영토와 주권의 범위로 한정한 합법정부(a lawful government)로 승인하였다고 기록하고 있다. 국가(state, nation)로 승인한 바가 없다는 것이다. 서울과 평양에서 각각의 단독정부가 수립된지 43년 만에 1991년 9월17일 동시에 유엔의 회원국이 됨으로써 비로소 유엔헌장에 의해 국가로 정식 인정받았다. 그래서 1948년 8.15 정부 수립일을 건국절로 하자는 주장은 잘못이다. 혹자는 이렇게 말할 수 도 있다. 유엔이 정식 인정한 날을 건국으로 볼 수도 있지 않느냐고? 그러나 이것 역시 자주적 주권인 실효적 역사 국가의 정의에 어긋나는 주장이다. 국가형성은 누가 인정하고 안하고의 문제가 아니다. 세계 어느 나라 문명국가가 외부에 의해 국가가 형성되었는가?
우리 반만년 역사에서 고조선을 빼고는 고려, 조선, 그리고 대한민국 모두 건국으로 봐서는 안된다. 왜냐하면 정치체제·정치주체만 다르기 때문이다. 건국은 단군 왕검이 고조선을 세운 것(개국)을 기념하는 날인 개천절로 족하다. 미래의 통일국가가 됐을 때도 또다시 건국 주장을 할 것인가? 건국절을 다시 제정하자는 주장은 역사의 단절이며 정체성을 부정하는 역사국가 형성에 맞지 않는 주장이다. 국가형성은 그 민족의 역사정체성과 아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우리는 고려의 통일 이래 천년간 국가와 민족 그리고 정치적 단위와 종족적 단위가 일치해온 세계의 유일한 역사국가이다.
이들이 지금에 와서 새삼스레 역사 바꾸기에 매달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대한민국 정부수립의 정당성을 좌우 투쟁으로 세운 반공국가로 한정하여 건국절을 주장하는 걸 보면 친일 세탁과 독재 미화가 본질인 듯싶다. 그러나 우리는 독립선언과 임시정부에 두 발을 딛고 대한민국의 역사를 물어야만 한다. 독립선언과 임시정부는 출발부터 민주공화국을 표방하였으며 민족의 역량을 최대한 결집하기 위하여 좌·우 합작을 천명하였기 때문이다.
대한제국의 멸망은 일본제국주의 침탈의 산물이며 한반도의 분단은 미·소 분할 점령에 의한 냉전의 산물이다. 둘 다 강압적·인위적인 외세에 의한 망국이요 분단이다. 또한 일본의 패전으로 남한의 대한민국 정부와 일본정부는 미군정으로 부터 받은 것이어서 주권행사에 제약이 있기 때문에 완전한 주권국가라 할 수 없다. 이것은 현재도 마찬가지다. 주권이란 물리적 힘의 사용권과 소유권을 말한다. 한마디로 군대의 자주권이 있어야 주권국가라 말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우리는 자주적인 역사국가를 천명하는 이유이고 강대국의 힘에 의한 인위적인 근대국가 자격요건을 옹호해서는 안 되는 이유이다.
역사를 거울 삼으려면 정치와 역사가 일정한 거리를 둬야 한다. 조선왕조는 왕 조차도 사관이 쓴 사초를 볼 수 없었다. 또한 역사는 일관성을 지녀야 한다. 잘못하면 나라의 근간이 흔들리기 때문이다. 정권에 따라 역사 해석이 다르다면 그 나라의 역사는 누더기가 되고 만다. 힘으로 좌지우지(左之右之) 할 사항이 아니라는 얘기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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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형국 버크, V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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