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 샌프란시스코만은 신비롭다. 버클리 부두에서 바라보면 도시는 호화 여객선처럼 넘실대는 물결 위에 떠 가고, 금문교 붉은 교각은 안개 위로 춤추듯 날아오른다. 물 한 가운데 짧은 시 한수 처럼 솟아있는 바위섬 알카트레츠!
내가 몸담고 있는 버클리 문학협회에서 올해 <버클리 문학> 3호를 출간하였다. 2009년, 본회가 태동된 이래, 2013년 낸 창간호에 이어 세번 째 발간이다. 이번 3호에도 버클리 대학의 한국학센터(CKS)와 대산재단이 주관하는 교환학자 프로그램에 다녀간 한국의 저명 작가및 교수들 20여명과 이곳 동포문인 35명이 함께 필진으로 참여했다.
고은, 오세영, 권영민, 문정희, 조경란, 김연수등 한국의 대표적 문학인들과 미국에서 오래 정착하며 모국어와 영어로 글을 써온 동포문인들이 함께 정기적으로 문학지를 출간하는 일은 한국이나 미주에서 처음 시도된 일이다. 이런 의미에서 <버클리 문학>의 출간은 이민문학의 정체성과 상징성을 함께 담고 있다고 볼 수있다.
사실 오랫동안 한국문단의 소위 ‘이민 문학’에 대한 시각은 그리 긍정적인 것 만은 아니었다. 이민 와서 생업을 영위하며 틈틈히 모국어로 글을 써온 교포 1세들의 글을 한국 전업문학인의 잣대로 볼때 미흡한 게 사실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제는 한국과 미국, 양쪽 언어와 문화를 수십년 생활 속에서 체득한 이민자들이 한국문학을 넘어선 새로운 이민 문학관을 정립할 만큼 시간과 경륜이 축적되었다.
현대 미주 이민 문학사의 시작을 유학생들이 대거 들어온 1960년대로 보면 거의 60년이 지났다. 처음 이민문학을 시작한 1세대는 이제 70-80세 원로들로 한국문학을 이식하고 한국문단을 통한 등단과 연대에 주력해 온 세대였다.
그러나 현재 버클리 문학회를 포함한 여러 미주문단에서 활동 중인 중심 세대는 30-60세의 이민 2세대로 한국과 미국의 언어와 문화에 모두 익숙한 독특한 체험과 문학세계를 소유하고 있다. 미 주류사회에서 생활터전을 다지고 2세들을 키우면서 교수, 화가, 의사, 엔지니어, 요리사, 간호사, 회계사, 음악가, 자영업자등 다양한 직종에 종사하며 글을 써오고 있다. 이민자이자 생활인으로의 사고와 감성, 경륜을 통해 새로운 이민 문학관을 보다 적극적으로 추구하게 되었다.
게다가 이제는 대부분 학자들도 인정하듯 문학이 전문인들만의 영역이던 시대가 지나고 있다. 쓰기만 하는 자와 읽기만 하는 자들의 경계가 엷어졌다. 소시얼 네트워크가 범람하면서 평범한 생활인들의 다양한 소재와 장르들이 공유되며 공간적인 한계도 허물어지고 있다. 한국문학이 꼭 한국에서만 쓰여지던 시대는 갔다. 미국이나 세계 어디에서나 한국어로 쓰인 글은 한국문학으로 인정되고 있다.
<버클리 문학>의 고문으로 오랫동안 이민 문학의 성장을 도와온 권영민 서울대 명예교수는 동포문인들이 한국문단에 기대고 모방하는 자세를 벗어나 이민자들의 독특한 체험이 살아있는 정체성있는 문학관이 정립되어야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관점은 한국이나 미국의 주요 학자문인들이 대부분 공감하고 있다.
오늘날, 이민 문학의 정체성은 한국과 미국, 동서양 양쪽의 언어와 문화를 습득한 세대들에 의해 새로이 정립되고 있다. 이민자이자 생활인으로의 사고와 감성, 경륜을 통해 다문화적 안목을 가진 이민 문학관이 형성되고 있다. 반면에 한국문학은 좁은 공간에서 누렸던 안일함을 떨치고 세계로 뻗어나가야 한다는 자각이 커지고 있다.
이런 관점에서 이민 문학은 한국문학의 변방이 아니라 세계로 나아가는 프론티어라는 상징성이 크다. 글로벌화 하려는 한국 문학과 이미 그 첨단에 뿌리내린 이민 문학간의 동반자적인 교류가 큰 긍정적인 시너지효과를 가져올 가능성을 보는 것이다.
이번 (버클리 문학>의 발간은 한국 문인들과 동포 문인들이 같은 공간에서 글과 문화를 나눔으로 이민 문학의 정체성을 높이고 한국 문학의 세계화를 지향하는 상징성을 적극적으로 실현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러나 이민 문학이 한시도 잊지말아야할 과제는 독특한 다문화적 이민체험을 완성도 높은 언어와 표현력으로 창작해낼 수 있는 역량을 계속 치열하게 키워나가야하는 것이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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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봉(수필가, 버클리문학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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